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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프랑스

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nsp; 5.프랑스 &nsp; 1)프랑스오늘 이야기 2,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5.프랑스

 

1)프랑스--오늘 이야기

2,3...7)빠리 루브르

8,9,10) 셍제르망 앙 레

11)리용

12...15)비엔느

16)오랑쥬

17)베종라 로멘느

18,19)님므


◆ 1. 프랑스(France)에 대해

 

오늘부터는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러스와 말타를 마치고 모자이크 탐방 5번째 나라로 유럽대륙의 프랑스로 간다. 로마시대 이탈리아 반도의 본토 만큼이나 번영을 누렸던 프랑스에는 그만큼 로마시대 유적도 많고, 그 때 만들어진 모자이크 역시 곳곳에 적지 않게 남아 로마의 전설을 들려준다. 프랑스는 우선 자연환경이 더 없이 아름답다. 서부 노르망디 지방의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밀밭. 낙동강이나 섬진강 모래밭을 연상시키는 중서부 르와르 강의 그림 같은 천변(川邊)풍경. 남서부에 위치한 이탈리아, 스위스 국경의 알프스 설원. 남부 해안지대는 지중해의 에메럴드 빛 해안과 따사로운 햇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스페인 내륙지방에서 보는 황량함이나 독일의 강추위, 영국의 짙은 안개도 없다. 대부분의 땅이 어디든지 비옥하고 살기 좋다.

 

프랑스 중부 뻬리고르 지방 레제지에 있는 크로마뇽인 유적지. 뒤에 호텔 [크로마뇽]이란 간판이 보인다. 호텔자리가 크로마뇽인 유골이발견된 자리다. 사진 앞쪽의 철도를 부설하면서 19c말 우연히 발굴됐다. 레제지 ⓒ김문환

 

역사유적도 자연을 닮았다. 선사시대부터 2차 세계대전의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건 하나하나에 프랑스를 떠나 세계사적 의미가 담긴 경우가 많아 더욱 두드러진다. 현생인류의 조상 크로마뇽인 동굴 유적과 선사 동굴예술의 백미인 라스꼬 벽화, 유럽최대의 청동기 시대 거석유적지 까르낙, 님므를 비롯해 숱한 로마 유적, 빠리 노트르담등 하늘을 찌르는 중세 고딕 성당, 르와르 강과 어울어지는 그림같은 르네상스 양식의 성, 절대왕정의 장엄미가 깃든 바로크 양식의 베르사이유. 무엇보다 자유·평등·박애 사상의 숨결을 인류에 선사한 프랑스 대혁명 유적...

 

중세 고딕 양식 성당. 최고의 관광도시 빠리 세느강의 섬 시떼에 자리한 노트르담 성당. 13c 건축된 고딕 양식의 걸작이다. [노트르담]은 성모마리아를 지칭한다. 빠리 ⓒ김문환

 

문학과 예술, 학문으로 옮겨 오면 숨이 더 가빠진다. 하나씩 열거하다 보면 프랑스인들의 높은 콧대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해도 이해는 된다. 19-20c 프랑스 미술은 세계 미술사와 판박이다. 다비드와 엥그르의 고전주의. 제리코와 들라크르와의 낭만주의. 쿠르베의 사실주의. 밀레의 자연주의. 마네와 모네의 인상주의. 쇠라 시냑의 신인상주의. 세잔느, 고갱, 고흐의 후기 인상주의. 마티스와 루오의 야수주의.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 샤갈과 자코메티의 초현실주의... 하나의 아름다움에 매몰되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의 세계와 해석을 찾아 끝없이 항해를 지속한 미적 오디세이의 결과물이 프랑스 미술사요, 이가 곧 세계 미술사가 됐다. 프랑스의 문학이나 철학이 가꿔 온 궤적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인류사회에 내놓은 열매가 크고 달다.

