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대구지역 최대 경제단체인 대구상공회의소가 창립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적잖은 역사적 위업을 남긴 대구상의의 한 세기를 양병운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기자>
대구상공회의소는 1906년 설립된 대구민의소가 모태입니다.
김광제와 서상돈 등 당시 경제인들이 만든 대구민의소는 설립 이듬해 일본에 진 빚 1천2백만원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칩니다.
일제의 탄압에 목적달성은 못했지만, 민족 자본의 소중함을 널리 일깨운 역사적인 위업이었습니다.
[이승주/대구상공회의소 고문 : 금연을 해서 그 돈으로 빚을 갚자. 또 술도 끊자. 여러가지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절제를 해서 나라의 돈을 모으도록 하자...]
해방된 뒤에도 임의단체였던 대구상의가 현재의 공법인 체제로 출발한 건 1953년입니다.
대구상의는 이후 대규모 섬유 공장을 유치하고, 시장의 근대화를 추진해 대구 경제의 토대를 마련합니다.
1966년엔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을 설립해 1960~70년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주력인 섬유산업의 위축으로 대구상의의 위상도 예전같지 않아졌습니다.
[최용호/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선도적인 역할과 함께 회원들의 눈높이에 맞춘 그런 욕구 수준을 충족시켜주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 근대경제의 태동에서 지금까지 지역 경제의 중심에 있었던 대구 상공회의소가 새로운 100년을 향한 출발선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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