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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아가멤논의 죽음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5장. 트로이 함락 BR 1. 트로이 목마 2. 트로이 함락과 대학살 3. 카산드라 4. 라오콘 5.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5장. 트로이 함락


1. 트로이 목마

2. 트로이 함락과 대학살

3. 카산드라

4. 라오콘

5. 프리아모스

6. 안드로마케

7. 아스티아낙스, 헬레노스

8. 폴릭세나

9. 헬레네 고향으로

10. 아가멤논의 죽음--오늘 이야기

11. 오레스테스의 복수

12. 고대 그리스의 불륜

 

10. 아가멤논의 죽음

 

◆1. 카산드라와 개선

트로이가 함락 된 직후 벌인 만행. 트로이를 완전히 불살라 잿더미로 만들고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여자들을 시녀로 삼은 만행에 대해 신들은 크게 분노했다. 무엇보다 트로이의 수호신 아폴론의 분노가 커 대대적인 보복을 벌였다. 아카이아 연합군을 지켜주던 신들도 마찬가지여서, 아테나는 자신의 신전을 침범한 데 대해 따끔하게 벌주기로 작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신들의 노여움이 인간에게 재앙으로 연결될 첫 징조는 전쟁 지도부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났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형제가 다툼을 벌였다. 원래 공동의 적을 놓고 싸울 때는 협력하지만, 적이 없어지면 동지끼리 분쟁을 일으키는 법. 그러다 자멸하는 게 동서고금의 인류사가 들려주는 경험론적 가르침이다.

 

아가멤논. 로마시대 모자이크. 안타키아 박물관 ⓒ김문환

[일리아드]의 속편격인 [오디세이아]는 필로스의 지도자이던 노장군 네스토르의 입을 빌어 이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네스토르. 그는 아폴론 덕에 무려 3대에 걸쳐 산 사람이다. 아폴론은 일찌기 그의 조상 일가족을 몰살시켰는데, 미안함의 표현으로 그를 골라 오래 살도록 만들어 줬다. 트로이 전쟁에도 노장군으로 참가한 네스토르는 죽지 않고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간 몇 안되는 아카이아 연합군 장수였다.

 

오디세우스에 나오는 그의 회고담.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형제는 병사들을 한데 모았어. 병사들은 술이 곤드레 만드레 상태였지. 약탈하고 계속 마셔댔으니까. 두 형제는 귀국 방법을 놓고 병사들 앞에서 갈등을 빚었어. 아내를 되찾은 메넬라오스는 빨리 귀국하자고 주장했고, 아가멤논은 아테나 여신이 노해 있으니 잠자코 기다렸다가 여신의 화가 가라 앉으면 돌아가자고 주장했지." 아름다운 카산드라를 얻은 아가멤논이 급할 게 없었던 탓이다.

 

 

결국 아카이아 연합군은 두패로 갈렸다. 그러나 어느 쪽에 섰든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신들 그것도 아카이아 연합군을 응원하던 신들의 분노가 담긴 험난한 풍랑뿐이었다. 용맹을 떨치며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트로이를 유린하며 여자들을 차지하고 보물을 빼앗던 아카이아 연합군 장수들. 신 앞에 다시 말해 자연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세상 모든 것을 날려 버릴 듯 몰아치는 강력한 바람과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밀려드는 거센 파도 앞에 역발산(力拔山)의 용맹도 쇠마차에 달려드는 한갓 사마귀의 손사레(당랑거철, 螳螂拒轍)에 지나지 않았다. 한 사람씩 들여다 보자.

 

아가멤논과 아킬레스. 로마시대 모자이크. 나폴리 박물관 ⓒ김문환

 

파리스를 죽인 필록테테스. 풍랑에 배가 뒤집혔다. 난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고국이 아닌 이탈리아 반도 남부로 떠내려갔다. 小아이아스는 더욱 심한 경우다. 아테나 신전을 모독하며 성물 팔라디온에 손을 댔던 小아이아스는 끝내 아테나 여신의 노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됐다. 디오메데스.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많은 전리품을 쌓아 고국에는 도착했지만, 아내가 바람나 남편을 잊은지 오래였다. 10년 집을 비운사이 아내 아기알레는 그만 하인 코메테스와 정분이 나고 말았다. 아기알레는 남편 디오메데스를 죽이기 위해 복병을 숨겼고... 디오메데스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전쟁 영웅으로서 체면은 이미 구길 대로 구겨졌다. 불명예스럽게 고향을 등진 디오메데스는 이탈리아 반도로 도망가 살았다. 전쟁이 얼마나 무상한지 깨닫는다. 승자 없이 결국 모두가 패자라는 교훈이라면 부시는 이말에 공감할까?

 

미케네 유적지 입구의 사자문. 아가멤논이 전쟁으로 궁정을 비운 사이 아내 클리템네스트라는 이 성에서 외간남자와 정분이 난다. ⓒ김문환

아카이아 연합군 사령관 아가멤논은? 동생 메넬라오스가 떠난 뒤 트로이에 더 남았다가 닻을 올렸다. 아가멤논의 여인이 된 카산드라 역시 미케네행 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이 밝지 않다. 아가멤논과 자신이 헤라의 도움을 얻어 풍랑을 피해 큰 어려움 없이 미케네에 도착할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표정이 어둡다. 자신과 아가멤논의 시련이 바다가 아닌 미케네의 아가멤논 궁정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총사령관 이었지만, 집안에서는 바가지가 새고 있었다. 디오메데스와 같은 경우다. 아! 바람. 남녀 불문 인간의 숙명인가, 아니면 남편과 헤어져 사는 여자들의 숙명인가, 아니면 신의 징벌인가?

