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비디오 아트 창시자로 알려졌지만 사실 고 백남준 씨는 평생 기행과 더불어 기존 예술에 대한 파괴와 재창조를 거듭한 경계를 뛰어넘은 예술인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말을 통해 그의예술세계를 더듬어 보겠습니다.
신우선 기자입니다.
<기자>
1950년대 말 독일에서 클래식을 공부하던 백남준은 전위예술가로 변신합니다.
1963년 31살의 청년은 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 두드려 부숩니다.
"피아노는 연주할 수도 있고, 두드려 부술 수도 있다"는 것이 이 괴팍한 청년의 말이었습니다.
뉴욕으로 진출한 백남준은 여러 형태의 행위예술로 때론 경찰에 붙잡혀 가기도 하며, 온갖 비난을 받습니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후, 그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에게, 기성 예술계의 비난이 오히려 원동력이 됐다는 말입니다.
32년 만에 고국에 금의환향한 1984년, 그의 폭탄선언.
"예술은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높은 수준의 사기행위"라는 얘기였습니다.
[김홍희//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 백남준 선생님은 예술이 생활, 삶, 그리고 대중문화 속에 통합돼야 한다고 상당히 주장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혜안은 고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IT 강국 한국"으로 적중했습니다.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는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장담했고, 또 새로운 '레이저 아트'로 명성을 드높힙니다.
선구자가 진정 후대에 남기고 싶었던 것은 끝없는 창조정신과 불굴의 의지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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