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미국은 형편없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힘 덕분에 대규모 박물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경우다. 200년이 조금 넘는 역사에 비하면 미국 박물관의 규모는 어처구니 없을 만큼 방대하다.
워싱턴 시내 워싱턴 기념탑과 의회 사이를 지나다 보면 낡은 성곽같은 건물 하나가 눈에 띤다. 바로 세계 최대의 박물관 컴플렉스인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본부, "The Castle"이다.
이 캐슬을 중심으로 18개의 박물관과 국립 동물원,그리고 9개의 연구 센터를 포괄해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라고 부른다.
창립 당시 유일한 건물이었던 캐슬은 이제는 각 박물관의 맛뵈기식 전시물만 갖춰놓은 일종의 안내센터로 물러선 대신 워싱턴 시내 곳곳에 대형 박물관 건물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창립자 제임스 스미스의 유해가 담긴 석관(우측 사진)>
자연과 민속의 역사를 모아 놓은 자연사 박물관, 인간과 하늘 사이에 벌어진 힘과 지혜의 게임을 한 눈에 보여주는 항공 우주 박물관, 미국 인디언의 영광과 좌절을 말해주는 어메리칸 인디언 박물관, 현대 미술의 흐름을 꿰뚫는 허쉬혼 미술관 등 종류도 다양하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입구마다 이렇게 기부금 함이 놓여 있다.(좌측 사진)
입장료가 공짜면 대충 지나쳐 갈 법도 한데 항상 지폐와 동전이 잔뜩 들어 있다.박물관측에서 기부를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넣어둔 게 아니라면 관람객들의 (미국인이든 외국 관광객이든) 문화에 대한 애정이 작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뜻있는 전시물로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심지어는 100달러짜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띤다.
<미국사 박물관>
5천년 역사의 숨결에 익숙한 한국 사람 입장에서 보면 2백년을 갓 넘은 미국사 박물관의 전시물들 가운데는 사실 조금 민망한 느낌이 드는 것들이 적지않다. 박물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조지 워싱턴의 대리석상부터가 그렇다.
깊이 못한 식견 탓에 누구 석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스 학자나 정치인의 포즈와 복장을 그대로 빌려 조지 워싱턴의 얼굴과 합성해 놓은게 분명하다.
일종의 역사 컴플렉스다.
미국사 박물관의 특징은 세계 최초의 대통령제 국가 답게 역사를 대통령 중심으로 구성해 놓았다는 점이다.박물관 대부분의 전시실이 대통령과 관련된 전시물들로 가득하다.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을 따 만든 거리 표지판을 한데 모아 놓았는가 하면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골프채까지 전시돼 있다. 심지어는 <에어포스 1>이라는 순수 오락 영화에서 대통령 역을 맡았던 배우 해리슨 포드가 입은 양복마저 버젓이 한자리를 차지했다.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가 2001년 취임식과 축하 파티에 입었던 빨간 드레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여전히 미국인들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는 케네디 대통령 부인 재키가 목에 걸었던 진주 목걸이가 전시돼 있는 것을 보고 우리 대통령 부인들이 어떤 목걸이를 했었나 생각해봤다. 대통령의 역사를 중심으로 구성한 전시장의 한 쪽에는 관람객들이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즉석 인기 투표를 하는 곳이 있다. 지금까지 누적된 인기 투표 순위가 재미있다.
1등이 조지 워싱턴, 2등이 에이브라함 링컨, 그리고 3등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으로 리더 그룹을 형성했고 바로 뒤이어 빌 클린턴이 4등에 올라 있다.
다음으로는 상당히 떨어지는 득표율로 로널드 레이건이 5위를 차지한데 이어 아버지 부시와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이 1% 이상을 득표한 역대 대통령들이다.
최근 대통령들의 인지도 프리미엄을 감안할 때 80년대와 90년대 대통령들이 빠짐없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은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로 따지면 세종대왕과 영조, 정조 수준의 미국 대통령들 반열에 탄핵 일보직전까지 갔던 클린턴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게 특이하다.
아마 즉석 인기 투표의 성격상 재임중 업적에 대한 차분한 평가보다는 개인적인 매력이 많이 작용한 결과로 생각되지만 그렇다면 60년대 미국의 우상이었던 케네디나 "테디"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인기 있는 대통령이었던 티오도르 루즈벨트는 왜 빠졌나 모르겠다.
인기 투표의 질문이 "가장 효과적으로 직무를 수행한 대통령은 누굴까요?"라면 의아함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 4년 뒤에는 아들 부시 대통령도 즉석 투표의 후보로 올라갈 텐데 과연 그가 어떤 점수를 받을지도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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