 

[삼총사]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저택. 빠리 근교 세느강변에 자리한다. ⓒ김문환

 

그렇다고 프랑스가 천사들의 무릉도원은 아니다. 프랑스도 서구 각국이 걸어온 제국주의의 길을 충실히 밟아 온 국가다. 그 부작용은 얼마 전 프랑스 전역에서 번졌던 인종갈등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미국에서 느끼는 극심한 빈부격차, 이성과 합리 대신 독선과 종교의 역할이 더 두드러지는 사회운영 원리, 공존 보다 자본의 이기주의에 함몰돼 무한경쟁의 약육강식으로 치닫는 그런 야만적인 분위기가 훨씬 덜하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 들여다 볼 대목이 많은 나라다. 물론 프랑스뿐 아니라 북서유럽 국가 대부분에서 비슷한 분위기를 경험하지만, 통합 유럽연합의 주력국가로 프랑스와 독일, 그 가운데서도 사상, 문화, 경제적 친밀도를 감안하면 프랑스를 먼저 떠올리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부지런히 배울 바를 찾는다면 실(失)보다 득(得)의 바구니 쪽으로 더 많은 성과물이 가득 채워질 것이다.

 

◆ 2. 프랑스의 역사와 유적

 

먼저 프랑스의 역사부터 간략히 들여다 보고, 모자이크 탐방에 나선다. 프랑스 땅은 크로마뇽인이 3만년 전 레제지에서 구석기 시대를 열고, 만 5천년 전에는 라스꼬에 동굴 벽화를 남기는 등 구석기 시대부터 활발한 인류역사의 생활무대였다. B.C 3천년 경 청동기인들이 남긴 대서양 연안의 거석유적을 지나면 B.C 10c 전후해 중부유럽에서 철기문명을 가진 켈트인들이 들어와 터전을 일궜다. 오늘날 프랑스인들의 직접 조상이 된 골(갈리아)족이다. 골족이 프랑스 내륙에 자리잡은 것과 달리 남부 지중해 연안에는 B.C 7c 그리스인들이 배를 타고 몰려들어 마실라(마르세이유)등의 정착 도시를 건설했다. 골족은 남부의 그리스 도시는 물론 이탈리아 반도의 에트루리아와 교류하면서 발전해 나갔다.

 

로마시대 신전. 작은 로마로 불리던 프랑스 남부 님므의 신전, 메종 까레라고 부른다. 코린트 양식의 이 신전은 지금 벅원돼 내부가 작은 박물관으로 쓰인다. 님므 ⓒ김문환

 

그러나, 강력해진 로마가 B.C 1c 그리스와 골족을 제압하고 프랑스땅을 차지했다. 그 일을 마무리 지은 장본인이 바로 로마공화정을 독재정으로 바꾼 카이사르다. 로마시대 프랑스는 앞선 로마의 과학기술 문명에 토착 문화를 결합해 갈로-로망(Gallo-Roman) 문명을 일궈냈다. 특히, 이탈리아 반도와 맞닿아 있고, 기후나 지형조건이 좋은 프랑스 남부는 루그두눔(리용)을 중심으로 님므, 아를르, 오랑쥬등이 로마시대 최고의 번영을 누리며 많은 유적을 남겼다. 융성하던 로마문명은 그러나, 동유럽의 게르만족이 중앙 아시아에서 온 훈(흉노)족에게 밀려 서유럽을 침범하면서 종말을 고하고 만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프랑스는 게르만족의 일파 프랑크족의 손으로 넘어갔다. 골(갈리아)에서 프랑스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계기다.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규모는 작지만 외관은 더욱 완벽하게 남아있다. 프랑스 남부 아를르의 이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은 요즘도 투기장으로 사용된다. 바로 투우경기. 스페인만 투우경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남프랑스 지방도 투우경기를 즐긴다. 아를르 ⓒ김문환

 

프랑크 왕국은 초기 오늘날 프랑스, 이탈리아 북부, 독일을 포함하는 나라였다. 그러다, 메로빙거 왕조를 거쳐 카롤링거 왕조 때인 843년 베르덩 조약을 통해 샤를 마뉴(칼대제, 大帝)의 아들들에 의해 3분할 됐다. 셋으로 나뉜 왕국 가운데 서프랑크 왕국이 오늘날 프랑스 영토 비슷한 크기로 국경의 윤곽을 그리며 발전했다. 까페 왕조의 중세를 거치면서 프랑스는 기독교 세계를 대표하는 서유럽의 중심국가로 군림했다. 15c 영국과 백년전쟁을 마친 뒤, 16c 부터 르네상스를 받아들여 부흥하고, 17-18c 중상주의 정책과 해외 식민지 개척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영국과 식민지전쟁에서 패배, 미국 독립전쟁 지원에 따른 재정압박을 견디지 못한데다 계몽 자유주의 사상이 번지면서 1789년 인류사 민주주의 역사에 새장을 연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

