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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모자이크 표현기법

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1장. 모자이크의 역사 1. 콘 모자이크 2.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1장. 모자이크의 역사

1. 콘 모자이크

2. 페블 모자이크

3. 오푸스 시그니눔

4. 오푸스 테셀라툼

5. 오푸스 섹틸레

6. 오푸스 무세움

7. 흑백 모자이크

8. 북아프리카 모자이크

9. 기독교 모자이크

10. 모자이크 표현 기법--오늘 이야기

10. 모자이크 표현기법(Design & Expression of Mosaic)

 

◆1. 테세라 모자이크 사용 인구

컬러 테세라 모자이크는 헬레니즘 문명에서 시작돼, 지중해 전역으로 퍼진 예술 양식이다. 헬레니즘과 로마시기를 거쳐 살았던 유력자들은 호화로운 장식과 기호, 허영을 과시하면서 삶의 만족을 얻었다. 모자이크는 그 절정이다. 그러나, 노예와 식민지 주민을 수탈한 결과물로서의 예술세계란 측면에 잠시 혼란스러워진다. 어디 모자이크 뿐이랴. 역사유적이란게 사실 비슷한 속성을 갖는다. 찬란한 인류역사의 금자탑 가운데 민중의 뼛골 녹여 만들지 않은 게 드물다. 피라미드, 만리장성... 물론 정당하게 축적한 부를 문화와 예술에 쏟아 붓는다면 삶의 다양성을 넓히고, 질을 높이는데 긍정적인 면이 크겠지만... 어쨌든 모자이크는 로마사회 밑바닥을 힘겹게 지탱하던 사람들의 문화가 아니라 최고 상류층의 문화였다는 점, 그리고 힘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의 피와 땀이 녹아든 유물이란 점을 잊지 않고 찾는다면 균형잡힌 역사인식과 예술감각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검투경기.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기풍. 즉, 일상사를 표현하는 스타일을 따랐다. 로마인들이 열광했던 검투경기 소재의 모자이크다. 보르게제 박물관. ⓒ김문환

 

도대체 로마시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집안에 건축이나 예술적 용도로 모자이크를 설치하고 살았을까? 대부분의 시민? 아니면, 특정 부유층? 결론부터 말하면 로마시대 모자이크 설치가 일반으로 보편화된 것 같지는 않다. 일순간 화산재에 묻혔다 그대로 되살아난 폼페이를 보자. 조사결과 폼페이에서 모자이크로 건물 바닥을 포장한 비율이 전체 바닥 면적의 2.5%에 불과했다. 또 발견된 모자이크의 75%가 특정 3채의 집에 집중돼 있다. 소수의 부유층만 누린 건축과 예술의 산물임을 알아채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폼페이 하나의 예로 헬레니즘권 세계까지 함부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에게해 델로스 섬의 경우 많은 주택에서 모자이크를 사용한 것으로 발굴결과 드러났다. 컬러 테세라 모자이크의 고향 헬레니즘권에서는 로마 제국의 심장부 이탈리아 반도보다 모자이크가 더 보편화 됐던 것으로 보인다.

 

◆2. 설치 장소와 소재

 

테세라 모자이크는 주로 어느 건물, 또 건물의 어느 장소에 설치했을까? 부유층의 대저택인 도무스(Domus)와 장원의 빌라(Villa)같은 호화 주택, 그리고 공중목욕탕 같은 공공시설이다. 집안에 설치할 때 가장 많은 돈을 들여 화려하게 장식한 장소는 무엇보다 손님을 맞는 거실 타블리눔(Tablinum, 오에쿠스, Oecus)과 식당 트리클리니움(Triclinium), 여름용 야외식당 엑세드라(Exedra, 회랑 뒤에 설치한 긴 의자형 식당), 목욕탕(Terme), 침실(Cubiculum), 회랑(Peristilium)이다. 최상류층이 아니면 개별 목욕탕보다 공중목욕탕을 이용했기 때문에 자기 주택내 목욕탕에 공을 들여 모자이크를 설치하지는 않았다. 집안에서 침대나 탁자같은 가구를 놓았던 부분은 어떻게 했을까? 모자이크를 설치하지 않고 빈 공간으로 뒀다. 아니면, 단순한 기하학 무늬, 단색의 흑백 모자이크로 깔았다.

 

다양한 먹거리. 특정 대상을 표현하고 주변에 테두리를 쳐 마치 한폭의 판넬 그림을 보는듯 하다. 식당인 트리클리니움에는 이런 다양한 먹거리를 그려 넣었다. 바티칸 박물관. ⓒ김문환

 

모자이크를 설치하는 공간에 따라 소재가 달랐다. 식당바닥을 장식하는 모자이크의 소재는 신화의 음주장면이나 연회장면, 특히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가 많았다. 목욕탕 바닥은 물이나 바다를 연상시키는 바다의신 포세이돈과 그의 아내 암피트리테, 아들인 트리톤(반인반어), 바다 켄타우로스(海馬, 상체는 말이고 하체는 물고기), 수영하는 에로스, 돌고래... 침실은 역시 에로틱한 분위기가 제격이었다.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나 사랑을 맺어 주는 에로스,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호색가 사티로스,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며 춤추는 무녀 마에나드등 육체적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탐닉하는 신화인물들로 가득하다. 물론 노골적인 정사장면을 그린 경우도 있다. 앞으로 각국의 모자이크 탐방에서 볼 수 있지만...

