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랑을 받던 한 한국인의 삶을 마감하고 세계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 다른 한국인의 시작을 지켜보기 위해 뉴욕에 다녀왔다.
백남준과 비에 관한 얘기다.백남준의 예술을 이해하기엔 나의 정신적 성숙도가 터무니 없이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엿보는 일은 역시 흥미진진했다. '뭔가 다른 사람이구나!' 하는 감탄은 시신에 입혀진 옷에서부터 시작됐다. 청록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새겨진 마고자. 고인이 즐겨입던 옷이라고 했다. 마고자 위에는 피아노 건반 무늬의 목도리가 둘러져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평범하다 말하기 어려운데 마고자 깃 사이로 티셔츠가 눈길을 끈다. 해변가에 놀러가서나 입을 법한 하얀 티셔츠가 아닌가. 백남준 다운 엉뚱함이 절절 흐르는 수의다.
부인 시게코 구보다씨는 남편의 목도리와 색깔만 반대인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마주 선 노 부부의 커플 목도리라니.....10년 이상 짝사랑의 연인을 자청하다 결국 아내이자 예술적 동반자로서 백남준과 인생을 나눠왔던 구보다씨는 미소와 눈물을 반복하며 남편의 마지막 날들을 회상했다.
"작년 10월에 조카가 백남준 미술관 건립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한국에 가면서 남편에게 편지 한 장을 써달라고 했어요.그랬더니 종이에다 덜렁 "Good Bye 경기도"라고 써주지 뭐에요.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 보니 오는 2008년 경기도에 완공되는 미술관을 자기 생전에 볼 수 없다는 걸 알았던 모양입니다.
예술은 영혼의 소통까지도 가능케 하는 것인가.
"생전 안그러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부터 갑자기 오래 전에 먼저 간 친구들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는 거에요. 조 존스, 에밀리 하비, 잭슨 마커... 그 소리를 듣고 "Oh God! 저 사람들이 남편을 하늘로 불러 올리는구나" 생각했지요.
죽은 이에 대한 조문객들의 반응이라는게 당연히 칭찬 일색이겠지만 백남준을 추모하는 예술계 인사들의 말에는 뭔가 색다른 점이 있었다. 고희를 훌쩍 넘겨 세상을 떠난 노 예술가에 대한 평가치고는 너무나 젊었다. 새로운 생각으로 가득찬 사람, 기존 질서를깨는데 매진했던 사람, 농담 마저도 늘 참신한 사람... 나이 40이 조금 넘었다고 느려지고 조용해지고 무거워진 내가 부끄러웠다. 백남준의 기준이라면 나는 지금쯤 모든 것에 대한 시작의 시작 쯤에나 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백남준의 시신이 조문객들에게 공개된 바로 그 날 저녁 맨하탄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는 비의 공연이 시작됐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레드 제플린 같은 전설적인 스타들이 거쳐간 곳이다. 단독 공연을 갖기로는 아시아계 연예인으로 사상 처음이다. 공연은 비교적 성공이었다, 표는 다 팔렸다고 하니까.
하지만 비는 아직 갈 길이 멀다.뉴욕 공연을 매진 사례하게 해 준 관객의 99%는 한.중.일 세나라 젊은이들이었다. 그걸 미국 시장 진입으로 보기는 무리다. 문제는 왜 미국인들이 비를 사야 하는지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뉴욕타임즈의 공연 평이 아프다.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미국 유명 가수들를 흉내냈을 뿐 특색이 없었다. 모방은 했지만 마이클 잭슨과 같은 카리스마도, 어셔와 같은 성적 매력도, 팀버레이크의 빠른 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치 한국말로 더빙된 낡은 MTV 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
백남준이 누구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 거릴 비의 소녀 팬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백남준과 비의 차이는 유(有)와 무(無)의 격차와 다름 없다. 어쩌면 비가 더 많은 팬을 갖게 될지도 모르고 돈도 더 벌게 될지 모르지만 有냐 無냐를 가르는 경계선은 그런데 있지 않다. 흔히 인용되는 데미안의 구절을 빌어 표현하자면 백남준은 알을 깨고 새 세상으로 나온 사람이고 비는 아직 알 속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이다. 백남준이 세계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남들이 다 하는 그림을 더 잘 그려서가 아니라 세상을 둘러싼 알껍질을 깨고 관객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비가 벌이가 짭짤한 소매상 수준의 아시아 한류 비지니스를 넘어 세계의 스타로 발돋움하려면 그렇게 알을 깨는 고통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백남준의 시신 앞에 깊이 고개 숙이는 세계의 기라성 같은예술인들을 바라보면서 그를 굳이 한국인이라고 규정하려 애써왔던 게 참 옹색한 행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세상이 백남준의 예술과 광기 어린 사랑에 빠져있을 때 우리만 '한국인 백남준' 운운한 것이 얼마나 퇴행적이고 폐쇄적인 생각이었나 반성해 본다. 비에게도 백남준이 누렸던 것 같은 세계의 사랑이 쏟아질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비가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개의치 않고 세계가 그의 노래에 귀 기울이는 때가 되면 우리가 떼쓰듯 외쳐대지 않아도 비는 지구촌 어디서든 멋진 한국인으로 대접받을 것이다.
