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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의 집(Villa of Theseus)
[테세우스의 집]은 [아이온의 집]을 조금 지나 왼쪽으로 나타난다. 1965년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고고학팀이 발굴을 시작했으니, [아이온의 집]보다 앞선다. 발굴을 시작한 첫해에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사냥의 여신이자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동상을 찾아냈다. 이어 1966년 [테세우스의 집](Villa of Theseus)터를 발굴하는데 성공했다. [테세우스의 집]이란 이름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장면의 모자이크가 나온 데서 따왔다. 이 집은 기원전 헬레니즘시기 처음 건축한 뒤 로마시대인 2c 집터 위에 재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집의 규모가 무척 크다. 동서 길이 120m, 남북은 80m나 된다. 헬레니즘기에 지은 저택으로 지중해 주변에 남아있는 저택 가운데 손꼽힐 만큼 방대하다. 집터를 발굴하면서 라틴어 명문이 나오는데 이는 아주 이례적이다. 로마 시대라 해도 과거 그리스 문명권인 헬레니즘 권역에서는 라틴어 대신 그리스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집은 개인이 살던 곳이라기 보다 로마의 총독같은 고위 관리가 거주한 공공 빌라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테세우스의 집] 전체 면적은 9천 6백㎡다. 이 가운데 모자이크로 덮인 부분이 무려 천 4백㎡다. 시칠리아 피아짜 아르메리나의 카잘레 빌라 모자이크 면적 3천 5백㎡에 비하면 작지만, 무척 큰 규모다. 정원의 풀밭을 빼고 맨땅은 모두 모자이크로 뒤덮었다는 얘기다. 모자이크 소재는 정교한 기하학 무늬가 90%를 차지한다. 인물 묘사 부분은 10%로 적다. 사연은 제작비. 인물을 넣으면 작업이 더 복잡해지고 그만큼 가격이 비싸진다. [테세우스의 집] 모자이크는 재료가 무척 작다. 2-5mm의 미세한 테세라를 사용했다. 다른 저택의 모자이크 보다 정교하게 제작된 이유다.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할 수 있었다. 모자이크 제작연대는? 3c에 처음 모자이크를 설치한 뒤 5c까지 여러 차례 개작(改作)된 것으로 추정된다.
[테세우스의 집]에서 가장 이름높은 모자이크는 회랑 남쪽 왼쪽 첫번째 방에서 발견된 [테세우스의 미노타우로스 처치]. 방의 크기는 가로 6m, 세로 5.5m다. 그러나 방전체를 덮었던 모자이크의 대부분이 훼손되고 직경 2.2m 가량의 원형에 들어있는 중심부 그림만 남았다. 크레타의 섬 미궁에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장면. 그림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검은 부분은 컴컴한 미궁(迷宮) 속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화면 한가운데 선 주인공 테세우스. 결연한 표정으로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고 왼손으로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잡아 내리친다. 희생되는 미노타우로스의 모습은 훼손돼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림 아랫 부분에 그리스어로 '미노타우로스'라는 명문으로 그 자리에 미노타우로스가 그려졌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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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세우스--검은 부분은 컴컴한 미궁 속. 테세우스가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고 왼손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잡아 내리치려는 순간이다. 미노타우로스의 모습은 훼손됐고, 그리스어로 '미노타우로스'라는 명문만 뚜렷하다. 왼쪽 아래 노인은 미궁을 상징하는 어둠의 정령. 어둠을 의인화했다. 오른쪽은 '크레타'라는 명문에서 알 수 있듯이 크레타섬을 의인화한 여인이다. 꼭대기는 테세우스를 사랑해 미궁진입 방법을 일러준 아리아드네가 근심스런 얼굴로 바라본다. 3c 만들어 4c 지진으로 훼손된 뒤 다시 보수한 작품이다. 파포스. ⓒ김문환 |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노인은 미궁을 상징하는 어둠의 정령(精靈)이다. 헬레니즘풍 모자이크의 전형적인 기법인 추상명사의 의인화(Persnification)다. 오른쪽 위에 상반신만 나오는 여인은 '크레타'라는 그리스어 명문에서 알 수 있듯이 크레타섬을 의인화한 인물이다. 크레타 섬 미궁속이라는 장소와 상황을 두명의 의인화한 인물로 설명하는 표현 기법이다. 가운데 꼭대기에 있는 여인은? 아리아드네. 이복형제인 미노타우로스에게 바쳐질 공물로 온 아테네의 테세우스를 사랑한 여인. 테세우스에게 실과 칼을 줘 미궁에 들어간 뒤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다시 살아나올 수 있도록 방법을 일러준 비련의 주인공. 아리아드네는 조국을 배반하고 사랑을 선택한 낙랑공주를 닮았다. 호동왕자에게 북을 찢도록 알려 준 낙랑공주. 낙랑공주 덕분에 한민족은 중국인을 한반도에서 몰아 낼 수 있었지만... 아리아드네는 사랑하는 테세우스가 일을 성공적으로 치르는지 근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 모자이크는 3c 만들었지만, 4c 지진으로 훼손되자 다시 보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테세우스(Theseus)와 관련된 신화 내용을 좀더 들여다 보자. 아테네왕 아에게우스는 델포이 아폴론 신탁소에서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돌아오다 트로이젠 공주 아이트라와 잠자리를 가졌다. 아에게우스는 징표로 칼과 샌들을 댓돌에 묻어 놓고 아이가 크면 자기 힘으로 돌을 들어 징표를 꺼낸 뒤 찾아오게 하라고 일러준다. 그 아이가 테세우스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동명성왕이 부여에서 아들을 잉태 시킨 뒤 칼을 잘라 주고 나중에 찾아오도록 한 얘기와 한치도 어김이 없다. 그 아들이 나중에 고구려로 아버지를 찾아와 고구려의 2대 유리왕이 되듯이, 테세우스도 성장한 뒤 아버지의 나라 아테네로 와서 왕이 된다.
테세우스의 탄생과 관련해 이설(異說)도 전한다. 아에게우스가 아이트라와 동침하기 직전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먼저 아이트라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테세우스는 포세이돈의 자식이라는 주장인데... 아무튼 테세우스는 아테네 시민들의 환호 속에 아이트라의 후계자가 됐다. 이 무렵 아테네는 약소국이었다. 강대국 크레타의 왕자 안드로게우스가 아테네에 와서 들소사냥에 참석했다가 그만 사고로 죽자 화가 난 크레타왕 미노스가 아테네에 무거운 벌을 내렸다. 7년에 한번씩 7명씩의 젊은 남녀를 공물로 보내라는 것. 젊은 남녀는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에게 바쳐졌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왕의 왕비 파시파에가 흰 황소와 나눈 사랑의 결실로 태어났다. 머리는 소요 몸은 인간인 반인반우(半人半牛)의 비극적인 창조물. 테세우스는 자진해서 크레타로 가 미노스왕의 딸인 아드리아네의 도움으로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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