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아쉬운 점 중에 하나는, 맛깔나는 인터뷰를 욕심 만큼 전해드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방송 뉴스는 보통 1분 내외의 '리포트'들로 이뤄집니다. 1분이면 200자 원고지로 4-5장분량에 불과하지요. 인터뷰는 10초 내외로 두 개 이상 쓰기가 무리입니다. 때문에 3-4분씩 인터뷰를 해 와도 실제 방송에 나가는 건 '빙산의 일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터뷰이들 중엔 가끔 '이렇게 오래해서 다 쓰지도 않잖아요?'라며 짜증을 내시는 분들도 있을 정도이지요. 때문에 10분이고 20분이고 인터뷰들을 마음껏 틀어대는 미국 스포츠 케이블방송의 스포츠쇼들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죠.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스포츠에 대한 일상적인 관심이 높아지면 그럴 날이 있겠지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취재 과정에서도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실제 방송에 반영되지 못한 인터뷰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지금 소개해드릴 피터 개먼스(ESPN 야구 기자)와 인터뷰입니다. (사실 개먼스와 인터뷰는 단 한번도 전파를 타지 못했습니다)
야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개먼스라는 이름을 대부분 들어보셨을 겁니다. 지난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현역 최고의 야구 기자로서, 굵직한 트레이드들을 앞두곤 어김없이 특종을 터뜨려서 '커미셔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이지요. 올해 연세가 우리나이로 62세인데, 보스턴 지역 인디 록 밴드들의 열렬한 팬이자 뛰어난 기타리스트로서, 스토브리그 땐 레드삭스의 엡스타인 단장 등과 함께 밴드를 꾸려 '핫 스토브, 쿨 뮤직'이라는 자선 공연도 하는 멋쟁이 할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준결승 한-일전을 앞두고 있던 샌디에고 펫코 파크에서 개먼스를 만났습니다. 한국 팀에 대해, 또 WBC 대회 전반에 대해 그의 생각을 들어 봤습니다. (한-일 감독들의 경기 전 공식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 가진 인터뷰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 주세요.)
1. 한국이 지금까지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습니다. 한국 팀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먼저 뛰어난 피칭이 인상적입니다. 서재응, 박찬호, 김병현 등 미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투수들이 정말 잘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재응 같은 경우엔 지난해 후반기 리그 최고의 투수였기 때문에 지금의 호투가 놀라운 일은 아니지요.
한국 팀에게 가장 놀라운 점은 너무나도 뛰어난 수비입니다. 실책도 하나도 없고 정확한 수비 위치를 잡는 등 훌륭한 야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팀의 경기는 언제나 접전이 펼쳐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팀보다 더 나은 야구를 하기 때문에 전승을 거둘 수 있었지요.
2. WBC 개막 전에 한국의 4강 진출을 혹시 예상했었나요?
아니오. 나는 일본이 좋은 성적을 낼 확률이 높다고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만약 한국이 우승하지 못한다면 정말 이상한 일일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일본을 두번이나 눌렀으니까요. 현재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훌륭한 야구를 하고 있는 팀입니다. 결승에 진출할 자격이 있는 두 팀을 꼽자면 한국과 쿠바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경기가 되겠지요.
한국의 돌풍은 내겐 놀라운 일이었어요. 사실 아는 선수가 몇 명 뿐이었거든요.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 캠프에 참가했고, 내 친구인 바비 발렌타인 밑에서 뛰었던 이승엽은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지만...한국 팀이 보여주고 있는 정밀함과 완벽함은 이번 대회의 기분 좋은 이변입니다.
3. 이승엽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혹시 이승엽 말고도 특별히 인상적인 선수가 있었나요?
음..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데, 부상 당한 3루수가 누구였죠? 아, 김동주.그 선수를 원래 좋아했어요. 하지만 한국 팀 전체의 야구 스타일을 더 좋아합니다. 야구를 알고 하고, 실수를 하지 않죠. 야구는 덩치 큰 친구들이 홈런만 뻥뻥 치는 게 아니라는 걸 한국 팀이 보여줬습니다. 야구 경기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고, 내가 이번 대회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다양성입니다.이 대회는 특히 야구는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미국인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쿠바나 한국 팀을 보고 완전히 다른 경기 스타일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도미니카는 미국 야구와 스타일이 비슷하지만, 훨씬 더 즐기면서 하지요.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의 야구를 한데 볼 수 있어 기쁩니다.
4. 조금 전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일본의 라이벌 관계에 대해 많은 발언들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보스턴 레드삭스를 오랫동안 취재해서 특별히 '라이벌'이라는 의미를 잘 아실텐데요, 어떻게 느끼셨나요?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네요. 오카 토모카즈와 김선우가 트리플A에 있었을 때, 레드삭스 구단은 두 선수에게 같은 방을 쓰게 했어요. 아시아 사람들은 다 서로 비슷하고 좋아할 줄 알았던 거죠. 결국 두 선수는 전설적인 격투 시리즈(Series of Legandary Fight)를 벌였어요(웃음). 음, 모두 김선우의 완승으로 끝났죠(웃음). 레드삭스 구단만 두 나라의 라이벌 관계를 몰랐던 거죠. 두 선수 모두 훌륭한 친구들이었지만 결국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더라구요. 지나고 나니 재미있는 에피소드지만요.
(역주 : 김선우와 오카의 싸움이 '단판승부'가 아니었더군요!^^)
5.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은 이번 WBC가 성공이라 생각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이번 대회는 미국인만의 것이 아니죠. 나는 이번 대회를 통해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 야구의 높은 기량과 존귀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야 한국이, 쿠바가, 이렇게 야구를 잘 하는구나'라는 걸 느꼈다는 게 중요합니다.비록 정치는 아니지만, '상호존중'이란 표현이 어울리죠. 미국은 다른 나라를 존중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지만, 이번 대회는 야구를 통해 '상호존중'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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