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러플린 카이스트 총장이 교수들의 반대로 연임에 실패함으로써 사실상 불명예 퇴진하게 됐습니다.
장세만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2004년 7월 취임식)러플린/카이스트 총장 : 카이스트를 미국 대학들이 부러워하는 학교로 만들고 싶습니다.]
노벨상의 후광속에 카이스트 개혁의 선구자로 영입된 러플린 총장.
그러나 그의 경영실적은 학문적 명성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히딩크인 줄 알았는데 본프레레였다는 비아냥 속에 중도하차의 불명예를 안게 된 러플린 총장은 교수들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러플린/카이스트 총장 : 교수들은 총장의 권한 행사를 원하지 않았다.]
총장과 교수들간의 이런 불화는 카이스트의 미래에 대한 이견에서 시작됐습니다.
러플린 총장은 카이스트를 학부중심의 사립 종합대로 전환하려 했지만 교수들은 의견수렴없는 총장의 독단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윤춘섭/교수협의회장 : 세계적인 이공계 대학으로 발전시키는 데 오히려 방해 요인이 되어왔기 때문에...]
올 초 교수 4백여 명의 연구능력을 10여분씩의 단독면담만으로 평가하려했던 시도는 오히려 불신의 빌미가 됐습니다.
러플린 총장의 활발한 대외활동에 대해 일부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리더십과 경영능력의 부재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장순흥/대외부총장 : 계약 연장이 되더라도 카이스트를 원만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이사회는 판단했습니다.]
결국 철저한 능력검증없이 명성만을 들여온 카이스트의 개혁실험은 상처만 남긴 채 2년의 시간을 낭비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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