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독의 별명인 [충무로 토킹 머신]답게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유창한 달변으로 토해내는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소탈한 스타일이어서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황산벌이 성공해서 축하드린다고 했더니 이전에 '쎈' 가격으로 수입한 헐리우드 대작 영화 몇 편이 때마침 불어온 한국영화 열풍 때문에 흥행에 참패하는 바람에 그때 진 빚이 많이 남아있고 갚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더군요.
얼마전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 자신이 영화를 찍는 원동력은 '빚'이라고 말한 걸 보니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킹콩]이나 [나니아 연대기..]같은 쟁쟁한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흥행 1위를 달리고 있어서 제가 갚아야할 빚은 아니지만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 양반 집을 찾아다니며 재주를 보여주는 광대패의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은 재주 이외의 헛된 탐욕에 자신을 파는 것을 거부하고 패거리에서 도망쳐 나와 한양으로 향합니다. 저자거리에서 공중제비 재주로 벌어먹고 사는 육갑(유해진) 패거리를 만나 당시 왕인 연산군(정진영)과 그의 첩 장녹수(강성연)를 풍자하는 광대놀이로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 하지만 왕을 희롱했다는 이유로 잡혀가게 됩니다.
연산군을 가까이서 모시는 내관 처선(장항선)은 장생 패거리를 눈여겨보다가 왕 앞에서 재주를 보이되 왕을 못 웃기면 죽음을 각오하라고 기회를 줍니다.
다행이 왕이 흡족해 했고 장생 패거리는 궁중광대로 신분이 수직상승을 합니다. 탐관오리의 비리를 풍자하는 탈춤극을 벌이자 왕은 그를 구실로 신하의 목을 베고, 폐비 윤씨에 대한 경극을 연기하자 왕은 또 광기를 드러냅니다.
이런 피바람의 한가운데에서 연산군은 여자보다 더 고운 자태를 가진 공길에게 집착하고 장생은 공길과 함께 궁을 떠나자고 하지만 공길은 현실을 체념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
[왕의 남자]는 연극 [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극을 보지 못했지만 장르의 특성 때문에 연극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폭군으로 영화와 TV 사극의 단골 주인공인 연산군이 나오지만 영화는 조선시대 가장 밑바닥 계층인 광대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황산벌]이 삼국통일과 계백, 김유신을 등장시키지만 정작 주인공은 보잘 것 없는 백성인 [거시기]였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조금 규모가 크다 싶으면 100억원이 훌쩍 넘어버리는 요즘 한국영화 제작비에 비해 이 영화는 사극인데도 44억원 밖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증이나 세트 등에 허술한 구석은 좀처럼 발견하긴 어렵습니다. 그만큼 짜임새있게 만들어졌다고 보여집니다. 짜임새 있는 비주얼에 걸맞게 이야기 구조도 탄탄합니다. 강약과 완급, 웃음과 눈물이 적절한 순서로 배열돼 있어 2시간 가량의 상영시간이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을 할 틈이 별로 없더군요. 대부분의 관객들이 웃어야 할때 모두 웃으며 영화와 호흡을 같이 하더군요.
웃음 코드의 가장 큰 역할은 주연들이 아니라 조연 격인 육갑 패거리의 몫입니다. 험상궂은 얼굴 덕분에 악역이나 코믹한 역할로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인 유해진은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 더 생동감있게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아직까지 부드러운 미소년의 이미지가 남아있는 감우성은 여기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장 낮은 계급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더 자유롭게 살고자하는 광대로 현실에 쉽게 체념하는 공길을 끝까지 챙기고 또 왕에게 호통까지 치는 강인한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가늘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다소 부조화스럽습니다.
시사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로 친숙한 정진영도 지적이며 차가워 보이는 지식인같은 그동안의 단골 이미지에서 탈피해 광기와 불안에 휩싸여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연산군을 훌륭하게 연기합니다. 생모의 죽음을 접하고 또 권력욕으로 가득찬 대신들에게 시달리며 정신적인 상처가 깊어지는 인간 연산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가느다란 눈매와 여자보다 고운 얼굴 선을 가진 공길역의 이준기도 신인답지 않게 균형을 잘 잡습니다. 자칫하면 불쾌감을 안겨줄 수 있는 동성애적 코드가 부분에서 드러나기는 하지만 공길과 장생의 심리 변화를 쫓다보면 그리 과도하다고 보여지진 않습니다.
황산벌이 흥행에 성공했을 때 일각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그릇된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습니다. 어차피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일정 부분의 수정이나 창작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황산벌에서 이런 지적을 받은 것은 감독의 주제의식이 후반으로 갈수록 마치 살이 부족해 옷위로 뼈가 드러나듯이 너무 과도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의 남자]에서도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지만 [황산벌]만큼 생경하지는 않습니다. 탄탄한 뼈대 위에 살을 적절하게 붙이는 공력이 향상된 것 같습니다.
당시 사회 최하층 계급인 광대로 살면서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살고 싶어했고 왕보다도 자유롭게 살고 싶어했던 장생과 광길, 비극적인 최후를 맞으면서도 다시 태어나면 광대가 되고 싶다고 외치는 그들을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물질적 객관적인 풍요보다는 정신적인 자유에서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어쨋든 오랜만에 엔딩컷의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