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중해 문명기 4권--
--글 싣는 순서-- 5장. 트로이 함락 1. 트로이 목마 2. 트로이 함락과 대학살 3. 카산드라 4. 라오콘 5. 프리아모스--오늘 이야기 6. 안드로마케 7. 아스티아낙스, 헬레노스 8. 폴릭세나 9. 헬레네 고향으로 10. 아가멤논의 죽음 11. 고대 그리스의 불륜
5. 프리아모스
◆1. 프리아모스의 삶과 인생역정 조선조 마지막 27대 순종(純宗) 황제인가? 아니면 청국의 마지막 12대 황제 푸이(溥儀) 선통제(宣統帝)인가? 한 때 영화를 누리던 영광스런 조국. 그러나, 날로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세 앞에 무력해 질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던 처량한 신세의 임금들. 이름은 척(拓)이요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둘째 아들인 순종을 끝으로 조선은 문을 내렸고, 광서제(光緖帝)의 동생 순친왕(醇親王)의 아들인 선통제를 마지막으로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나 청국도 문을 닫았다. 조선의 망국 1910년보다 2년 늦은 1912년. 이런 비극이 동서고금에 어디 한둘이랴. 프리아모스는 이런 임금들을 닮았다. 미인을 좋아했던 아들을 둔 죄 밖에 없던 프리아모스. 태어날 때부터 조국을 멸망시킬 운명이라는 예언에 따라 산속에 버려졌던 아들 파리스 때문에 생긴 전쟁으로 50명이나 됐던 자식 가운데 49명을 잃고, 결국 자신도 적군의 칼날에 쓰러져야 했던 비운의 임금 프리아모스를 들여다 본다.
프리아모스는 트로이의 마지막 왕이다. 미남자가 많기로 소문난 이다산 근처 트로이. 프리아모스의 아버지는 라오메돈이다. 라오메돈은 일로스의 아들로 지구상 인간 가운데 가장 몸매가 아름다웠다고 하는 가니메데스의 조카다. 또, 여신 에오스가 온몸을 다바쳐 사랑했던 남자 티토노스는 프리아모스의 형이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사로잡았던 미남자 안키세스는 프리아모스의 사촌이다. 그러니, 프리아모스는 신성일이나 알랭들롱 정도의 집안 출신이라고 볼 수 있을까? 프리아모스는 트로이 왕인 아버지 라오메돈의 자식 8명 가운데 한명으로 왕자 신분이었지만, 어린 시절은 평범했던 것으로 기록된다. 그의 운명이 갈린 것은 아버지의 욕심이 부른 전쟁 때문.
아버지 덕에 왕이 되지만, 역시 아버지의 업보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프리아모스가 왕이 된 과정부터. 포세이돈과 아폴론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지상에 귀양 와 있으면서 라오메돈이 짓고 있던 트로이성 축조에 참여한다. 여기에는 제우스의 인간 아들 아이아코스도 한몫 거들었다. 공사가 끝났지만, 라오메돈은 공사대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화가 난 포세이돈이 바다괴물을 보내자 이번엔 헤라클레스에게 부탁해 괴물을 처치하면 신성한 말(제우스가 가니메데스를 데려가고 준 말의 새끼)을 준다고 약속했다. 라오메돈은 이 약속도 어겼다. 다혈질의 헤라클레스는 트로이를 공격해 멸망시키고 라오메돈을 죽였다. 이때 헤라클레스는 大아이아스의 아버지 텔라몬의 공훈을 인정해 라오메돈의 딸이자 트로이 공주 헤시오네를 전리품으로 줬다. 헤시오네는 헤라클레스에게 간청해 동생 포르다케스를 죽음에서 구해 냈다. 그러자, 헤라클레스는 포로 포르다케스를 헤시오네에게 파는 형식을 취한 뒤 그를 트로이 왕에 앉혔다. 포르다케스는 훗날 [팔린 자]라는 뜻의 [프리아모스]가 됐다.