 

◆3. 모자이크 예술가

 

모자이크를 만드는 사람을 무세아리우스(Musearius, 또는 Musivarius)라고 불렀다. 무세아리우스는 원래 벽면과 천장 모자이크(오푸스 무세움, Opus Museum)를 만드는 사람을 가리켰지만, 모자이크를 설치하는 장인 모두를 부르는 호칭으로 굳어졌다. 바닥 모자이크 오푸스 테셀라툼을 만드는 사람은? 테셀라리우스(Tessellarius, 또는 Tesserarius)라는 이름을 별도로 가졌다. 모자이크 설치 장인들은 모자이크 기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육받았다. 이들은 지역별로 설립된 모자이크 학교에서 기술을 습득한 뒤 작업현장에 투입됐다.

 

모자이크 설치에 관련된 인력들은 맡은 역할이나 숙련도에 따라 등급이 정해져 있었다. 전체 공사를 책임지는 총감독(무세아리우스), 무늬와 형상을 결정하는 디자이너, 테세라를 직접 바닦에 시공하는 설치가, 돌을 깨 테세라를 만드는 재료공 등으로 팀을 이뤘다. 대형 현장의 경우 디자이너와 설치가를 수석과 차석으로 나누는등 인원이 더 늘어났다. 반면, 규모가 작은 현장은 더 적은 인원으로 단촐하게 팀을 짰다. 총감독 무세아리우스는 이곳 저곳을 초빙받아 다니며 작품활동을 펼쳤는데, 대개는 현지에서 보조인력을 지원받아 작업에 들어갔다. 요즘도 중요한 예술작품을 설치할 때 국적을 가리지 않고 그 방면의 대가를 각국에서 초빙한다. 대가의 지도를 받아가며 시공하는 방법.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때로는 무세아리우스가 사장으로 있으면서 나머지 인력을 직원으로 두고, 시공에 나서는 모자이크 전문회사도 있었던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알렉산더 작품.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된 대작이다. 총감독 무세아리우스, 무늬와 형상을 결정하는 디자이너, 테세라를 설치하는 시공작가, 돌을 깨 테세라를 만드는 재료공 등으로 팀을 이뤘다. 나폴리 박물관 ⓒ김문환

모자이크 작가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헬레니즘 시대에도 일부 작품에 제작자인 무세아리우스의 이름을 남겼지만 로마시대로 오면 제법 많은 작품에서 이름이 나타난다. 모자이크 화면 구석에 작가의 이름을 새겨 넣었는데, 그림 구석에 이름 적어 넣는 낙관(落款)과 마찬가지다. 자부심에 비해 처우가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301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시절 기록을 보면 임금이 프레스코를 그리는 화가의 75% 정도에 그쳤다. 더욱이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에 비하면 50%, 반밖에 안됐다. 문화 예술을 창조하는 장인계급 중 2류에 속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개중에는 상당한 재력을 모은 사람도 있었다. 2c 활약한 아엘리우스 프로클루스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모자이크 예술가로 이름을 날렸다. 자기재산으로 운명의 여신인 티케를 기리는 신전을 건립해 기부할 정도로 부를 쌓았다. 이 공로로 대중들의 인기를 얻은 그는 선거를 통해 공직에 까지 올랐다.

 

◆4. 패턴북(Pattern Book)

 

원하는 형상은 어떻게 디자인 했을까? 모자이크가 단순히 바닥포장 수단에서 예술적 특성을 띠는 작품으로 승화되면서 디자인, 즉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동식물, 자연, 인물, 신화의 내용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안내서 즉, 패턴북(Pattern Book)이 있었다는데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로마시대까지 만들어진 패턴북이 유물로 남아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집트 파피루스에 당시 헬레니즘의 중심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다른 도시로 보내는 모자이크 가이드북을 나타내는 장면이 들어있는 점은 패턴북의 존재사실을 뒷받침 한다. 모자이크를 설치할 때 패턴북을 보고 모르타르 위에 밑그림을 그린 뒤, 그 위에 잘게 썬 테세라를 붙여나가는 방식을 택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네레이드와 트리톤. 어딜 가나 널리 사용되던 인기 소재다. 근육질의 트리톤과 아름다운 네레이드의 만남. 고학하는 수재와 부잣집 딸, 혹은 부잣집 아들과 지고지순한 처녀의 만남처럼 패턴북 속에 정형화된 소재였을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 ⓒ김문환

