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또 1965년 한일 수교 협상에서는 미국의 입김이 거셌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일 협상이아니라, 한-미-일 협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계속해서 정성엽 기자입니다.
<기자>
존슨 대통령이 취임한 1963년 이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미국의 간섭은 본격화됩니다.
한국에 대한 경제 원조를 일본과 분담하면서, 동북아에서 공산권에 대한 안보를 강화하려는 의도에서입니다.
[이원덕/국민대 교수(한일외교문서 심사반 민간위원) : 미국이 끊임없이 한일간을 봉합시켜 타결시키도록 배후에서 또는 표면적으로 상당한 압력을 가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1963년 방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일 국교정상화의 필요성을 직접 언급한 것을 시작으로, 미 국무부는 이듬해 일본 국회 회기가 끝나기 전에 교섭을 끝내라며 한국 정부를 압박합니다.
또 라이샤워 주일 미 대사는 주한 일본대표부를 설치해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아예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정권 기반이 약했던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다시 추진하자, 미국의 압력은 더욱 노골화됩니다.
러스크 미 국무장관은 일본이 더 양보해야 한다는 우리측 주장에 협조하겠다며 조속한 관계 정상화를 강조했고, 번디 차관보는 박 대통령의 방미 전에 한일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한국에 대한 지원을 보장할 수 없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일삼았습니다.
한-일 양자협상 이라기보다는 한-미-일 3자협상에 가까울 정도의 압박 속에 박 대통령은 1965년 5월 미국을 다시 방문했고 그 다음달 한-일 협상은 마무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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