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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배우 박정자-연출 한태숙'이라는, 이른바 연극계 '드림팀'이 만든 어린이극 '우당탕탕 할머니의 방'을 취재차 봤습니다. 개막 직전에 프레스 리허설도 있었지만 다른 일정이 겹쳐 보지 못했는데, 1주일만에 볼 수 있었습니다. 이름만으로도 믿음이 가는 사람들이 공들여 만든 어린이 연극으로, 요즘 연극계 불황 속에서도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습니다. 이 연극의 원작은 국내에서도 스테디 셀러가 된 독일 작가의 동화 '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입니다. 시끄러운 소리라면 질색을 하는 아랫집 할머니가, 윗집에 이사온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에 마구 화를 내고 아이들을 야단칩니다. 기가 죽은 아이들은 소리를 내지 않게 되고, 할머니는 귀가 당나귀처럼 커지는 이상한 병에 걸립니다. 이 병의 치료법을 알아낸 의사와, 윗집 아이들의 도움으로 할머니는 병이 낫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이 원작 동화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연극은 원작에 없는 부분을 많이 더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할머니의 가족 관계를 극에 개입시킨 것, 그리고 의사의 역할을 강화시킨 것입니다. 할머니는 딸이 있지만 혼자 살고 있고, 별로 왕래도 없습니다. 자세한 원인은 제시되지 않지만, 딸과 갈등을 겪었고 그 앙금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할머니는 딸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해보지 않았습니다. 딸은 어머니를 이른바 '고집 불통 노인네'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못된 딸년'을 욕하면서도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외로움'이라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귀가 커지는 이상한 병'으로 자신이 마귀할멈처럼 변했다며 괴로워하지만, 사실 외로움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병이지요. 할머니는 윗집 아이들과 화해를 통해 귀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병까지도 치유하게 됩니다. 의사는 할머니의 병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딸과 화해해야 한다고 믿고, 할머니의 귀가 커진 이유도 금방 알아냅니다. 할머니는 의사에게 마치 투정하듯 자신의 신세를 이야기합니다. 의사는 외로움에 지친 할머니에게 이웃이요, 가족을 대신하는 존재이기도 한 것입니다. 의사의 역할이 강화된 것이 이해가 갑니다. 할머니의 외로움은 박정자 씨의 뛰어난 연기로, 그리고 인형의 '뛰어난 연기'로 표현됩니다. 이 연극은 인형이 윗집 아이들 역할을 맡아 연기하고('연기'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윗집 아이들의 엄마 아빠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조종하는 것입니다), 인형극 형식의 '극중극'을 삽입하기도 하며 다양한 표현 양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할머니와 똑같은 모습의 인형이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있다가 외로움에 지친 듯 눈물을 닦고 눕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혼났습니다. 실제 인형은 표정이 변하지 않지만, 분명히 이 장면에서 인형은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인형을 조종하는 배우의 움직임도 무척 섬세했고, 박정자 씨의 연기가 인형에도 투사된 느낌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 눈시울이 또 한번 뜨거워진 것은 극이 끝날 때쯤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아이들과 화해하고 따뜻한 정을 쌓아가고 있을 무렵, 딸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는 장면입니다. (이 때 객석의 아이들은 '전화 왔어요, 할머니!' '딸 전화예요. 빨리 받으세요'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박정자 씨는 아이들이 이 전화가 딸의 전화라는 것을 미리 알아채는 데 너무나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이 전화벨 소리는 오랜 세월 쌓였던 할머니와 딸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는 전조이기도 합니다. 이미 아이들과 화해한 할머니는 이제 딸과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사실 할머니의 딸은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한 번도 직접 무대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할머니와 의사의 대사를 통해서 딸에 대해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딸은 이 작품의 진행상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할머니가 앓고 있는 '외로움'이라는 병에 큰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까요. 극이 진행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저는 웃고 있었고, 때로는 폭소를 터뜨렸습니다만, 몇몇 장면에서는 이렇게 가슴 한 구석이 저려왔습니다. 연극이 다 끝나고 공연장 로비로 나오자마자 제가 아는 한 연극계 인사와 마주쳤는데, 절 보더니 웃으면서 '재미없어서 졸았군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눈시울이 뜨끈해지는 걸 참으려고 눈을 비볐더니 아마 졸린 눈처럼 보였나 봅니다. 당황해서 연극은 재미있었는데 나오면서 하품을 해서 그렇다고, 이상한 '변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관객 인터뷰를 하면서 저 같은 사람을 또 한 사람 만났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연극을 봤다는 이 젊은 어머니는 인터뷰를 하면서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눈물을 참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어머니는 연극이 재미있으면서도 몇몇 장면에서는 가슴이 뭉클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아이들이 이런 연극을 보면서 감성이 커졌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한 것인지, 왜 저런 장면에서 눈물이 나는 것인지, 이유는 잘 몰라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나고,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 어머니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었나 봅니다. 취재를 모두 끝내고 나오다 '귀여운 할머니' 박정자 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분장을 지우고 귀가하는 길이었습니다. 박정자 씨는 잘 봤다고 인사하는 저에게 '다음에는 딸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자신이 어머니에게 '못된 딸년'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못된 딸년'을 둔 어머니이기도 해서, 이 연극이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저 역시, (연극 속 할머니의 딸처럼 연락도 없고 왕래도 없는 경우는 아니지만) 어머니를 떠올리면 항상 죄송하기만 한 딸입니다. 그리고 요즘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이 실감나도록 제 속을 썩이는 큰 딸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소리 지르면서 살고 있고요. 결국 저는 연극을 보는 내내, 무의식중에 저의 어머니와 딸을 떠올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당탕탕 할머니의 방 보고 싶어! 엄마가 어제 뉴스에서 했잖아." 제 딸이 오늘 한 말입니다. 정말 딸을 데리고 다시 한번 연극을 봐야겠습니다. 아, 가능하다면 어머니도 모시고 가야겠습니다. 박정자 씨도 이 연극은 '3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연극이라고 했습니다. 아직은 한참 어린 제 딸이 연극을 보고,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리는 데까지 이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당탕탕 할머니의 방'은 여러 면에서 재미있는 연극이니까요. 제가 인터뷰한 젊은 어머니가 말했듯이, 딸이 '연극을 보고 감성이 커지는' 경험을 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뉴스 스테이션 http://my.sbs.co.kr/shkim(제 뉴스 스테이션의 '사람들 이야기' 채널에, 박정자 씨와 한태숙 씨의 자세한 인터뷰를 실어놨습니다.) |
'못된 딸년'이 본 '우당탕탕 할머니의 방'
며칠 전 배우 박정자연출 한태숙이라는, 이른바 연극계 드림팀이 만든 어린이극 우당탕탕 할머니의 방을 취재차 봤습니다. 개막 직전에 프레스 리허설도 있었지만 다른 일정이 겹쳐 보지 못했는데, 1주일만에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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