모자이크 제작과정을 떠올려 보자. 먼저, 모자이크 설치회사나 모자이크 설치 예술가들은 다양한 기본 모델들을 패턴북에 담아 고객들에게 보여준다. 고객들은 패턴북에 나와있는 모델 가운데 자신의 취향과 품격, 문화적인 기호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소재를 고른다. 물론, 고객은 자신의 집안 분위기나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관을 가미해 줄 것을 주문한다. 여기에 모자이크 예술가들은 다시 자신만의 특유한 기술과 감각으로 독특한 이미지를 창출해 내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요즘도 집수리를 할 때 인테리어 가게주인은 다양한 모델을 집주인에게 보여 주고 원하는 모델을 고르도록 한 뒤, 소비자의 요구와 장소의 특성에 맞게 일부 변형 해주는 방법을 취한다. 로마시대 모자이크나 요즘의 인테리어나 집주인의 부와 명예, 인격, 문학적 소양과 고대문화 대한 이해, 관심도등을 반영하는 척도였다.

 

◆5. 엠블레마 (Emblema)

 

패턴북에 의존하다 보니 비슷한 작품들이 여기저기서 시공됐고, 지금까지도 비슷한 주제나 디자인의 모자이크가 발굴된다. 특히, 기성복처럼 패턴북에 등장하는 주요 장면은 미리 모자이크 판넬로 만들어 놓았다가 곳곳에 판매한 증거도 나타난다. 판넬만 수입해 모르타르 위에 붙여 나가면 훨씬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이렇게 특정 주제를 네모난 틀 안에 미리 판넬형으로 만들어 두는 방식을 엠블레마(Emblema)라고 부른다. 엠블레마는 '삽입한, 끼워넣은(Inserted)'이라는 뜻이다. 기하학 무늬나 기타 동식물로 장식한 전체 바닥모자이크의 특정 부분에 엠블레마를 끼워 넣었다. 이는 회화(繪畵)에서 나온 기법으로 헬레니즘 권역 모자이크의 특징을 이룬다. 헬레니즘시대 벽에 거는 프레스코는 엠블레마 기법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 원리를 따왔다. 로마제국 본토인 이탈리아 반도의 모자이크들은 헬레니즘풍의 엠블레마 기법보다는 화면 전체에 하나의 주제를 담는 방법이 널리 사용됐다. 참고로, 알렉산드리아나 사모스 등지가 엠블레마 판넬을 만들어 지중해 전역으로 수출하는 공급지 역할을 맡았다.

 

희극용 탈. 테두리 안에 내용물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헬레니즘풍 엠블레마 기법이다. 희극용 여인탈과 노인탈을 섬세한 테세라로 마치 정물화처럼 하나의 틀안에 묘사했다. 엠블레마는 별도의 판넬로 미리 제작해 널리 수출되기도 했다. 카피톨리나 박물관. ⓒ김문환

 

◆6. 추상명사 인격화(Persnification)

 

추상적인 내용을 사람처럼 인격화(Persnification)시켜 표현하는 방법도 모자이크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헬레니즘권인 아나톨리아(터키) 남부(안타키아 지방)에서 유래한다. 가령, 새싹이 돋는 이미지의 푸른 옷을 입은 요정은 봄을 나타내고, 가을은 포도가 익어 수확하는 계절이므로 포도가지나 포도열매로 장식한 요정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밖에 집의 건축이나 번영, 풍요등의 각종 추상명사를 사람으로 표현해 모자이크를 한 단계 높은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계절의 여신 가운데 가을. 옷차림이 가을빛이고, 포도넝쿨로 위로 장식한 것으로 봐 가을을 상징하는 여신이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금발 여인의 모습 그대로다. 바르도 박물관. ⓒ김문환

◆7. 주제별 배치(Layout & Theme)

로마시대 바닥 모자이크는 전후좌우 사방 어디서 바라봐도 정면처럼 보이도록 디자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닥을 전후좌우(동서남북) 4방향으로 나눠 각각의 방향에서 설치해 이동방향 어디서도 자연스럽게 관찰자의 시각에서 내용을 감상할 수 있었다. 로마사회에서 창조해낸 표현상 특징이다. 엠블라마 기법을 써 한쪽 방향에서만 작품이 정면으로 보이도록 한 헬레니즘 풍에서 한 발짝 진보한 형태다.

 

 

 

 

 

 

 

 

 

 

디오니소스 행렬. 가운데 엠블라마 기법을 썼고, 전체 그림은 4방향 모두에서 접근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됐다. 길이가 10여m를 넘는 대작이다. 바르도 박물관. ⓒ김문환

 

◆8. 모자이크와 섬유(Mosaic & Textile)

 

모자이크와 섬유의 관계는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당시 섬유제품이 풍부하게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시대 거실에 카페트를 깔았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유사성이 있다는 것. 로마시대의 모자이크에 나오는 기하학적 무늬는 중세 이후 등장하는 섬유나 카페트의 무늬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3-4c 아나톨리아에서 발전한 모자이크의 무지개 무늬가 기하학적 무늬를 거쳐 6c 이후 카페트 무늬로 원용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카페트 무늬가 전적으로 모자이크에서 온 것이라고 볼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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