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띄우는 편지입니다. 조금 시일이 지나긴 했지만, 저에게 무척 인상적이었던 공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SBS 뉴스 스테이션이 새 기자 블로그로 개편됐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드리고요. 제 블로그인 ‘김수현 기자와 함께 산책하실래요?’ 주소는 http://ublog.sbs.co.kr/shkim0423입니다. (공연 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들 풀어놓고 있습니다. 많이 들러주세요. 블로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SBS의 시민기자 U포터 활동에 관심 있는 분들은 직접 가입하셔도 좋고요.) 그럼, 본론 시작합니다.
지난 2001년 8월, 첼리스트 장한나는 고국 독주회에서 본 공연에 앞서 포레의 ‘비가’를 연주했습니다. 그 해 타계한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를 추모하기 위한 연주였습니다. 시노폴리는 장한나가 ‘정신적 아버지’로 부를 정도로 생전에 장한나를 무척 아꼈던 지휘자였습니다. 저는 시노폴리가 지휘하는 모습을 객석에서 단 한 차례 봤을 뿐이었지만, 함께 고인을 추모했고, 감동했습니다. 고인을 애도하는 예술가의 진심이 전달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얼마 전 또다시 감동적인 ‘추모 연주’를 목격했습니다. 바로 지난달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에서였지요.
“오늘 저희는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특별히 연주할 것입니다. 이 곡은 지난 5월 23일 세상을 떠난 금호 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을 추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도 그 분 덕분에 성사됐습니다. 오늘밤 저희는 위대한 ‘예술 후원자’ 중 한 사람이었던 고인에게 이 음악을 바칩니다. 저희는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고 지원하기 바랍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은 지휘봉 대신 마이크를 든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추도사로 시작됐습니다. 뜻밖의 추도사에 객석 여기저기에서 낮은 탄성이 들려왔고,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자 곧 분위기는 숙연해졌습니다.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한없이 아름다워 슬픈, 현과 하프의 잔잔한 선율이 풍성하게 물결쳤습니다.
저는 어느새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음악 담당 기자로서 생전의 고인과 몇 차례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공적인 관계였지 개인적 친분이 깊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아다지에토 연주는 제가 갖고 있는‘나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 충분했습니다.
2000년 12월 어느 날, 금호 갤러리(현재의 금호 미술관) 공연장. 저는 독주회를 앞둔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의 연습을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라는 금호 음악영재 출신, 1994년 도미 이후 처음으로 고국에서 여는 독주회였습니다. 카메라 기자가 연습을 촬영하는 동안 연주를 듣고 있는데, 박성용 회장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객석 뒤쪽에 앉았습니다.
웬일인가 의아해하는 저에게 당시 금호문화재단의 홍보 담당자였던 김정연 씨가 ‘회장님이 공연에 애정이 많아 리허설도 자주 챙겨 본다’고 귀띔했습니다. 저는 김정연 씨와 공연장 문 앞에 서서 앳된 얼굴의 이유라가 연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눴습니다. 주로 이유라의 연주 경력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조용하고도 단호한 목소리에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연주할 때는 조용히 해 주세요.”
박성용 회장이었습니다. 연주에 집중하고 있던 그에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나 봅니다. 정식 공연이나 연습이나 그에게는 모두 중요한 연주였던 것이지요. 저와 김정연 씨는 화들짝 놀라 문을 열고 공연장 로비로 나왔습니다.
“어휴, 취재하러 왔다가 회장님한테 혼났네요.”
고인은 이 날 ‘음악가의 연주는 어떤 상황에서든 존중돼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점잖은 책망으로 전해줬던 셈이지요. 저는 이유라의 독주회에서 연습 때와 다르지 않은 열성으로 연주에 몰입하는 그의 모습을 봤습니다. 커튼 콜 때 기쁨에 찬 표정으로 기립 박수를 보내던 모습까지. 물론 이유라가 ‘금호 음악영재‘ 출신이라 더욱 애정이 컸겠지만, 그의 이런 모습은 이후 공연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고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해 11월 고양시 덕양 어울림극장에서 열렸던 김남윤-이경숙 듀오 연주회에서였습니다. 새로 생긴 공연장을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그는 이 날도 역시 연주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연주자들에게 아낌없는 존경을 표했습니다. 공연장 로비에서 마주쳐 인사했더니, 그는 당시 만삭이던 저에게 ‘예쁜 아기를 낳으라’고 덕담을 해 줬습니다. 제가 아기를 낳은 것은 그로부터 닷새 뒤였습니다.
제가 고인의 영결식에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 때 들은 고인의 목소리가 아직 너무 생생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영결식장인 금호 아트홀에서는 바로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무척 좋아하던 곡이라지요. 많은 음악가들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일에 쫓겼던 저는, 추모객이 너무 많아 제 순서를 기다리지 못한 채 일찍 나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다지에토의 잔잔한 선율은 그 후로도 며칠 동안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돌아온 것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다지에토 연주가 끝났지만 지휘자는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서 서 깊은 추모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태고 같은 침묵. 그것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애도의 곡을 완성하는, 연주의 일부였습니다. 잠시 후, 지휘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는데도 숨죽인 객석은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함께 박수를 보내면서 왠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참으려 애써야만 했습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이 날 프로그램을 역시 말러의 작품인 교향곡 1번 ‘거인’의 감동적인 연주로 마무리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저는 쟁쟁한 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추모식이 로비에서 열리는 것을 바라보며 공연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고인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 하면서 말이지요.
추모식도 물론 좋지만, 고인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말러의 아다지에토 연주에 더욱 기뻐했을 터이지요. 그리고 어김없이 열렬한 기립 박수를 보냈을 겁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말 그대로 영혼을 담아, 진심이 우러나는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평생 이런 공연은 다시 만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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