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뉴스>
<앵커>
그럼 김형욱 씨는 어떻게 납치되고 살해됐는지, 좀더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중간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재구성 해봤습니다.
이어서 양만희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1979년 9월 어느날.
중앙정보부 소속의 이상열 주 프랑스 공사는 김재규 중정부장으로부터 김형욱 씨를 살해하라는 은밀한 지시를 받습니다.
이상열 공사는 고심 끝에 불어 연수를 위해 프랑스에 와 있던 중앙정보부 요원 2명을 뽑습니다.
[손호철 위원/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 : 신현진은 임무내용을 직감하고 '어려움은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김형욱이죠?' 라고 반문하자 이상렬 공사가 고개를 끄덕여 확인을 해줬습니다.]
가명 신현진은 친하게 지내던 동유럽인 2명을 10만 달러라는 큰 돈으로 끌어들입니다.
10월 7일, 이상열 공사는 도박 자금을 빌려달라는 김형욱 씨를 샹젤리제 거리로 유인한 뒤 동유럽인 2명이 돈을 빌려줄 것이라면서 신현진이 모는 승용차에 태워 보냅니다.
[한홍구 위원/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 : 사건 이전에도 파리에서 동행해서 카지노를 가거나 여러 차례 만난 바 있어서 이상열 공사를 통해서 만나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은 듯 합니다.]
차가 외곽 도로로 빠져나가는 순간 뒷좌석에 앉아있던 동유럽인이 김 씨의 머리를 가격해 실신시킨 뒤, 인적이 드문 숲에서 소음방지 권총으로 7발을 쏴 김 씨를 살해합니다.
[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 : 낙엽을 치우고 시신을 덮었는데 땅을 파고 묻을 필요성이 없었다고 합니다. 시체를 덮고도 낙엽으로 가지런히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현진은 귀국 후인 10월 13일 공식 보고를 했고 김재규 부장은 40~50평 크기의 집에 320만원을 주며 격려한 뒤 신 씨를 정보부장 직속기관으로 발령냅니다.
그리고 열사흘이 지난 10월26일, 김재규 부장은 유신의 심장부로 표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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