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목기의 고장으로 유명한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자락 아래, 둥지를 튼 지산 옻칠공예는 4대째 목기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제기를 깍느라 분주한 동생 만호씨와, 일손을 거드는 형 만수씨는 7년전 부친이 작고한 뒤 가업을 대물림했습니다.
부친의 뒤를 이어 목기장의 길을 선택한 동생은 지난 1995년 인간 문화재가 된 부친 권유로 대학 진학의 꿈도 접었습니다.
[박만호/4대째 대물림 : 나는 그때 서울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전화해서 무형 문화재 후계자 할거냐고 묻길래 한 10초 있다가 "할래요" 하고 내려왔다.]
그러나 동생 만호씨는 군 입대로 부친의 기술을 온전히 전수받지 못했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와 타고난 손재주 덕분에 이제는 능숙한 목기장이가 됐습니다.
형 만수씨는 부친이 병으로 쓰러지고 동생 군입대 소식에, 가업을 잇기위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일년 후, 부친이 작고한 뒤 형제는 주변의 우려를 딛고, 힘을 합쳐서 가업을 지켜냈습니다 .
[박만수/지산옻칠공예 대표 : 주위에서 어린것들이 뭘 알겠느냐 생각하고, 어떤 업체는 디자인을 도용해서 쓰는 곳도 있었고, 아버지가 이룩한 것 발전은 못하더라도 현상유지라도 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형님은 동생이 깍은 목기에 옻칠로 영생의 옷을 입히는 칠장입니다.
목기장과 칠장의 솜씨가 조화를 이뤄야 그 빛을 발하는 목기일은 형제가 분업으로 효율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
집안이 목기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증조 할아버지때 목기마을로 이름난 이곳에 정착을 하면서 부터입니다.
19살 때, 할아버지가 작고한 뒤 부친은 생계를 잇기 위해 목기장의 길을 걸었습니다.
손재주가 뛰어났던 부친은 스님들이 식기로 사용하는 바리 전수 부문 일인자였습니다 .
세월에 녹아 옻이 붉게 핀 15합 바리는 그릇 사이 간격이 일밀리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장인의 혼이 서린 작품입니다.
제기 한벌 제작에 꼬박 일년이 걸립니다.
인내심과 정성이 미덕인 목기장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부친은 자식들에게 입버릇처럼 목기일만은 배우지 말라고 했지만 인간 문화재가 된 후에야그 마음을 바꿨습니다.
[고생고생하시다가 (능력을) 인정을 받고나니까 (자식들이) 대를 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목기장 박형준옹이 형제에게 남긴 철학은 정성이었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갈고 닦으면 꼭 금이나 은만이 보석이 아니라 모든 게 보석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부친이 17년전 초벌깍이를 해둔 목기가 보관된 창고는 큰 자산이자 창작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최근 동생은 이 틀을 기초로 일주일 작업 끝에 아버지의 15합바리보다 , 한걸음 더 나아간 20합 바리를 완성했습니다 .
이곳에서 만드는 제품은 제기와 반상기등 40여종에 이릅니다.
신세대 주자들이 공방을 맡으면서 인터넷 쇼핑몰을 구축해 매출도 30% 가량 늘었습니다.
형제는 색채감을 살린 채화 생활목기로 스텐레스와 플라스틱에 밀려났던 목기의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 넣어서 다시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고싶고 건강에도 좋으니까 디자인도 떨어지지 않게 계속 발전시키고 싶다.]
부친의 혼을 이어받아 형제가 함께 가업을 대물림하는 모습에서 우리나라에도 오래된 가게, 노포가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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