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은 현장을 찾아 술을 따릅니다. 담당 형사로서는 잊고 싶기도 한 사건인데 공소시효가 눈앞이라니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화성경찰서 형사계장, 현 화성경찰서 지능수사1팀 남상국(51)팀장.
"요즘도 수사본부인 안용치안센터에서 매일 전담반 회의를 합니다. 사건을 잊지 말자는 취지인데... 시효가 이틀 밖에 남지않아 잠도 못 이룹니다"
화성경찰서 화성연쇄살인사건 전담 강력3팀 안광헌(56)팀장.
86년 9월부터 91년 4월 사이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사무소 반경 3㎞내 4개 읍·면에서 13∼71세 여성 10명이 잇따라 살해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은 1991년 4월 3일 오후 9시께 화성시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권 모(69, 여)씨가 성폭행 당한 뒤 스타킹에 목이 감겨 숨진채 발견된 10차 사건.
80-90년대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이 마지막 사건의 공소시효(4월 2일)를 이틀 앞둔 31일 수사 형사들은 유족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라며 자신들의 무능을 자책했다.
그동안 동원 경찰력 연인원 205만여명, 지문대조 수사 4만116명, 수사 받은 대상자 2만1천280명 등 단일사건 최다 수사기록을 보유한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사건은 이제 영화처럼 '살인의 추억'으로 남게 됐다.
이 가운데 90년 11월 15일 오후 6시30분께 태안읍 병점5리 소나무 숲에서 학교 수업 후 집으로 가던 김 모(당시 13세, 중1)양이 성폭행 당한 뒤 목졸려 살해당한 9차 사건은 최연소 희생자였던데다 가장 잔인한 범행수법을 보여 영화 '살인의 추억'에 인용되기도 했다.
"9차 사건이 가장 안타까워요. 김양이 제 맏아들과 동갑이어서 말그대로 피가 끓었습니다. 반경 30m 이내의 흙과 풀, 나뭇잎을 모두 수거해 경찰서 강당에 쏟아 놓고 일일이 분석했지만 범인의 유류품 등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 못했어요"
안 팀장은 과학수사기법이 미천했고 초동수사도 미진해 범인검거에 실패했다며 사건 당시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대구 개구리소년사건과 함께 공소시효 연장 논란이 일며 최근 한달새 제보가 160여건에 이름에 따라 안 팀장은 수사본부인 안용치안센터에 보관중인 옛 수사기록을 다시 꺼내 대조해보며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다.
공소시효가 끝나 범인을 잡아도 형사처벌을 할 수 없지만 꼭 범인을 찾겠다는 의지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화성경찰서는 5명의 강력 3팀을 해체하지 않고 계속 수사를 전담시킬 방침이다.
경찰이 지금까지 파악한 범인은 혈액형 B형에 키165∼170㎝의 호리호리한 몸매인 20대 중반 남자.
일부 범인 몽타주와 유사한 사람이 있다는 제보가 있어 1t 분량의 캐비닛 7개를 다시 뒤지며 씨름하고 있으나 이틀 남은 시효가 몸을 달게 한다.
공소시효 연장 법안이 발의됐지만 몇개월째 계류중인 것도 수사경찰들에게 큰 불만이다.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은 지난해 8월17일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2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해당 법안은 아직 법사위에 계류중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호(51)교수도 "공소시효가 만들어진 이유는 행정적 편의 때문인데 획일적으로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경찰의 수사가 진행중인 특정사건에 대해 공소시효를 보류 또는 연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 다.
현행 형법은 1954년 당시 일본 법을 근거로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15년으로 정하고 있지만, 정작 일본은 2004년 사형에 해당되는 범죄(살인 등)의 공소시효를 25년으로 늘렸다.
또 독일의 살인죄 공소시효는 30년,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연방법에서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있다.
(화성=연합뉴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