 

◆2.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의 부정

클리템네스트라. 아가멤논의 왕비다. 그러니, 미케네의 국모. 스파르타 틴다레오스왕의 딸이니 헬레네의 언니가 된다. 헬레네의 결혼에 앞서 아트레우스의 큰 아들 아가멤논과 결혼한 그녀는 아가멤논과 이미 오래 전에 갈등을 겪었다. 전쟁 초기 아카이아 연합군은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 여신을 노하게 만든 탓에 트로이해 뱃길에 필요한 순풍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아카이아 연합군 전속 점술사 칼카스가 내놓은 예언은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니아를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치라는 것. 아가멤논은 과감하게 딸의 희생을 결정했다. 뒤늦게 아킬레스가 이를 알고 막으려 했지만 오히려 아킬레스가 성난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 하는등 아카이아 군사들은 빨리 트로이를 정복해 전리품을 챙기고 싶은 마음에 이피게니아를 죽이자고 요구했다.

 

딸의 죽음을 알게 된 클리템네스트라. 남편 아가멤논과 의가 상하는 것은 당연한 것. 원래 클리템네스트라는 탄탈로스와 결혼해 살았지만, 아가멤논이 탄탈로스를 죽이고 자신을 강탈한 그 순간부터 이미 인간적으로 용서 할 수 없을 지 모른다. 그렇게 틀어진 남편이 집을 떠나 전장으로 간지 벌써 수년 째. 외로운 궁정을 혼자 지키기가 쉽지는 않은 법. 그래도 클리템네스트라는 처음 잘 버텼다. 그러다, 점점 외로움을 견딜 수 없게 되고... 이때 외부에서 누군가 살살 꼬드기면 넘어가기 십상. 마침내 클리템네스트라는 정분이 났다. 상대는 아이기스토스.

 

클리템네스트라. 아가멤논의 아내이던 그녀는 전쟁기간 동안 정절을 지키다 끝내 아이기스토스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헬레네의 언니답게 무척 아름답게 묘사한 로마시대 모자이크. 안타키아 박물관 ⓒ김문환

사실, 아가멤논은 자신의 원정기간 동안 아내가 바람나는 것을 막기 위해(중세라면 정조대를 채웠겠지만, 고대 그리스만 해도 그렇게 야만적이지는 않았다) 데모도코스라는 음유시인을 붙여 줬다. 아가멤논을 위해 충실하게 아내를 지켜 줄 노인이었다. 처음 데모도코스는 클리템네스트라 곁을 떠나지 않고, 그녀를 잘 돌봤다. 기회를 엿보던 아이기스토스는 마침내 데모도코스를 클리템네스트라와 떼어 놓는데 성공하고, 클리템네스트라를 유혹할 수 있었다. 아이기스토스는 아예 거처를 아가멤논의 궁정으로 옮겨 클리템네스트라와 함께 살며 왕으로 행세했으니... 고국에서 아가멤논은 이미 왕이 아니었다.

 

 

◆3.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죽다

전쟁 10년째. 트로이가 함락됐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기뻐할 수 없는 승전보. 아가멤논은 어찌됐나? 혹시 전사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뒤이어 도착한 소식은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템네스트라를 절망의 늪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가멤논 개선'. 아가멤논의 귀환 소식에 둘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냥 헤어지면 될 것을. 이미 너무 깊게 불륜에 빠진 남녀는 떨어져 살 수 없었다. 결론은 아가멤논을 처치하는 것. 살해 음모, 작전 개시. 아이기스토스는 처음 아가멤논이 도착하자 성대한 환영연을 베풀었다. 그리고는 잔치도중 불쌍한 개선장군 아가멤논을 죽였다.

 

이피게니아를 포함한 형제들.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들고 있는 이피게니아. 그옆은 오레스테스. 오른쪽은 앉아있는 아가멤논과 클리템네스트라. 혹은 앉아있는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템네스트라. 페르가몬 뮤지엄 ⓒ김문환

 

일설에는 아가멤논의 죽음에 관련된 클리템네스트라의 역할이 좀더 구체적으로 전해진다. 클리템네스트라는 개선장군 아가멤논에게 새옷을 지어 바쳤다. 새옷은 손이나 발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바느질로 봉해진 상태였다. 아가멤논이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막힌 소매와 발목 부분을 풀기 위해 주춤거린 것은 당연한 일. 이때 아이기스토스가 나서 버둥대는 아가멤논을 베었다. 아이기스토스가 매복시킨 20명의 병사가 죽였다는 설도 전한다. 아가멤논만 죽인 게 아니다. 아가멤논과 함께 온 트로이 왕녀 카산드라도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클리템네스트라는 카산드라를 인간적으로 모욕하면서 죽였다는데, 자신도 외간 남자와 바람이 난 상태에서 남편의 새 여자에 대한 분노를 그렇게 표현하다니... 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트로이의 비극을 예견했던, 그래서 자신의 비극마저 미리 알았던 카산드라는 그렇게 이국 땅에서 허망하게 죽었다.

 

아가멤논과 클리템네스트라 사이에서는 4명의 자식이 태어났다. 희생된 큰 딸 이피게니아, 큰 아들 오레스테스, 엘렉트라, 크리소테미스. 클리템네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와 정분이 생길 때 자식들이 자신의 부정한 행동을 목격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이미 희생된 이피게니아를 제외하고 일단 큰아들 오레스테스를 먼나라 포키스로 보냈다. 일설에는 딸 엘렉트라가 동생 오레스테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보냈다고도 한다. 이어 클리템네스트라는 딸 엘렉트라를 추방 대신 지하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자신의 부정한 행실에 대한 임막음 조치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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