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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뒤를 포기하는 방송 뉴스

BR 미국 방송 뉴스의 별 하나가 또 화면을 떠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ABC 뉴스 피터 제닝스를 비롯해 공중파 3사 메인 뉴스 앵커들이 잇따라은퇴한데 이어 올들어네번째다.BR 고별의 주인공은 ABC 뉴스 Nightline의 앵커 겸 제작자 테드 커플 (Ted K



미국 방송 뉴스의 별 하나가 또 화면을 떠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ABC 뉴스 피터 제닝스를 비롯해 공중파 3사 메인 뉴스 앵커들이

잇따라은퇴한데 이어 올들어네번째다.


고별의 주인공은 ABC 뉴스 Nightline의 앵커 겸 제작자 테드 커플 (Ted Koppel).


주중 매일 밤 주요 시사 이슈에 대해 당사자들을 불러 놓고

예리한 질문과 치열한 토론으로

시청자들의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했던 값진 프로그램의 산증인이다.

무려 26년 만에 자리를 내놓는 것이라는 설명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얼마나 비중있는 프로그램이었길래

26년 동안 이름 한번 바뀌지 않고 장수할 수 있었을까.

프로그램 방송 횟수만 해도 무려 6500회를 넘는다고 한다.

앵커 목숨이 (프로그램의 목숨도 마찬가지다) 3년 넘기기 버거운

우리 방송 뉴스의 조급성과 비교할 때 부럽기 그지 없는 기록이다.


앵커 테트 커플은 그의 프로그램이 입증하듯

엘리트적이면서도 대중에 호소력을 갖는 용모와 목소리,

그리고 진행능력으로 유명한 방송 기자다.

그의 나이트라인은 시류에 영합하지 않으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 온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에미상 37회. 피바디 언론상 6회 등

그동안 나이트라인에 주어진 상의 리스트만 봐도

프로그램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6년을 지켜온 현장을 마침내 떠나는 노 방송인의 표정은 밝지 않다.

언론과의 잇딴 고별 인터뷰에서도

방송 뉴스의 현실에 대한 가슴 아픈 고언이 계속됐다.

특히 뉴스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그의 충고는

한국의 15년차 방송기자를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뉴스란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전달하는 비지니스가 아닙니다.

거꾸로 시청자들이 봐야 한다고 기자가 판단하는 것들을 보도하는 게

바로 뉴스입니다.

방송기자는 하루 종일 세계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취합하고 분류하고 정리해서

시청자들이 꼭 알아야 한다고 결정한 뉴스를 전달할 의무가 있습니다."


방송 뉴스의 편집 원칙에 대한 영원한 고민거리에 대해

거침없이 한쪽 손을 들어주는 주장이다.


시청자들이 보다 소프트한 뉴스를 원하는데...

젊은 시청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보다 트렌디한 기사가 필요한데...

경제 문제는 어렵고 시청자들이 지루해 하니...


세상 모든 방송사의 보도국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불거지는 이런 고민들을

커플은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 상에서 커플은

방송사간의 지나친 속보 경쟁에 대해서도 매섭게 비판하고 나섰다.

긴급 속보 경쟁에 휘말려 누가 뉴스 속보를 몇초 먼저 방송했는지를 다투는 현실은

방송 뉴스의 본질을 호도하는 부끄러운 단면이라는 지적이다.


방 안에 텔레비젼을 너댓개씩 켜 놓고

뉴스 속보를 누가 가장 먼저 보도했는지 따지는 시청자는

방송국 간부들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시청자들에게는 벌어진 사건의 진실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지

자세한 사실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측으로 가득 찬 속보를 내보내는 것은

오히려 직무 유기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사안이 벌어지면 그 사안의 파장을 고민해야지

벌어진 사실을 전하는데만 급급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의 비유가 재미있다.

"오늘의 방송 뉴스는 5분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한 보도는 잘하는데

5분 뒤에 그 뉴스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추세인 소프트 뉴스와 신속한 뉴스를 포기하고

분석 위주의 뉴스만 하다보면 그런 걸 누가 보겠냐는 솔직한 질문에도

커플의 대답은 단호하다.


"소프트 뉴스로 승부하려는 행위는 게으름과 자신 없음의 반영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뉴스라도 쉽고 흥미있게 포장하는 일이

바로 방송 기자의 직무입니다.

알기 좋게 해석하고 구성하는 노력만 기울이면 시청자들은 곧 돌아올 겁니다."


커플은 이런 주장에 더해

미국 방송 뉴스가 국제 뉴스의 비중을 줄여가는 현상에도 일침을 놓는다.

자신이 기자 일을 시작하던 60년대 만 해도

방송사마다 수십명의 특파원이 전세계에 파견돼 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것 역시 시청자들이 원하는 뉴스만 좇는 현상이라고 비판한다.


특파원이 줄어든다는 의미를다른 말로해석하면

국제 뉴스가 그림거리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CNN, APTN을 비롯한 주요 영상공급업체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뉴스 영상을 공급하면

그걸 흥미 거리로 보여주는데만 그치지

회사가 파견한 특파원이 현장을 직접 밞고 서서

뉴스의 본질을 파헤치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송 뉴스가 따끈 따끈하고 폭신폭신한 기사로 가득차는 현실을

단호히 거부하고 4 반세기 동안 나이트라인을 지켜왔던 노 방송기자는

이런 고언을 뒤로 하고 스튜디오를 떠난다.


수십년 전 ABC 뉴스가 새 메인 앵커를 물색하던 즈음

자기는 하루 하루 벌어지는 뉴스를 숨가쁘게 공급해야 하는 메인 앵커자리가 싫다며

눈 앞에 놓인 부와 명성을 스스로 발로 차버리고 나이트라인을 선택했던 인물이다.


그는 결국 당시 자기의 생각이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는

만족감을 간직하고 방송 인생을 마감하고 있을 것이다.

재미 없는 토론 뉴스라는 비아냥이나,

프로그램을 중단하거나 별 볼일 없는 시간대로 옮기려는

경영진의 줄기찬 시도를 물리치는데 성공한 것은 물론

나름대로 부와 명성까지 얻은 채 자리를 내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명예로운 퇴장 뒤에 남은

커플의 딸을 비롯한 전세계 방송기자들은

위기에 봉착한 방송 뉴스의 현실을 끌어 안고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여 있는게 사실이다.


* 테드 커플의 딸은 CNN 국무부 출입기자로 일하는 Andrea Koppel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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