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제 완연한 여름입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지요?
오늘은 지난번 영국 출장길에 봤던 유쾌한 뮤지컬 '메리 포핀스' 얘기입니다. 당장이라도 다시 보고 싶은 뮤지컬이지요. 뮤지컬 잡지 '더 뮤지컬' 이번 호에 기고한 글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있는 직장 여성의 고민은 다들 비슷하다. 아이 보육 문제다. 내 주변의 기자들은 퇴근시간이 늦고 밤샘 근무도 잦다 보니, 보육 시설을 이용하기보다는 집에서 먹고 자면서 아이 봐 주는 ‘아주머니’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항상 그런 것만도 아니어서, 한 달이 멀다 하고 애 봐주는 아주머니를 바꾸는 집도 봤다.
한 선배는, 과자를 주면 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먹기에 도대체 왜 그러나 했더니, 애 봐주는 아주머니가 과자 부스러기 치우는 게 귀찮아 화장실에서 먹으라고 한 것이었다며, 기가 막혀 했다. 가끔은 엄마가 집을 비운 동안 아이를 학대하는, 정신병자 같은 유모 얘기가 뉴스 전파를 타기도 하는 세상이니, 이쯤 되면 ‘유모 괴담’이라고 할 법도 하다.
나는 친정어머니가 아이 둘을 다 봐주시고 있으니, 비교적 행복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정말 믿고 맡길 만한 사람만 있다면, 연세 드신 부모님께 계속 부담을 드리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니 지난달 영국 출장길에, 요즘 웨스트엔드에서 인기 상종가라는 뮤지컬 ‘메리 포핀스’를 보면서 내내, 우리도 저런 유모 한 명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것도 당연했다.
뮤지컬 ‘메리 포핀스’의 원작은 호주 출신 작가 파멜라 린든 트래버스가 1934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 소설이 한창 인기를 얻었을 때 영국에서는 실제로 ‘유모 구합니다’ 대신 ‘메리 포핀스 구합니다’라고 쓴 구인 광고가 많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다들 생각하는 건 비슷한가 보다.
‘메리 포핀스’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디즈니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64년 줄리 앤드류스와 딕 반 다이크가 주연한 영화다. 뮤지컬은 이보다 훨씬 늦게 카메론 맥킨토시와 디즈니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어릴 때 ‘하늘을 나는 메리 포핀스’라는 제목의 아동문고판으로 소설을 읽었고, 영화도 재미있게 봤는데, 뮤지컬 무대 위에서 만난 메리 포핀스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1910년, 런던 벚꽃나무길 17번지. 개구쟁이 남매 제인과 마이클이 사는 뱅크스 씨네 집이다. 뱅크스 씨 집 아이들이 얼마나 장난꾸러기인지, 유모가 오래 배겨나질 못한다. 아이들이 바라는 ‘완벽한 유모(perfect nanny)’는 ‘장??맞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아이들의 유모로 채용된다.
낡은 양탄자 가방에서 화분과 옷걸이, 침대까지 꺼내는 마술로 처음부터 뱅크스 씨 집 아이들 뿐 아니라 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버리는 메리 포핀스. 그녀는 마냥 ‘천사 표’이기만 한 유모는 아니다. 때로는 아이들을 혼내기도 하고, 잘난 척 하고, 허영심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어른들이 잘 모르는 아이들 마음을 이해한다. ‘사실상 완벽한(practically perfect)’ 유모다.
굴뚝 청소부들과 런던의 지붕 위에서 춤추기, 공원의 조각상들과 함께 놀기, 신기한 물건들만 파는 마술 가게 구경하기...... 메리 포핀스가 펼쳐내는 세상은, 마치 화가의 스케치북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무대 덕분에, 더욱 신나고 즐거웠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에 의존하지 않고도, 상상의 나래를 펴면 갈 수 있는 세상.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심심해’를 연발하며 짜증내는 우리 집 첫째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었다.
