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뉴스>
<앵커>
북핵 위기는 3년 가까이 지리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그 우여곡절의 35개월을 권태훈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기자>
지난 2002년 10월 북한의 핵시설 이상징후를 감지하고 제임스 켈리 미 특사 등 대표단 8명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북한은 곧바로 핵무기 개발계획 추진사실을 시인했고, 한반도엔 2차 북핵위기가 몰아닥쳤습니다.
KEDO, 즉 한반도에너지 개발기구가 중유공급을 중단하며 북한을 압박하자 북한은 이듬해 1월 NPT 탈퇴라는 강경책으로 맞섰습니다.
[조선중앙 TV (2003.1.10) :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남아 나라의 안전과 민족의 존엄을 침해 당할 수 없다.]
IAEA 특별이사회가 긴급 소집됐고, 그해 8월 베이징에서 제1차 6자회담이 열렸습니다.
회담에 별다른 성과가 없자 KEDO는 북한의 주 에너지 공급원인 경수로사업 중단을 결정하면서 북한을 몰아 부쳤습니다.
북한은 급기야 올해 2월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과 함께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하면서 미국을 압박했습니다.
[조선 중앙TV (올해 2월) : 부시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 고립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미국도 한치의 양보없은 강경책으로 올해 5월 북한에서의 유해발굴작업을 전면 중단해 전쟁 대비용이라는 관측까지 낳았습니다.
그러나 6월 한미정상회담과 남북 장관급 회담 등을 통한 우리측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중재와 발빠른 외교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라는 또 다른 희망의 불씨를 살려냈고 북핵 위기는 우여곡절끝에 일단락됐습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