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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고대의 목욕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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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1. 고대의 목욕 문화

 

◆1. 오디세이아에서 목욕

 

'터키탕'(Turkish Bath). '터키식 목욕탕'이라는 가치 중립적인 말이 우리사회에서 야릇하게 와전돼 한때 곤욕을 치르고... 지금은 제 이름 마저 잃어버렸는데... 불을 때 방을 덥힌 뒤 고온의 열기로 땀을 빼는 목욕의 원조는 로마다. 목욕은 로마 위생문화의 백미(白眉)다. 서로마 제국 이후 중세 기독교시대를 맞아 서유럽에서 사라졌던 목욕문화는 동로마를 거쳐 10c 이후 동로마의 영토를 차지한 이슬람권 셀주크 투르크(Seljuck Turk)로 이어졌다. '로마탕'(Roman Bath)이란 표현 대신 터키탕(Turkish Bath)이란 말이 생겨난 연유다. 역사적으로 목욕탕 자체의 기원은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B.C 2천500년전 인더스강가의 모헨조다로. 하수도를 갖춘 대형 공중목욕탕이 그대로 발굴돼 있다. 종교적 성격을 가미한 것일지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오래된 목욕문화는 고대 그리스를 거쳐 로마로 전파돼 B.C 1c 이후 절정기를 맞았다.

 

인더스문명의 상징. 모헨조다로에 남아있는 B.C 2천 500년전 목욕탕. ⓒ김문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는 목욕장면이 자주 나온다. 전쟁터나 먼길에서 돌아와 몸을 씻는 장면이 세세하게 묘사돼 있다. 이런 점으로 미뤄 이미 호메로스 시대 그러니까 B.C 8c 그리스에서 목욕문화가 일반화돼 있었음을 말해준다. 목욕 방법은? 일반 석재나 대리석을 사용해 만든 탕에 따듯한 물을 담고, 그안에 들어가 몸을 닦는다. 스스로 몸을 닦는가? 아니다. 시녀가 몸을 닦아 준다. 손님일 경우 시녀 혹은 주인집 딸이 닦아 주는데, 참... [오디세이아]에는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필로스로 가서 네스토르를 만나 네스토르의 집에 묶을 때 네스토르의 아름다운 막내딸이 텔레마코스의 몸을 닦아 주는 것으로 묘사된다. 탕에서 때를 밀어주고, 젖은 몸의 물기를 마른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주고, 뽀송해진 몸에 기름을 발라주고... 이런 장면이 그려진다. 텔레마코스가 스파르타로 가서도 목욕장면이 나오는데.메넬라오스 궁전에 머물며 시녀들의 목욕 시중을 받는다. 이것 참! 지난날 이성(異性) 입욕 보조원이 몸을 닦아 줘 문제가 된 한국의 터키탕. 경찰 단속에 된서리를 맞았던 터키탕은 사실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 시대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미풍양속(美風良俗)의 일부로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짓고 사는 죄가 얼마나 가변적인 것인가!

 

◆2. 로마시대 목욕 방법

 

초창기 공화국시절 건실했던 로마인들은 목욕을 반기지 않았다. 신체를 나약하게 만든다고 여긴 탓이다. 그래서, 노예들의 목욕을 금지했다. 힘이 빠지면 일을 못하니까... 가정에 목욕탕을 설치할 때는 안보이는 으슥한 곳에 만들 정도였다. 그러다, B.C 2c를 지나면서 상업적인 목욕탕이 크게 늘었다. 물을 끓여 열탕이나 온탕으로 쓰고, 이때 생긴 열을 구들과 벽을 돌게 해 입체적으로 방을 덥히는 방법을 고안해 낸 덕분이다. 아그리빠가 B.C 33년 옥타비아누스의 명을 받고 조사한 결과 수도 로마(Rome)에만 무려 170군데의 목욕탕이 성업했으니, 한집 건너 하나씩 목욕탕인 셈이었다. 화산폭발로 한순간에 잿더미에 뒤덮인 폼페이에 가면 로마 시대 목욕탕이 당시대로 발굴돼 있어 로마 목욕탕의 구조를 잘 들여다 볼 수 있다. 목욕탕을 영어로 배스(Bath)라고 한다. 로마 목욕탕이 있던 영국의 도시 이름이다. 배스에도 로마시절 유황온천 목욕탕을 발굴 복원해 놔, 탐방객들이 살아있는 로마 목욕탕의 면모를 접하기 좋다.

