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6장. 오디세이아와 귀환 1. 텔레마코스 2. 목욕 문화 3. 키클로페스 4. 세이렌--오늘 이야기 5. 스킬라, 칼립소, 키르케 6. 페니키아 7. 페넬로페 8. 상봉과 최후 4. 세이렌 ◆1. 세이렌 "오종 분다"는 말이 있었다. 오종(旿鐘)은 한낮 정오(正午)에 울리는 종(鐘)소리다. 30년도 더 지난 예전, 시골에는 시계가 그리 많지 않았다. 시간 가는 것을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물시계와 해시계로 신전에서 행할 의식집전 시각을 알아내곤 했는데... 30년 전 근역(槿域)의 시골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공공기관이 해결해 줬다. 12시만 되면 "애앵---" 오종. 경찰 지서 옆 소방서 망루에서 사이렌(Siren)이 울렸다. 12시 점심때를 알려주는 서비스 행정의 일환이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던 시절. 시원찮은 아침으로 점심때가 다가오면 가뜩이나 배고픈데 사이렌을 들으면 갑자기 뱃가죽이 등쪽에 가 붙는다. 점심시간이니 일 좀 잠시 멈추고, 한끼 때우며 주린 배를 채우라는 고마운 알림소리 사이렌.
그런데, 그리스 신화에서 사이렌(세이렌, 이후 세이렌으로 표기)은 그리 고맙지 만은 않은 존재다. 세이렌(사이렌, Σειρην, Seiren, Siren). '바다의 요녀(妖女)'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는 복수형 세이레네스(Σειρηνεξ, Seirenes, Sirens) 즉, '바다의 요녀들'이란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한다. 3명(처음 오디세이아에는 2명으로 그려진다. 이후 4명이라는 설도 있지만, 주로 3명이라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마치 아마존(Αμαξον, Amazon)이 단수로 '여전사(女戰士)', 아마조네스(Αμαξονεξ, Amazones)가 복수로 아마존 족속(族屬)을 가리키는 것과 같다. 세이렌 3자매(姉妹) 세이레네스는 인어공주처럼 반인반수(半人半獸). 상반신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미인인데, 하반신은 새(鳥)의 모습이다. 왜 새가 됐을까? 처음에는 평범한 여성으로 제우스의 딸 페르세포네의 친구들이었다. 그러다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사단이 벌어지고... 그녀를 찾기 위해 몸에 날개를 달고 이곳 저곳을 날게 해달라고 기원한 결과 새의 날개를 갖게 됐다고 한다.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할 때 저항하며 막아주지 못한데 대한 분풀이로 페르세포네의 어머니 데미테르가 내린 벌이라는 설도 있고... 사랑을 우습게 여긴 죄를 물어 아프로디테가 새로 만들었다고도 하는데... 부모는? 뮤즈 멜포메네와 강의 신 아켈로스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우세하다. 아켈로스와 스테로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과 함께 아켈로스가 헤라클레스와 싸울 때 흘린 피에서 태어났다는 좀 괴기스런 설도 전한다.
부모가 누구인지를 떠나 세이레네스가 그리스 신화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얼굴이 너무 예쁘고 곱다. 상반신도 풍만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두번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것'인가? 아름다운 몸에서 내는 목소리가 더욱 환상적이었다. 너무나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모두들 매혹되고 만다. 그러니, 세이렌 3자매의 특기는 미모를 뛰어넘는 기막힌 노래 솜씨일 수 밖에... 이들이 노래를 부르면 누구든 그 맑고 청아한 목소리의 황홀경에 빠져든다. 거기다 악기 연주 실력도 뛰어나니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한명은 키타라를 켜고 다른 한명은 피리를 불며 나머지 한명이 노래를 불렀다. 한때 인순이가 활약했던 희자매 3명 정도로 보면 되겠다. 노래와 악기 연주 솜씨에서 따를 자가 없는 것은 좋지만, 이런 능력이 주변을 즐겁게 만들고 평화를 가져다 주는 일에 쓰이질 못했다. 아름다운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법. 세이레네스의 가시는? 음악연주. 누구든 세이레네스의 음악을 들으면 그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이 불타 오른다. 노래와 연주소리에 마력(魔力)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노래소리와 악기 연주 소리는 죽음의 전주곡으로 망나니의 칼 같았다.
