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메뉴를 간판으로 내건 가게가 나옵니다.
평양 모란봉 아래 있는 '을밀대' 정자 이름을 딴 이 가게는 30여년째, 평양냉면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가게 안채 벽을 장식한 유명인사들의 글귀에서 이 집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름 대목도 지난 요즘 가게안은 한산한 모습이지만 사시사철 오랜 단골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이곳은 또한 냉면 한 그릇으로 향수를 달래는 실향민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홍태윤(30년 단골)/실향민 1세대 : 실향민 1세대 어릴때 어머니가 빚어주던 냉면 맛과 같아서 자주 온다. 이 냉면에 젖어들면 안 먹고는 못 견딜 정도다.]
평양냉면의 명가로 소문난 이집 주인 김사장은 지난 여름, 부친이 작고한 뒤 2대째 가업을 대물림했습니다.
7년 전, 가업 전수에 회의적이었던 김사장은 부친의 가출을 계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김영길/'을밀대' 대표, 2대째 대물림 : 아버지가 계속 가업을 이으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으니까 두달 정도 가출을 했다. 여름은 다가오고, 맡아서 할 사람은 없고 해서 내가 가업을 잇게 됐다.]
3년 동안 부친에게 전수받은 면발의 비법은 메밀과 전분의 절묘한 배합비율에 있습니다.
메밀이 주성분인 평양냉면은 면발이 잘 퍼지기 때문에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뽑아냅니다.
살얼음을 띄운 육수는 4년전, 김포에 별도로 공간을 마련해서 남동생과 어머니가 전담해오고 있습니다 .
사골뼈와 양지머리를 7시간 동안 푹 고아서 영하 30도에서 얼린 뒤, 녹여내는 육수는 부친이 일생을 건 작품입니다.
해방 후 평양 부근 안주에서 월남해 대구에 정착한 부친이 냉면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할아버지가 사준 평양냉면 맛에 반하면서 부터입니다.
[김영길/'을밀대' 대표, 2대째 대물림 : 어린 마음에 냉면을 먹고 싶은 마음도 있고해서 냉면집에 취직을 해서 냉면도 실컷 먹고, 냉면기술도 배우게 됐고.]
18살 때부터 냉면가게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비법을 터득한 부친은 지난 1971년 , 상경해 지금의 자리에 냉면 가게를 열었습니다.
창업 초창기에는 평양냉면의 맹맹한 맛이 호응을 얻지 못하고 계절을 타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석남/어머니 : 준비한 냉면이 안 팔리면 식구들이 먹기도 하면서 겨우 연명을 했다.]
당시, 함흥냉면으로 메뉴를 바꾸는 가게들도 많았지만 옹골차게 맛을 고수한 결과, 90년대부터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창업 20년만에 , 성공한 비결은 정직한 경영철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석남/어머니 : 사람이 하는 일인데 맛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손님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러면 손님들이 그럴 수 있겠다면서 이해를 해줬다.]
평양냉면 고유의 맛을 잇기위해 애를 쓴 창업주의 삶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석남/어머니 : 항암제 치료를 받고도 그날 퇴원하려했다 아이들에게 맡겨두니까 걱정된다고 이튿날 퇴원하자마자 공장에 가서 육수를 만들었다.]
맛에 관한 한 외골수였던 창업주는 분점 제의도 숱하게 받았지만 맛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십개의 평양냉면집들이 속속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명성을 누린 비결은 옹골차게 맛을 고수해온 장인정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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