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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살해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피살 전말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조사내용>

김형욱은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에 의해 중정 주불거점 이상열 공사와 중정 직원 연수생 그리고 이들이 고용한 제3국인들에 의해 파리 현지에서 피살된 것으로 보임.

 1. 살해 동기

73년 4월 김형욱의 미국 망명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일권, 김종필, 김동조, 오치성 등 정부 고위급 인사들을 미국으로 보내 김형욱의 귀국을 설득했으나 김형욱은 계속 불응.

김형욱은 77년6월2일 뉴욕타임즈와 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6월22일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해 김대중 납치 사건 등 박정희 정부의 내부 비리를 잇따라 폭로.

이에 박대통령은 프레이저 청문회 직전인 77년6월16일 김재규 중정부장에게 김형욱의 미 하원 청문회 출석저지를 위해 민병권 무임소장관을 특사로 파견해 김형욱이 자제토록 설득 회유하라 지시.

한편 박정희 정부는 77년 6월말 최규하 국무총리 주재 김형욱 대책회의를 3차례 개최한데 이어 77년12월 반국가 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

윤일균 전 중정 해외담당 차장의 진술에 의하면 김형욱이 김경제를 통해 박정희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회고록 집필을 추진하자 박대통령은 78년 12월 김형욱과 동향으로 친분관계에 있던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방미하여 김형욱과 회고록 관련 협상을 추진토록 지시.

이에 따라 자신이 방미, 김형욱에게 미화 50만불을 주고 회고록 원고를 받아내었으나 79년 4월경 일본의 군소 출판사가 동 회고록 문고판을 출간함으로써 박대통령 등 정부 당국자들의 김형욱에 대한 분노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짐.

한편 김형욱은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해 중정부장 재직시 지득한 중정의 대미 공작활동 등 각종 국가기밀을 폭로하였으며, 박정희 정부와 중정의 입장에서는 김형욱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정부 내부의 치부와 국가기밀이 누설되어 국익이 훼손되고 정권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며 특히 김형욱 자신이 상기 국가기밀 사업들을 기획 집행 감독했던 장본인이었다는 점에서 분노와 배신감이 더욱 컸던 것으로 보임.

이밖에 김형욱의 개인적 비리와 부도덕한 행정은 김형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더욱 심화시켰을 것임. 김형욱은 미국 망명 당시 재산이 15만줄 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나 프레이저 위원회 조사 결과 1500만~2000만불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밝혀짐.

이에 따라 박정희 정부내에서는 막대한 외화를 해외로 빼돌려 도박 등으로 탕진하고 국가기밀을 무차별 폭로하는데 대한 증오감이 존재했으며, 이러한 정황이 당시 중정 직원들로 하여금 김형욱에 대한 응징 필요성에 쉽게 공감하게 하였던 것이고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따랐을 것임.

2, 살해 지시

김형욱 실종 사건이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에 의해 이상열 공사 주도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아래 이유로 확실시됨.

79년 9월말 이상열 공사가 연수생 신00에게 김형욱 살해 임무 부여하면서 김재규 부장의 지시임을 분명히 밝힘. 신00이 사건후 귀국하여 79년10월13일경 김재규 부장에게 김형욱 처리 결과를 보고하자 김재규 부장이 크게 칭찬 격려 포상.

79년10월1경 이상열 공사가 비밀리에 귀국하여 김재규 부장을 2차례 만난점 등 김재규 부장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살해 지시를 받았는지 여부는 관련 자료 부재와 당사자들의 사망으로 인해 사실 관계를 현재까지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음.

다만 77년6월16일 박대통령이 김형욱의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 출석을 앞두고 민병권 당시 무임소장관을 급히 미국으로 보내 김형욱의 청문회 출석을 저지하라고 지시를 직접 내린 바 있고, 윤일균 전 중정 해외담당 차장도 78년12월 박대통령이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급히 방미해 김형욱의 회고록 출산을 저지토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진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형욱의 박정권 비난 활동에 대해 분개하고 김형욱의 미 하원 청문회 출석 및 회고록 출간을 저지하도록 지시한 사실은 분명하나 박대통령이 직접 김재규 중정부장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추가 확인 필요.

3. 살해 준비

가. 살해 가담자 물색

김재규 부장의 직접 지시를 받은 이상열 공사는 79년9월 김형욱 납치 및 살해 임무를 연수생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신00 등 당시 파리 연수중이던 중정 연수생 5-6명을 자택으로 초대해 대화도중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어 문제다라는 등으로 직책, 젊은 연수생들의 정의감을 부추기면서 반응을 타진.

연수생들에게 파리 주재 북한 통상 대표부의 현황과 실태 등에 대한 관찰 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토록 하여 동 내용을 검토하면서 개개인의 적극성 과단성 등 자질을 검증한 후 최종적으로 신00, 이00 등 2명을 적임자로 선정.

 79년 9월경 이상열 공사는 신00과 이00을 파리 시내 미상 카페로 불러 "김형욱이 곧 파리로 온다. 중정 부장을 지낸 사람이 거액의 외화를 빼돌려 카지노 등에서 탕진하고 있으며 국가기밀을 마구 폭로하고 있다. 이런 사람을 그냥 둬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상부의 지시로 김형욱을 처치해야 한다는 점을 은연중 암시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지시.

79년9월 하순 이상열 공사가 신00에게 살해 지시. 신00은 "보내겠습니다. 그 대신 모든것을 나의 주도로 하겠습니다"고 결의를 표명.

 나. 살해 계획 수립.

신00은 제3국인 친구 2명에게 미화 10만불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살해 의뢰.  2-3천평 규모의 파리 근교 샤또를 빌려 김형욱을 납치 살해한 뒤 샤또 내 적당한 곳에 땅을 깊이 파고 매장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방법 지시. 임대 계약금 명목으로 3천 프랑을 제공.

또한 신00은 후배 연수생 이00이 임무 수행시 보조역할을 맡기로 한 후 상기 제3국인 친구 2명을 이00과 함께 수차 접촉. 파리 시내 소재 벼룩시장에서 칼과 노끈 구입. 79년 9월 말경 이상열 공사를 다시 접촉, 미화 10만불과 권총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살해 준비를 진행

 4. 살해 과정

가. 살해 기회 포착은 79년 10월7일 오후 이상열 공사가 신00에게 "김형욱이 돈을 빌려달라고 전화했다 좋은 기회다. 돈을 빌려줄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유인했다고 말함.

신00은 외국인 친구 2명을 이00에게 시켜 오도록 한 뒤 동인들에게 살해 계획 설명.

약속장소에 김형욱이 먼저 와서 기다리자, 이상열 공사는 " 뒷좌석에 있는 사람이 전주입니다. 나는 약속이 있어 먼저 갑니다" 함. 김형욱은 인근 카페로 가는 줄 암.

나 살해 결행 및 사체 처리

신00이 모는 차가 외곽 순환도로를 향하던 중 뒷좌석에 있던 제3국인 친구가 갑자기 김형욱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 실신케함. 이어 승용차는 파리 시내를 이탈 교외로 이동. 제 3국인 친구 2명이 차에서 내려 김형욱을 끌어내려 도로 우측 숲속으로 끌고 내려간 후 약 30분쯤 돌아와.

이들은 김형욱이 입고 있던 바바리 코트에 여권지갑, 시계 등의 소지품을 싸서 벨트로 묶어 건네주면서 "도로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김형욱의 머리에 권총을 쏘아 죽였으며 시체는 땅을 파지 않은 채 두껍게 쌓여있는 낙엽으로 덮어 버렸다고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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