---<영결식 스케치 둘>---
1.
백남준의 영결식은 그 자체가 값진 퍼포먼스였다. 거물 설치작가 장 클로드와 오노 요코 같은 명사가 줄줄이 추모사를자청했다. 대부분 백남준의 친한 친구였던 이들 조문객들은 영결식을 폭소가 이어지는 퍼포먼스로 바꿔치워 버렸다. 고인과 나눴던 추억들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면서예술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해 가는 작업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했다.
식이 끝나기 직전 백남준의 장조카가 조문객들에게 일일히 가위를나눠 주기 시작하면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였다. 백남준이 지난 60년대 벌였던 퍼포먼스와 마찬가지로 바로 옆에 앉은 조문객의 넥타이를 자르는놀이를 하자는 것이다. "축제 하듯이 환호하며 가위질 하는 명사 친구들 모습을 보면 고인이 참 행복해 하겠다" 라고생각하는 동안 곳곳에서 뤼비통, 샤넬, 아르마니 넥타이의 잔해들이 바닥에 툭툭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역시 백남준의 영결식 답다고 생각하면서 서둘러 식장을 빠져나왔다.위대한 고인을 추모하는 퍼포먼스를 외면할 수없다는 미안함과 하필이면 그날따라 몇개 없는 비싼 넥타이를 맨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다 "빨리 방송하러 가야 한다"는 핑계를찾아내자 마자였다.
2.
영결식에서소개된 고인에 대한 여러 회고담들은 책으로 써도 참 재미있겠다 싶을 만큼 끌리는 것들이었다. 이 가운데서 압권 한가지만 소개하자면 역시 백악관 만찬 해프닝 아닐까 싶다. 지난 98년 김대중 대통령을 위한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국빈만찬에 초대됐을 때 얘기다.
고인이 클린턴 대통령과 악수하기 위해 함께 간 조카의 부축을 받아 휠체어에서 일어나는 순간 바지가 스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당황한조카에게한말. "Ken! How come I'm not wearing any underwear?"
한미 양국 남녀 귀빈들의 시선과 수많은 취재 카메라의 초점이 위대한 예술가의 아랫도리에 꽂히는 순간이었다.이 정도면 그냥웃고 끝났을 일이지만 하필이면 그 당시가 클린턴-르윈스키 스캔달의 정점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만찬 다음 날 부터 백악관 관계자들이잇따라 전화를 걸어와 "의도가 뭐였냐", "정치적인 제스쳐 아니었냐" 라고 캐묻더라는 것이다. 제 발 저린 정치권력의 몰상식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로 전세계의 친구들이 백남준에게 전화와 편지를 통해 생애 최고의 퍼포먼스였다며 "브라보"를 외쳤다고 하니 본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아랫도리 노출 사건은 자연히 희대의 정치풍자가 돼 버린 셈이다.끝으로 친구들 칭찬에 으쓱해진 백남준의 말 한마디:
"백악관 국빈 만찬이라는 게 평생에 한번 가볼까 말까 하는 기회인데 이왕 갔으면 해볼 것 다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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