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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뉴스비평] 월드컵 함성에 묻힌 뉴스

지난 6일 SBS 8시뉴스는 “월드컵 분위기에 묻혀 쓸쓸한 현충일”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월드컵에 묻혀 잊혀지고 있는 것은 현충일만이 아닙니다. 사회전체가 온통 월드컵에 묻혔다고 할만 합니다. 그런데 월드컵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질을 하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매스컴, 그중에서도 특히 방송입니다.

6일 SBS 뉴스는 “거리에선 현충일의 숙연함을 찾아보기 힘들고 아파트 단지는 현충일을 아예 잊어버렸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오늘 집에 태극기 거셨느냐?”는 질문도 했습니다. SBS 뉴스는 지난 4일 “온 국민의 관심이 너무 월드컵에만 쏠려 있는 것 아니냐는 반성의 목소리”를 전하면서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움직임을 보도했습니다. 과열된 월드컵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한 뉴스였습니다. 그러나 매일 10여건의 월드컵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SBS 8시뉴스에서 이와 같이 균형을 잡아주는 기사는 단 두건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기사들에서조차 방송 스스로의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었습니다. 중요한 기념일이 다가오면 방송들은 으레 분위기를 잡는 뉴스들을 보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SBS 8시뉴스는 현충일 전날인 5일까지 현충일을 상기시키는 어떤 기사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현충일을 뉴스가 잊었으니 시민이 기억해 내기가 어렵습니다. 월드컵 과열 반대 목소리를 전한 기사도 방송의 반성은 담지 않고 흡사 남의 이야기하듯 보도했습니다. 이번 월드컵은 국가 기업 언론의 개입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주장”이라는 식으로만 보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월드컵 관련 뉴스가 많다는 것만이 문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월드컵 뉴스의 질적인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내용 구성이 탄탄하지 않고, 함량이 떨어지거나 중복된 내용들을 마구잡이로 끌어 모아 보도하고 있다는 인상까지 주고 있습니다. “황선홍 신문선 SBS 투톱 해설위원”을 내세운 홍보성 기사가 지루하게 되풀이되고 있으며, 보도하는 기사 중 “뉴스”라고 할만한 기사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태극전사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뉴스는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시청자들의 기대만 부풀려 놓았습니다. 반면에 월드컵과는 관련이 없지만, 빠뜨려서는 안 될 일반 뉴스가 보도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7일 KTX 승무원 파업에 동조하는 각계인사 500명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과 에어쇼 도중 추락한 사고 비행기의 추락원인이 지난 5일 “우연한 엔진정지”로 밝혀졌다는 소식을 SBS 뉴스는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6.25 당시 노근리 주민에 대한 미군의 학살이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음을 확인해 주는 문서가 보도된 이후 그 속보를 뉴스는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현안인 한미 FTA 관련 소식은 SBS 뉴스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뉴스의 초점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SBS 뉴스의 관심은 협상이 타결될 것이냐 아니냐에 너무 치우쳐 있습니다. 워싱턴에서 시작된 한미 FTA 본협상 소식을 전한 6일 SBS 뉴스는 현격한 입장 차가 확인되기는 했지만, 향후 협상의 바탕이 될 통합협정문안이 작성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한국 쪽 김종훈 수석대표의 말을 앞세웠습니다. 8일 뉴스는 또 통합협정문안에 40% 정도 의견조율이 되었다는 소식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협상이 빨리 타결될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모양으로 타결될 것이냐,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게 될 것 인가입니다. 뉴스는 반 FTA 원정시위대의 활동을 자세히 추적하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 내 FTA 반대세력과의 연대, 한미 노동조합의 연대 등도 보도했지만, 이런 소식들은 원정시위대 활동의 일환으로 언급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원정시위대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 사회가 한미 FTA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추적하는 일입니다. 지난 3일 SBS 뉴스는 한미 FTA에 반대하는 미국 의회 의원들이 한미 두 나라 시민단체들의 반 FTA 기자회견을 주선하고 나선 것은 시위대의 활동을 지역구의 보호주의적 이익을 지키는데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담겨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이것은 바로 한미 FTA에 대한 미국사회의 이해관계가 우리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뉴스가 바로 이어 “민주당을 중심으로 반대하는 기류가 있기 때문에 반대시위가 괜히 그런 사람들한테 좋은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주미한국 대사관 관계자의 말을 아무런 비판 없이 인용한 것은 잘못입니다. 이 말에는 한미 FTA를 무슨 수로든 성사시켜야 한다는 우리 정부 쪽 의도가 담겨 있는데, 이는 이번 협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조급증입니다.

방송 뉴스가 시청률에 초연하라는 주문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방송 뉴스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쫓아가기보다 시청자가 방송 뉴스에 길들여지는 측면이 더 강하다는 사실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방송뉴스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월드컵 관련 보도를 통해 뉴스의 신뢰도가 추락하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태극전사들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냉정한 분석과 전망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사실을 전달해 주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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