 

르네상스 군주 프랑수아 1세가 태어난 꼬냑 성. 지금은 이름난 꼬냑 오따르(Otard)를 만드는 공장으로 변했다. 꼬냑 ⓒ김문환

 

1789년 대혁명 때 국민 손으로 왕을 처형하고 공화국을 수립했지만, 곧 바로 나폴레옹이 나타나 황제정으로 혁명을 변질시키고 만다. 독재자 나폴레옹의 해외 정복전쟁으로 프랑스는 19c 초반 잠시 중세 프랑크 왕국시대를 넘어서는 광대한 영토를 가졌다. 그러나, 1815년 워털루 전투 패배로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프랑스는 다시 앙샹 레짐(Ancien Regime) 즉 구체제의 부르봉 왕정으로 돌아갔다.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을 통해 공화국 건설을 위한 끝없는 노력이 전개되고, 마침내 1870년 프러시아와 패전을 계기로 황제정을 종식시키며 민주 공화정을 일궈냈다.

 

중세 다리. 발랑트레 다리. 그림보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까오르 ⓒ김문환

 

1789년 혁명 발발 뒤 백여년 동안 혁명과 반동의 반복되는 투쟁 속에 피의 대가를 치르며 얻은 성과다. 1945년 미국이 해방을 던져 주고 그 속에서 법규정 하나로 민주주의 공화국을 선언한 한국의 민주주의. 우리 역사가 해방이후 지금까지 겪고 있는 시행착오는 인류사 민주주의 발전과정에 견줘 볼 때 통과의례(通過儀禮)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역사발전이란 한 번의 일탈적 성공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일탈이 반복되면서 정반합의 내재적 갈등과 통합의 체험을 통해 정상궤도에 오르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오늘날 우리사회에 던져 주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다.

 

로마시대 극장. 오랑쥬에 있는 이 로마시대 극장은 방대한 규모가 탐방객을 압도한다. 요즘도 여름철이면 공연이 펼쳐진다.오랑쥬 ⓒ김문환

 

세계 최대의 관광도시 빠리(Paris). 빠리가 로마시대 건축된 도시고, 당시 유적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하면 아마 좀 놀랄 분들이 있을 지 모른다. 로마 유적이 빠리에서도 다른 곳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세느강 씨떼(Cite)섬 노트르담 성당 지하에 있다면 더 놀랍다. 빠리를 비롯해 프랑스에는 곳곳에 로마 유적이 많다. 기후가 좋고 강을 낀 중남부 지방과 지중해 연안에서 가까운 리용, 아를르, 님므, 비엔느, 베종라 로멘느, 글라눔, 오랑쥬, 나르본느, 오떵은 대표적이다. 로마 신전, 성벽, 도로, 개선문, 저택, 목욕탕, 상하수도, 화장실같은 유적이 오롯하다.

 

바로크 양식의 거작으로 꼽히는 보르도 대극장. 18c 말에 건축된 이 극장과 그보다 천 8백년 앞서 건축된 오랑쥬의 극장을 비교해 보면 규모나 용도 면에서 특별한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인간의 역사 삶이라는게 시대를 떠나 큰 차이 없음을 보여준다. 보르도 ⓒ김문환

 

특히 아를르와 님므의 원형경기장, 님므의 수도교, 오랑쥬의 극장등은 지중해 문명권 로마유적 가운데 최고의 보존상태를 자랑한다. 모자이크도 곳곳에 남아 로마예술의 진수를 전해준다. 특히 빠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터키나 튀니지, 알제리등의 로마유적지에서 발굴해온 빼어난 모자이크를 전시하고 있어 모자이크 탐방에서 꼭 들러야 할 명소다. 다음 글부터 모자이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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