 

로마 목욕탕의 구조를 들여다 보자. 로마 목욕탕은 초기 열기 사우나와 열탕이 전부였다. 열기 사우나를 다양한 온도로 나누고, 탕도 물의 온도에 따라 세분화 한 것은 네로 황제가 대형 목욕탕을 지으면서 부터다. 또, 이 무렵 운동시설이 목욕탕에 추가돼 강력한 근육운동을 한 뒤 목욕하는 방법이 정착됐다. 110년에 트라야누스 황제 목욕탕은 정원, 도서관, 산책로, 수영장등을 갖춘 종합 휴식시설로 위용을 뽐냈다. 서로마 제국 말기에는 수도 로마에 무려 8개의 초대형 무료 공중 목욕탕과 저렴한 요금의 830개 중소형 사설 목욕탕이 하루종일 목욕물 데우는 연기를 피워댔다.

 

목욕턍 구조도. 맨 왼쪽에 화장실 라트리나. 그 옆은 불을 때는 아궁이 프레푸르니움. 가운데는 미지근한 테피다리움. 테피다리움에는 구들 구조가 잘 드러나 있다. 오른쪽은 나타티오나 냉탕인 프리지다리움. 왼쪽 화장실 위는 뜨거운 칼다리움. 배스. ⓒ김문환

로마시대 당시의 유적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배스의 대온천탕(혹은 나타티오). 배스. ⓒ김문환

구들장을 들어낸 뒤 바라본 바닥. 구들장을 받치고 있던 고임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배스. ⓒ김문환

열기 파이프. 벽에도 이런 열기파이프를 시공해 방을 입체적으로 덥힐 수 있었다. 배스. ⓒ김문환

 

로마 목욕탕은 먼저 ①탈의실 아포디테리움(Apoditerium)으로 가 옷부터 갈아 입는다. 다음엔 ②라트리나(Latrina). 화장실이다. 이어 ③팔레스트라(Palestra) 즉, 체력 단련장에서 공놀이나 근육운동으로 몸을 만들었다. 대욕장 혹은 수영장 ④나타티오(Natatio)는 수영으로 운동을 마무리 하기 좋은 코스였다. 수영은 목욕 마지막 코스로 즐기는 경우도 많았다. 다음은 ⑤테피다리움(Tepidarium). 미지근한 미온욕실(微溫浴室)이다. 다음은 따듯한 온욕실(溫浴室) ⑥칼다리움(Caldarium)이다. 여기엔 욕조를 만들고 뜨거운 물도 담아 놓았다. 들어가 몸을 담그는 온탕(溫湯)이다. 큰 목욕탕은 ⑦라코니쿰(Laconicum), 즉 아주 뜨거운 열기욕실(熱氣浴室)도 갖췄다. 너무 열이 나니 이제 몸을 식혀야 겠다. 차가운 냉탕 ⑧프레지다리움(Fregidarium)이 기다린다. 냉온욕을 할 경우 칼다리움의 열탕과 프레지다리움의 냉탕을 번갈아 드나들었다. ⑨운찌오니움(Unzionium)은 마사지, 털다듬기, 오일바르기, 향수뿌리기 코스의 방이고, ⑪프레푸르니움(Prefurnium)은 불을 때서 물도 끓이고 뜨거운 열기를 공급하는 아궁이다. 아궁이는 우리 전통가옥의 구들장 원리였다.

 

◆3. 로마시대 목욕탕 풍경

 

로마시대 목욕은 하루 특히 오후의 가장 중요한 일과로 꼽혔다. 단순히 몸을 씻는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교의 개념이었다. 오전엔 포럼등에서 공적인 업무를 보고, 오후에 목욕탕에 들러 즐겼다. 목욕과 체력 단련 시설 외에 음식점, 주점, 정원, 일광욕장, 도서실, 강연실, 오락실, 연회실이 마련돼 있어 가능했다. 식사, 음주를 곁들여 시간을 보내는 사교나 여가의 장소였다. 오늘날 스페인땅 코르도바 출신으로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겸 네로 황제의 철학교사이자 섭정이었던 세네카는 말했다. "목욕과 포도주와 비너스가 우리를 타락시키고 있다. 그러나, 목욕과 포도주와 비너스는 우리의 삶이다." 목욕과 로마문화를 가장 잘 접목시킨 말로 손색없다. 한국사회 고급 호화 찜질방들은 로마 목욕탕의 환생인가?