때로는 딸기주스 맛이 나고 때로는 럼주 맛이 나는 메리 포핀스의 시럽도 탐났다. 약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시럽이 있었으면. 아직 두 돌이 안 된 우리 집 둘째는 콧물을 달고 살면서도 감기약은 먹기 싫어해서, 물약을 고스란히 뱉어내기 일쑤다. 결국은 어른 한 명이??을 아이들에게 먹이는 냉혹한 유모 미스 앤드류라도 된 기분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메리 포핀스의 달콤한 시럽과 미스 앤드류의 쓰디쓴 약은, 서로 대조되는 교육 방식을 상징한다. 메리 포핀스는 즐겁게 놀면서 아이들이 쉽고 자연스럽게 가르침을 깨닫게 한다. 시럽의 맛이 먹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한다는 뜻 아닐까. '설탕 한 스푼이면 약도 잘 넘어간다(A spoonful of sugar makes the medicine go down)'는 노래 역시 ‘즐거움과 재미를 곁들인 교육‘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반면 미스 앤드류의 약은 누가 먹어도, 심지어 미스 앤드류 자신에게도, 구역질 날 정도로 쓰기만 하다. 엄격한 규율과 통제, 군대식 훈육을 강조하는 미스 앤드류는 아이들을 숨 막히게 하고, 집안 분위기도 황량하게 만든다. 어느 방식이 더 나은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미스 앤드류는 잠시 자리를 비웠던 메리 포핀스가 돌아오자 바로 쫓겨 간다.
미스 앤드류 못지않게 집안 분위기를 황량하게 했던 사람은, 역시 군대식 교육을 받고 자랐던 아빠 뱅크스 씨다. 빈틈없는 은행 직원인 뱅크스 씨는, 어찌 보면 불쌍한 남자다. 일이 최우선이라고 여기고, 아내와 아이들을 권위적으로 대하고, 정을 표현하는 데 서투르고, 자신의 고민을 가족들과 나누지도 못한다. 직장을 잃을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의 처진 어깨를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한국 남자들과 똑같을까 생각하며 마음이 조금 아팠다.
아빠 뱅크스 씨는 결국 메리 포핀스의 도움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아빠와 함께 연을 날리고 싶어 했던 마이클의 소원도 풀린다. 행복해진 뱅크스 씨 가족들을 뒤에 남긴 채, 메리 포핀스는 우산을 들고 떠나간다. 메리 포핀스가 무대에서 객석 위로, 점점 높이 떠올라 멀리 사라져 버리는 순간, 나는 무척 아쉬웠다. 메리 포핀스가 벌써 떠나면 안 되는데. 이건 너무나 유쾌했던 공연이 좀 더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메?붕에 솟은 굴뚝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금?? 청소부들과 예쁜 얼굴에 검댕을 살짝 묻힌 메리 포핀스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런던 템즈 강변, 온 몸에 흰 칠을 하고 ‘살아있는 조각상’을 연기하는 거리의 예술가를 보면서도, 나는 공원의 조각상과 아이들이 함께 뛰놀던 뮤지컬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영국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가끔씩 메리 포핀스가 가르쳐 준 행복 주문을 혼자 중얼거려 본다. 뮤지컬의 장면 장면이 떠올라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효력이 있긴 있나 보다. 슈퍼칼리프래질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뱅크스 씨 집을 떠난 메리 포핀스는 지금쯤 어디서 이 행복 주문을 외우고 있을까.
영국에서 좀 멀긴 하지만 메리 포핀스가 한국에도 좀 들러줬으면 좋겠다. 여기도 메리 포핀스 같은 ‘완벽한 유모’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무척 많으니까. 아니?? 데리고 또 비행기를 타게 될지도 모른다
**‘메리 포핀스’ 영국 공연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 뮤지컬의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짧은 클립을 발견했다. 슈퍼칼리프래질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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