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데릭 지터의 레인지 팩터(RF)와 존레이팅(ZR), 그리고 리그 전체에서의 순위입니다. (순위는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들 간의 순위입니다.)
RF ZR
2001년 3.81 (23명 중 23위)0.789(23명 중 23위)
2002년 3.81 (27명 중 27위) 0.803 (27명 중 26위)
2003년 3.75(22명 중 22위) 0.791 (22명 중 22위)
이게 얼마나 나쁜 수치인가 하면...
2002년에 A-ROD는 0.919의 ZR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ZR은'STATS.INC에서 측정한, 포지션 별 '전형적 수비 지역'으로 날아간 타구를 수비해 낸 비율'을 말하지요. ZR로 볼 때, 지터는 A-ROD보다 수비 범위가 14%나 좁은 유격수였던 셈이죠.
이랬던 데릭 지터가, 2004년 갑자기 변신합니다.
RF ZR
2004년 4.46 (22명 중 11위) 0.847 (22명 중 11위)
RF에서 0.07이상, ZR에서 0.05 이상이 갑자기 증가하면서, 지터는 평균 정도의 수비 범위를 가진 유격수로 업그레이드됐지요. RF가 측정된 이래, 서른이 넘은 유격수가이 정도의 레인지 향상을 보인 경우는 지터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야구 천재'라는 원래 이미지에, 실제로 수비 범위까지 넓어지면서, 지터는 어렵지 않게골드글러브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지터는 올해도 더 향상된 RF와 비슷한 ZR을 유지하면서, 골드글러브를 2연패 했습니다.
왜 지터는 뒤늦게 수비가 좋아진 것일까요?
여러가지 설이 나왔지만, 그 중 흥미로운 건 2004년이 A-ROD가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시즌이었다는 겁니다.
수비가 나은 A-ROD에게 유격수 자리를 내놓지 않은 지터의 고집 때문에 양키스가 수비에서 손해를 봤다는 게언론의 중론이었죠. 자존심이 상한 지터는 이전의 느슨한 자세를 벗어던지고 죽어라고 뛰었다는 겁니다. 이전 같으면 미리 포기했을타구를 한 발 더 뛰어 커버했다는 거죠. 실제로 지터는 2004년 올스타 브레이크 즈음에 'A-ROD를 3루로 돌린 게 양키스의 손해다'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뛰고 있다라는 언급을 한 바 있습니다. (출처가 생각이 안 나네요...죄송)
'수비 범위'가 '정신력'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지요.
올해 우리나라 골든글러브의 유격수 부문 수상이 유력한 손시헌의 발언에서도, 이 가능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박)진만이 형이 저보다 잘 하죠. 자세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딱 필요한 동작만 간결하게 하니까 실수할가능성도 적은 거죠. 저는 몸이 작아서 송구할 때 온몸으로 전력을 써서 던져야 하거든요."
"하지만 수비 범위는 제가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아직 후배고, 돈도 더 벌어야 하니까^^ 더 열심히움직여야 하거든요." (원문을 보시려면 여기로)
야구에서 감독의 역할은 실제로 크지 않다는 게 세이버메트릭스계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볼넷 얻기-장타 노리기 효과적인 공격 방법이라면, 감독의 존재 이유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공격에서의 작전 지시의 효용성이 확 떨어지지요. '머니볼'에서 아트 하우 감독을 거의 허수아비로 묘사한 대목은, 책의 재미를 위한 과장이 섞여있더라도 분명 '새로운 조류'의 관점이 반영된 부분입니다.
하지만, 수비가 '정신력'과 관련돼 있다면 감독의 역할은 새로운 조명이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선수가 열심히 뛸 동기를 유발해 줄, '모티베이터'로서의 역할이 그것이지요.
그 방법이 '큰 형의 따뜻함'이든, '범접 못할 슈퍼스타의 카리스마'든, '팬들의 열광을 불러일으키는 쇼맨십'이든 말이죠.
'큰 형의 따뜻함'은 아지 기엔을,
'범접 못할 슈퍼스타의 카리스마'는 선동열을,
'팬들의 열광을 불러일으키는 쇼맨십'은 바비 발렌타인을 말하려 한다는 것, 눈치 채셨죠?^^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삼성, 지바 롯데는 3국의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세 팀의 또다른 공통점은, 뛰어난 수비력을 가진팀이었다는 거죠.
삼성은Defensive Efficiency Rate (DER. 인플레이된 타구를 아웃시키는 비율)에서 리그 수위를 차지했습니다. 화이트삭스는 2위를 차지했지요. 지바 롯데는 통계를 못 구했는데, 역시 퍼시픽리그 최고의 수비력이라는 평가를 받는 팀이죠.
뛰어난 팀 수비는 평범한 투수를 좋은 투수로, 좋은 투수를 특급 투수로만들고,
특히 점수가 많이 나는 구장에서는 큰 구장에서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웃카운트 하나의'점수 가치'가 더 크기 때문이죠.
대구구장은 한국 최고의 다득점구장,시카고의 US 셀룰러필드는 아메리칸리그 두번째의 다득점구장이지요. (지바 마린 스타디움은 1.01 정도로, 평균보다 약간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입니다)
결국 2005년은, 세이버메트릭스가 완전히 알아내지 못한 '수비의 가치'가 세계야구계를 평정한 한 해였는지 모릅니다.
***P.S***
2004년 9월에, ESPN의 칼럼니스트 피터 개먼스는 'Judging defense becoming key'라는 기사를 썼습니다.'머니볼' 오클랜드가 방향을 틀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기사였지요. 출루율의 가치가 알려지면서, 예전이면 헐값일 선수들의 몸값이 뛰어 올랐고, 때문에 빌리 빈은 또다시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게 바로 수비였다는 거죠. 실제로 2005년에 오클랜드는 DER에서 화이트삭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이제 예전처럼 막강한 공격력이 아니지만, 오클랜드는 수비만 가지고도 포스트시즌 컨텐더로서의 위용을 유지했지요. 시간이 더 지나면 수비의 가치가 더 자세하게 밝혀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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