 

세네카. 세네카는 로마에서 목욕문화가 삶 그자체라고 평가했다. 페르가몬 뮤지엄. ⓒ김문환

 

세네카의 말을 계속 들어 보자. "공중목욕탕에서 나오는 온갖 종류의 소리를 떠올려 보라. 근육질의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공을 잡고, 던지고, 운동하고... 이내 수영장으로 뛰어드는 소리. 한쪽에선 무기력하게 늘어진 남자가 오일마사지를 받는다. 안마사의 손이 어깨를 주무르고 두드릴 때마다 신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 미용사가 털을 뽑기 위해 손가락에 힘을 줄 때마다 외마디 비명 소리도 들려 온다. 음료 장수, 빵 장수, 소세지 장수, 모두가 큰 소리로 음식을 판다. 주점 주인들은 자기집 술을 권한다. 도둑이 들어 한바탕 소동도 벌어진다." 그래서 로마 시대 시민들은 목욕탕에 노예를 데리고 갔다. 이유는? 황제부터 가난뱅이까지 모두가 이용하다보니 도둑이 들끓었고, 주인이 퍼지게 노는 동안 노예는 꾸벅꾸벅 하염없이 짐을 지켰다. 요즘은 몰래 카메라가 사생활 침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노예 대신 옷장을 지킨다.

 

 

 

 

 

 

공놀이하는 여성 모자이크. 아슬아슬한 차림의 금발 여인이 목욕탕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 목욕탕에서 공놀이는 큰 인기였다. 공놀이에 뛰어난 선수는 남녀를 불문하고 선망의 대상이자 부러움을 샀다. 로마시대 이런 차림으로 여성들이 스포츠를 즐겼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을 준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목욕탕에서 공놀이는 대인기였다. 황제도 목욕탕에 와서 공놀이를 즐길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공놀이에 뛰어난 선수들은 요즘 축구스타 베컴이나 테니스 요정 샤라포바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목욕탕에는 남녀가 모였다. 연애와 사랑에 관심없는 사람이 있을까? 잘보이고 싶은 심정은 남녀 차별이 없다. 공놀이를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즐긴 이유다. 날씬한 몸매를 뽐내며 남자들 시선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요즘 비치 발리볼을 연상하면 쉽다. 해변에서 아슬아슬한 차림으로 이리 뛰고 저리 넘어지는 풍만한 여인네 몸놀림. 21c 풍경이 아니다. 로마시대 목욕탕 팔레스트라에도 그대로 펼쳐졌던 올드 패션이다.

 

요즘 찜질방이나 사우나에서 하루해를 보내는 아주머니들 처럼 로마시대에도 여성들이 목욕탕에 가는 것을 무척 즐겼다. B.C 2c부터다. 처음에는 남녀공간이 엄격히 구분됐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게 흐지부지 됐는데... B.C 50년 경 로마의 정치가로 카이사르에 반대하고, 공화주의를 내세우다 옥타비아누스에게 죽은 키케로는 목욕탕에서 남녀 공간이 무너지는 현실을 개탄했다. 도덕이 문란해 지는 것을 우려한 것인데... 스캔들이 문제가 되곤 했다. 2c 초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스캔들을 끊기위해 목욕탕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주막으로 간 말. 그 말의 목을 자른 김유신 장군의 행동처럼 보인다. 그보다 훨씬 전 일이지만...

 

하드리아누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스스로 목욕탕 출입 금지를 선언했다. 스캔들에 휘말리는 자신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는데...그는 나아가 목욕탕의 남녀분리 입욕을 엄격히 할 것을 명령했다. 알테스박물관. ⓒ김문환

 

 개과천선(改過遷善)한 사람일수록 규율이 엄한 법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남녀탕 분리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간대를 달리하는 목욕탕 사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공무가 많은 남자는 오후에 여자들은 오전. 오늘날 독일의 로마 유적지 바덴바덴에서 보는 남녀혼탕은 로마의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로마와 전혀 관련없는 일본의 남녀혼탕은 현대들어 비록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들의 심성만큼이나 기원이 아리송하다. 기독교시대로 접어든 뒤 목욕문화는? 차츰 사라져 갔다. 십자군 전쟁 이후에야 목욕이 그리 몸에 해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로마시대 의학기술은 목욕의 효용성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있었다. 물을 이용한 질병치료법을 다수 제시했던 갈리에누스는 효과적인 목욕을 위해 몇가지 원칙을 정했다. 먼저 라코니쿰에서 뜨거운 열기욕을 권한다. 이어 온탕으로 들어간다. 몸을 쭉 뻗는다. 다음 냉탕으로 가고, 나와서 몸을 문질러 준다.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드나드는 것이 좋다고 봤다. 질병예방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하루에 2-3차례 목욕을 권했는데 목욕 뒤에는 피부관리를 위해 올리브 기름 마사지가 좋다고 제안했다.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목욕건강 상식이라고 하는 것이 알고보니 로마인이 권장하고 실천했던 건강요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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