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이 월요일 오후부터 갑자기 논란이 되기 시작해 화요일자 조간 신문과 어제 MBC, KBS에서 거론이 됐습니다. 삼성 계열사들이 낸 헌법소원과 관련해서입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물산 등 삼성 계열사들은 지난달 29일,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공정거래법에서 계열 금융 보험사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한 것은 헌법상 재산권, 평등권, 사기업에 대한 경영불간섭 원칙 등에 위반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삼성전자의 경영권인데, 삼성전자는 현재 외국인 지분이 54%나 됩니다. 반면에 삼성생명은 7.9%, 삼성화재 1.3%, 삼성물산 4.4% 등 삼성측 지분은 17.7%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삼성생명이나 삼성화재는 고객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금융회사인 만큼 계열사 지분에 대한 주주총회 의결권이 모두 합쳐서 15%까지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종전에는 특수관계인들이 행사할 수 있는 주식수와 합쳐서 계열회사 발행 주식 총수의 30%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지난해 12월 31일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15%로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외국인 등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경실련은 헌법소원을 심리해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윤영철 소장이 과거 삼성그룹의 고문으로 있었던 만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윤 소장은 지난 97년부터 2000년까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고문으로 일하면서 7억여원을 고문료로 받았다고 합니다.
윤영철 소장이 삼성에서 거액의 자문료를 받은 것이 논란이 된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닙니다. 이런 사실은 윤영철 소장이 헌법재판소장이 될 때부터 논란이 됐고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거론이 됐습니다. 사실 이번에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도 당시의 인사청문회 속기록을 인용했으니까요.
헌법재판소법 제24조를 보면 “재판관이 사건에 관하여 당사자의 대리인이 되거나 되었던 경우”와 “기타 재판관이 헌법재판소외에서 직무상 또는 직업상의 이유로 사건에 관여했던 경우”에는 재판관은 직무집행에서 제척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이번 헌법소원 사건은 2005년 6월 29일에야 제기된 것이니 2000년에 이미 삼성의 고문을 그만둔 윤소장이 관여했을 수가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법 24조는 또 “재판관에게 심판의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 당사자는 기피신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또한 “재판관은 제척과 기피의 사유가 있을 때는 재판장의 허가를 얻어 회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피신청을 한들 받아들여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고 건국대 임지봉 교수의 말처럼 스스로 회피를 하는 것이 사실상 거의 유일한 방법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논란은 개인적으로 삼성의 헌법소원을 윤영철 소장이 회피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을 넘어서 좀 큰 틀에서의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현직 법관이나 검찰 간부에서 바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한 항상 변호사 때 다루던 업무와 관련된 이익의 충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직 제대로 된 관행이나 원칙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물론 삼성에서 바로 이런 지분 관련 업무를 다루었거나 헌법소원 관련 업무를 취급했더라면 윤소장이 당해 헌법소원 심리로부터 제척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스스로 미리 회피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하지만 삼성의 고문이었다고 해서 삼성 관련 사건은 앞으로 모조리 제척되거나 회피해야 한다는 것은 솔직히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앞으로 법조일원화라고 해서 판사들을 검찰이나 재야 법조계에서 일정 경력을 거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본격화되면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겁니다. 지금도 변호사들 가운데서 판사 임용이 늘고 있는데 변호사로서 만나던 사람들을 법정에서 만날 경우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법개혁 논의에서도 이 부분은 그렇게 심도있게 다뤄지지 않고 있는 듯 합니다.
일종의 정치적 행위로써, 시민사회단체가 윤영철 소장의 이력을 재론하면서 나름대로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사법기관이니 이해관계자들도 나름대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모조리 들고 나올 수 있겠습니다. 적어도 인신 공격이 아니라면 이런 논쟁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SBS는 이 논란은 기사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미 인사청문회에서부터 논의가 됐던 사안이고 단순히 윤영철 소장의 문제가 아니라 변호사 경력자를 법관이나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 제도 자체가 이런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으로 그런 문제를 학계나 사법개혁추진위원회 같은 곳에서 심도있게 다루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신에 조대현 헌법재판관 지명자의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조대현 변호사는 행정수도이전특별법과 관련한 헌법소원 당시 정부측 대리인으로 선임계를 제출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당사자는 직접 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법적으로 그는 헌법재판소법이 말하는 제척 대상인 당해 사건의 대리인입니다.
지금 다시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있는데 대상이 되는 법률 명칭은 바뀌었지만 사실상 큰 부분에서 동일한 성격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충분히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법적인 측면에서 가능해지는 겁니다. 특히 조대현 변호사 측에서는 처음에는 선임계를 낸 사실조차 공개하지 않았다가 저희 법조팀의 손석민 기자가 헌법재판소에서 선임계를 낸 문서를 확보해 확인을 요구하자 뒤늦게 시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법률 관련 기사는 좀 엄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기사 작성 원칙이 단기적으로는 시청률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일단 거대 기업집단인 삼성을 비판하는 기사, 이른바 4부 요인에 들어가는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그 보도들이 선정적이라고 매도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조대현 변호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다가 갑자기 윤영철 소장에 대한 문제제기만 부각시키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럼 삼성 계열사들의 헌법소원에서 윤영철 소장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을까요. 저의 개인적인 의견은 아직 제도적으로 이러한 포괄적인 관련성에 대해서 명확한 기준이 서 있지 않은 상태라면 윤소장이 재판장으로서 스스로 회피를 하는 것보다는 어떤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자제하는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공직자의 이익의 충돌 문제를 심사하는 제3의 기구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 공직자들이 민간 경험을 한다고 해서 중앙정부의 공무원들이 민간 부문에 몇 년씩 파견 근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친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공직에서의 노하우를 특정 기업에 전수하는 것에 대한 위험, 장차 자기가 취급하게 될 수도 있고 동료들이 취급할 업무에 대한 자문이나 개입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고민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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