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5.프랑스
1)프랑스(France)
2,3,4,5,6,7,8,9)빠리(Paris) 루브르(Louvre)--오늘 이야기
10,11,12,13) 셍제르망 앙 레(Saint Germain en Laye)
14)리용(Lyon)
15,16,17,18)비엔느(Vienne)
19)오랑쥬(Orange)
20)베종라 로멘느(Vaison La Romaine)
21,22)님므(Nimes)
◆ 1. 빠리 루브르(Louvre) 8--튀니지--교회 모자이크
모자이크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집안 바닥 장식으로 널리 활용한 예술 장르라고 앞서 살펴봤다. 그림의 소재는 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따왔다. 문제는 로마가 4c 이후 기독교 시대로 들어간 뒤 발생했다. 기독교는 전래의 그리스 로마신을 부정했다. 따라서, 이들을 소재로 활용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기독교 시대 로마인들도 건축의 바닥 포장 기법으로 모자이크를 계속 설치해야 했으니, 갈등이 생긴 것. 해답은 간단했다. 소재를 바꾸면 됐다. 기독교에서 용인 가능한 소재들로... 그러다 보니 신이 만든 세상의 피조물 그러니까, 새나 동식물의 자연(自然)이 주요 소재였다. 또 하나, 교회 관련 소재를 활용하면 될 일이었다. 교회 건물을 표현하거나 교회 무덤에 망자(亡者)의 얼굴, 생전의 행적을 적었다. 이런 특징을 담은 기독교 시대 모자이크가 지중해 곳곳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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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비잔틴 교회 유적. 북아프리카 리비아는 그리스인들이 개척한 도시가 많다. 이가운데 키레네는 대표적이다. 키레네 근처의 비잔틴 교회 유적이다. 바닥에 모자이크가 남아있다. 사진에 작게 등장하는 사람은 필자가 리비아를 탐방할 때 가이드와 운전기사다. 리비아 ⓒ김문환 |
참고로, 로마시대 북아프리카는 요즘 개념과 달랐다. 지금은 아프리카하면 문명의 오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는 번영하는 문명의 중심지였다. 문명의 선두 주자는 페니키아인. 무역을 위해 북아프리카에 B.C 8c부터 거점을 마련해 도시를 만들었다. 카르타고는 대표적이다. 이보다 조금 늦게 B.C 7c 이후 그리스인들도 고국을 떠나 북아프리카에 새로운 생활 터전을 마련했다. 리비아 해안의 키레레(Cyrene)는 그중 가장 앞서는 도시였다. 카르타고와 그리스를 이어 지중해의 패자가 된 로마도 마찬가지였다. 로마가 재건한 카르타고는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제국 내 3대 도시로 성장했다. 3대 도시 가운데 2곳이 북아프리카다.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의 고향은 오늘날 리비아의 렙티스마그나. 요즘 방문해도 그 방대한 도시규모에 입이 벌어질 만큼 번영을 누렸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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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전경--5c 교회의 거대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교회 꼭대기에 십자가를 단 모습이 요즘 한국의 교회와 다르지 않다. 루브르 ⓒ김문환 |
북아프리카의 번영을 얘기하는 이유는? 기독교와 관련해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농촌지역은 아무래도 보수적이다.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고, 안정적인 농사와 생활, 즉 전통이나 관습에 따르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도시는 다르다. 부(富)가 집중되지만, 부(富)의 분배(分配)에서 소외된 사람들로 넘쳐 난다. 부는 언제나 소수의 권력자 손에 모인다.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사람들로 다시 말해 빈민들로 넘쳐난다. 이들은 변화를 추구한다. 사회가 뒤집히고 누군가 새로운 구세주가 나타나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바꿔 주길 기대한다. 도시의 지식인도 변화 욕구를 갖기는 마찬가지. 기존의 지배자나 지배질서의 가치관에 불만을 갖게 되고 그래서 항상 새로운 지식이나 철학을 추구한다. 그것으로 권력 변화의 틈을 엿본다. 그래서, 빈민과 지식인이 있는 도시가 새로운 혁명이나 사상, 종교의 중심가 되는 사례를 인류 역사에서 여럿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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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시 5c 교회모습이다. 교회 꼭대기에 십자가 표시가 여럿이다. 수백억원대 교회 건물이 등장하는 요즘 한국사회 모습과 닮아 보인다. 루브르 ⓒ김문환> |
북아프리카의 번영하는 대도시들은 기독교가 퍼지기 안성맞춤의 조건을 갖췄다. 거기다 제국 말기 더욱 결정적인 조건이 추가되는데... 로마 제국은 3c 이후 극심한 왕위 쟁탈전으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치른다. 여기다 이민족 그러니까 동유럽에서 밀고 내려온 게르만족의 침략이 줄을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국의 유럽 영토는 늘 전란에 시달렸다. 그러나, 제국의 북아프리카 영토는 상대적으로 이런 혼란에서 한발 비켜설 수 있었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안정된 토대 위에서 경제적 번영을 유지했고, 모자이크를 비롯한 문화예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새로운 종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될 수 있는 조건 속에 전화를 피할 수 있었으니 기독교 관련 모자이크가 북아프리카에 많이 만들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카르타고는 그 중심지였다. 루브르에는 카르타고에서 출토한 기독교 관련 모자이크를 여러점 전시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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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머리 뒤 후광으로 봐서 예수님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기독교 초기 예수님의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혀 일그러진 표정이거나 엄숙하고 성스러운 인상이 아니다. 선량한 목자의 모습이었다. 루브르 ⓒ김문환 |
초기 기독교 관련 모자이크들은 재미있는 사실을 전해준다. 먼저 교회 건물. 높은 벽에 삼각 지붕, 그 위에 십자가. 2천년 지나 한반도에서 보는 교회건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예수님 관련. 예수님의 모습을 아주 평화로운 목자(牧者)의 모습으로 그렸다. 너무 위대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나 표정이 아니다. 또, 십자가에 못 박혀 박해받고 고통받는 모습이 아니다. 푸근한 인상이다. 너무 성스럽지도 않고,인간의 죄를 대신 떠 안은 채 고통스러워 하지도 않아 친근감이 간다. 성스럽고 고통받는 이미지는 중세이후 작품에 주로 등장한다. 장례 모자이크도 많은데, 기독교 신자들도 장례 방법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전통을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관을 만들고 그 위에 망자(亡者)의 모습을 모자이크로 그리고 생전의 행적을 적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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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묘지 글자-- 루브르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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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 쓴 묘지(墓誌). 망자(亡者)가 카르타고 출신임을 나타내는 글자가 쓰여 있다. 루브르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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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망자의 초상--이집트인들처럼 망자의 초상을 그려 넣었다. 루브르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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