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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연인-훌륭한 이종교배

2년전 영화담당을 할때보다 극장도 늘어났고 개봉영화도 늘어나 시사회일정만 소화하기에도 벅찰 정도입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편이 나란히 시사회가 열리는 경우도 있어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하고, 잔뜩 기대를 하고 갔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2년전 영화담당을 할때보다 극장도 늘어났고 개봉영화도 늘어나 시사회일정만 소화하기에도 벅찰 정도입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편이 나란히 시사회가 열리는 경우도 있어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하고, 잔뜩 기대를 하고 갔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있고, 요즘같이 화창한 날에 컴컴한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살짝 억울할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취재 때문에 또는 과감한 선택으로 시사회를 포기한 영화에 대해서 본 사람들의 평가를 묻기도 하는데 '별로였다.'라는 반응을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지만 그 반대 경우에는 참 낭패를 겪기도 합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처음에 이메일로 날아오는 보도자료만 보고 ‘배우들도 약하고...그저 그럴 것 같네’ 라고 생각하다가 다른 취재 때문에 기자 시사회를 안 갔는데 본 사람들이 ‘요사이 영화 가운데 가장 재미있다’ ‘두 시간 동안 시계 한번 쳐다볼 틈이 없었다’ 는 등 이구동성 극찬을 해대길래 ‘이걸 어쩌나...’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런 요청들이 많았던지 영화사 측에서 이례적으로 ‘앵콜 기자시사’를 개최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많이 있어도 로맨스와 스릴러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과연 어떻게 결합시켰을까하는 궁금증이 앞섰고 영화는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습니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본 대학 시간강사 황대우, 실제로는 연애에 영 숙맥이지만 자기 자신은 혈액형 이론이니 별자리 운운하는 ‘여자’라는 종족이 심히 유치하고 시시해서 연애의 필요성을 못느낀다고 주장하지만 주기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습니다.

어느날 침대를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한 이후 까닭없이 외로워지고 누가 옆에서 잠시 어루만져준다면 아픈 허리도 씻은 듯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럴 즈음 황대우의 원룸 오피스텔 아래층에 이태리 유학 준비를 한다는 미대출신 이미나가 이사오고 대우는 미나와 영화도 보고 키스도 나누며 데이트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미나는 여러 면에서 신비스럽고 알쏭달쏭하고 남 모르는 은밀한 비밀을 감추고 삽니다.

(여기서부터는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나는 이미 여러 건의 살인을 저질렀고 살인을 통해 확보한 거액을 들고 외국으로 튀려고 준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미나는 대우의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전한 해외도피를 위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살인 행각을 계속합니다. 대우는 이런 상황을 조금씩 파악하며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책과 공부만으로도 충분한 삶의 만족을 느끼는 황대우 역의 박용우는 지적이면서 순진하고 또 병적으로 신경질적이기도 한 독특한 캐릭터를 잘 연기합니다. [혈의 누]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병약한 양반 자제로 나왔을때 얼굴만 번듯한 꽃미남 연기자가 아니구나 싶더니 이번 영화에서는 치밀한 준비와 연구를 통해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 냈습니다. 마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잭 니콜슨이 만들어낸 인물과 흡사합니다. 까다롭고 답답해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애정이 가는 특성의 인물입니다. 미나 역의 최강희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면서 대우의 사랑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이중적인 연기를 잘 소화합니다. 또 술 좋아하고 밑천이 빤히 보이면서도 솔직 담백한 백장미 역의 조은지의 연기 조화도 흠잡을 구석이 별로 없습니다.

살벌한 상황에서 관객의 허를 찌르는 엉뚱한 대사들, 살인 후 뒤처리를 네이버 지식검색에 물어본다든지, 변호사의 심각한 음모가 전혀 엉뚱하게 반전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관련된 복선, 몬드리안의 작품, 김치냉장고, 키스할때 ‘혀’에 대한 평가 등 웃음을 유발하고 관객을 당황시키는 요소들이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유머와 웃음의 특징은 요즘 개그 프로의 대세로 자리잡은 톡톡 튀는 감각과 엉뚱한 반전이어서 관객들의 빠른 이해력을 필요로 합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는 타이밍이 개인차가 있더군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기존 영화의 형식과 틀에서 벗어나 독특한 소재와 이질적인 장르를 매끄럽게 섞어 훌륭한 칵테일로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보통 코미디와 로맨스라고 하면 웃기면서 티격태격 하다가 막판에 꼭 감동까지 줘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영화의 질을 떨어뜨리는 우를 겪지만 이 영화는 그 달콤한 유혹의 함정을 잘 비껴 나갑니다. 끝까지 영화의 독특하고 쿨한 감각을 계속 유지합니다.

손재곤 감독은 2000년 중편 영화 [너무 많이본 사나이]로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국내 최초 패러디 영화인 [재밌는 영화]의 공동각본을 맡았던 신인 감독입니다. 방송사의 장비를 활용해 HD로 만들어 제작비가 일반 필름 극영화 제작비의 3분의 1 내지 4분의 1 이하로 저렴합니다. 제작비의 압박, 여기에 따른 흥행의 압박이 없었기에 이런 재기 발랄하고 참신한 시도가 가능했다고 보여집니다. 극장 스크린 상에서도 화질은 별 차이없이 느껴집니다. 다만 한가지 음향의 매끄럽지 못함은 옥의 티로 남습니다. 왠만하면 이런 표현 쓰기 싫지만 3-4년 사이 이렇게 독특하면서 재미도 있고 영화적 완성도도 높은 영화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저도 영화 보는 동안 시계를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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