◆2. 오디세우스, 귀를 막고 세이레네스와 만나다
세이레네스가 사는 곳은 지중해 어느 섬. 일설에는 시칠리아 근처라고도 하고, 남이탈리아 나폴리 근처 소렌토라고는 설도 전한다. 이 지역은 그리스 민족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대거 이주한 곳인 동시에 이베리아 반도나 남프랑스로 가는 길목이어서 그리스 신화나 역사에 자주 언급된다. 세이레네스 근처를 지나던 그리스 선원들은 감미로운 음악에 미혹돼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결과는? 미녀와의 만남이 아니다. 세이레네스가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는 암초지대. 그러니, 배를 저어 그 곳으로 가다 암초에 부딪쳐 난파 당해 죽음에 이르는 것. 일설에는 난파된 선원들을 잡아먹었다고도 하는데, [오디세이아]에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에게 세이레네스를 설명하는 대목에도 해골로 가득한 암초지대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아무튼 캬바레에 상주하면서 멀쩡한 남자 유혹해 돈 뜯고 신세 망쳐놓는 꽃뱀과 비교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결과는 비슷해 보인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생과 사를 넘나들며 펼치는 스릴 넘치는 모험극이다. 그런데 키클로페스를 제외하면 모험중간에 꼭 여성의 유혹과 관련된 부분이 들어간다. 여성편력의 체험수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다음장에서 자세히 살펴보지만 오디세우스는 요녀 키르케와도 정분을 쌓았다. 그러나,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을 만나보고 싶어했던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곁을 떠난다. 키르케는 사랑했던 남자 오디세우스와 헤어지는 것을 슬퍼하지만, 결국은 돌려보내주면서 도움말을 잊지 않았다. "항해도중 세이레네스를 만나게 될 텐데, 절대로 세이레네스의 음악소리를 들어서는 안돼요." 음악소리를 듣더라도 절대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키르케가 살던 섬을 빠져나와 망망대해를 지나 세이레네스가 사는 섬 근처를 지나게 됐다.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이 음악을 들으면 배를 몰고 세이레네스가 사는 암초로 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선원들의 귀를 막기로 결심했다. 벌집으로 만든 밀랍(蜜蠟)을 부하 선원들의 귀에 넣어 막았다. 아무리 매혹적인 음악이 나와도 들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귀를 틀어 막고 듣지 못하면 죽음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 문제는 오디세우스 자신이었다. 자신은 배를 지휘하고 정확한 위치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귀를 막으면 안됐다. 그러면 자신이 세이레네스에게 매혹돼 배를 돌리면 어떻게 할까?
오디세우스는 다시 아이디어를 냈다. 자신의 몸을 돛대에 꽁꽁 묶기로 한 것. 귀를 막지 않는 대신에 몸을 묶어 놓으니 배를 움직일 수 없어 세이레네스에게 갈수 없었다. 그래도 불안해 선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세이레네스가 사는 섬을 지날 때가지는 나를 풀어주지 마라". 준비를 끝내자 마자 배는 세이레네스의 암초지대로 들어섰다. 멀리서 들려오는 세이레네스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연주소리. 그 마력에 취한 오디세우스는 미칠 것 같았다. "아름다운 소리의 주인공을 만나야 한다." 중얼거리던 오디세우스는 "배를 암초로 몰고 가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나, 부하 선원들은 음악소리를 듣지 못했음은 물론 대장 오디세우스가 외치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손을 풀어 세이레네스에게 가려고 발버둥치는 오디세우스. 귀가 밀랍으로 막혀 소리를 듣지 못한채 노를 저어 앞으로만 나아가는 멀뚱한 표정의 선원들. 이런 해프닝을 연출하며 마침내 오디세우스 일행은 세이레네스의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역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아름다운 노래도 듣고 자신과 선원들의 목숨도 구한 오디세우스는 계속해서 고향으로 배를 몰았다. 죽음을 알리는 경보(警報)였던 세이레네스의 노래와 연주는 오디세우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물론 오늘날 까지 경보라는 이름으로 사이렌이라는 말은 살아있지만... 이 과정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 도자기 화가나 모자이크 설치 예술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소재로 해학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오디세우스의 무사통과는 세이레네스에게 커다란 굴욕감을 안겨줬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자신들의 고운 목소리와 빼어난 연주가 인간을 매혹시키지 못했다니... 마력을 지닌 자신들의 연주와 노래를 극복해낸 오디세우스에게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인간에게 패한 것인데... 이럴 때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 택하는 길은 정해져 있다. 전쟁에서 진 뒤 깨끗하게 삶을 마감하는 일인데... 방법은 두 가지. 죽을 줄 알면서도 끝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 첫째요. 책임을 지고 목숨을 끊는 둘째 사례 역시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종종 목격된다. ◆3. 세이레네스의 죽음과 부활 모욕감과 수치심에 치를 떨던 세이레네스. "오디세우스란 놈에게 졌는데, 복수할 길은 없고... 이소식이 알려지면 우리의 명성에 큰 해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후 어떤 뱃사람이라도 꾀를 내 우리들의 연주를 비켜 갈 것인데..." 괴로워하는 세이레네스. "그렇다면, 즉 선원들을 유혹할 수 없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목숨이 아닌 것. 자살 이외의 대안이 없도다." 세이레네스는 자신들이 노래하고 연주하며 선량한 선원들을 꾀던 높은 바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검푸른 바닷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아니어도 부활은 이미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일반화돼 있었다. 세이레네스 역시 영생을 얻어 저승에서 죽음과 삶의 조화를 노래하는 역할을 맡았다. 후세에 인간들이 장례식 때 쓰는 석관에 세이레네스를 조각해 넣은 이유다. 저승에서의 복된 삶을 기원하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세이레네스의 노래에 넘어가지 않은 사례가 또하나 전해진다. 첫째는 아르고(Argo)호 원정과 관련된다. 이아손이 이끄는 아르고호가 시칠리아 근처를 지나다 세이레네스의 음악에 매혹될 위기에 처했다. 선원들이 정신을 빼앗겨 배가 세이레네스 쪽으로 가려 할 즈음 아르고호에 구세주가 있었다. 오르페우스. 인간 가운데 키타라를 가장 잘 연주했다는 오르페우스가 재빨리 키타라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이른바 맞불 작전. 인간과 바다의 요녀간 대결인데... 선원들은 오르페우스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에 취해 세이레네스의 음악에 빠져들지 않았고, 결국 아르고호 선원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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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세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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