얼떨결에 아버지가 죽고 조국이 쑥대밭 난 가운데 왕이 된 프리아모스. 왕위에 오른 뒤 정치를 잘해 트로이를 동방의 부국으로 키웠다. 태평성대(太平聖代)이니 요순(堯舜)은 몰라도 순에게서 양위받은 하나라의 시조요 황하의 범람을 다스린 우(禹)임금(세습왕조를 연 상서롭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치세에 견줄 수 있을까? 프리아모스 통치기에는 아마존족과 전투한 것을 제외할 경우 트로이는 특별한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국력 신장을 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프리아모스는 첫 아내 아리스베와 결혼해 아이사코스라는 아들을 얻었지만, 나중에 헤카베와 재혼하면서 많은 자식을 뒀다. 헥토르를 비롯해 파리스, 카산드라... 여러명의 후궁 사이에서 무려 50명의 자식을 봤다. 신화에는 그 이름까지 모두 전하지만 열거할 필요까지야...
프리아모스의 말년은 운세가 좋지 않았다. 뒤늦게 되찾은 아들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오면서 트로이 전쟁이 터졌다. 그가 평생을 애써 부국으로 키운 트로이는 유린됐고, 자식들도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특히, 가장 사랑했고, 트로이를 이끌던 실질적인 지도자 헥토르가 아킬레스에게 죽었을 때는 자식을 죽인 원수 아킬레스를 찾아가 막대한 돈을 내고 빌면서 까지 아들의 시신을 찾아오는 수모도 겪는다. 트로이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호메로스도 이때 만큼은 프리아모스를 위엄있고, 기품있는 왕으로 묘사한다.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신들을 지성으로 모셨고, 사려 깊으며 인품이 온화해 최고신 제우스도 그를 아낄 정도였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프리아모스는 아카이아 연합군의 목마 작전에 휘말리면서 트로이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앞당기는 우를 범했다.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카이아 연합군의 첩자 시논을 받아들인 뒤 목마까지 성안으로 들여온 것인데... 마침내 트로이가 함락되고, 아카이아 병사들이 트로이 성내부 곳곳을 짓밟았다. 프리아모스는 최후까지 도망가지 않고 왕비 헤카베와 살아남은 가족을 지키려 노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병장기를 들고 아카이아 연합군의 무지막지한 살인마 네오프톨레모스에 맞섰다고 한다. 네오프톨레모스는 누구인가? 전쟁광 아킬레스의 아들. 잔인하기로 아버지 뺨친다고 소문난 네오프톨레모스.
◆2. 죽음 영화 [트로이]는 프리아모스의 최후와 관련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트로이가 함락될 당시 프리아모스가 이름 모를 신상(神像)들에게 조국 트로이의 안녕을 비는 것으로 그렸다. 그러다 신상들이 무너져 내릴 때 그만 깔려 죽는다. 기독교 관련 영화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만들어 기도하다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죽는 장면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는 해석이다. 당시 프리아모스가 모시던 신은 제우스다. 트로이를 포함한 그리스 문명권에서 최고신 제우스 상은 최고의 멋을 들여 웅장하게 만드는 게 관행이었다. 오늘날 유물로 남아있는 상을 봐도 그렇다. 그런데, 프리아모스가 주문을 외우며 기도하던 상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조잡한 수준에 머물렀다. 이렇게 왜곡하면 안되는데...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죽음은 참 비극적이었다. 야수처럼 성안으로 밀려들었던 아카이아 연합군. 프리아모스의 궁전 앞 목마에 숨어 있다 뛰쳐나온 네오프톨레모스는 성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성안은 아비규환(阿鼻叫喚). 늙고 병든 프리아모스. 네오프톨레모스가 닥쳤을 때 칼을 빼 덤벼들었다. 노인 한명이 살기 넘치는 젊은 야수 네오프톨레모스에게 한주먹 거리나 됐을까? 네오프톨레모스는 궁전 뒤편 신전 제단까지 도망간 프리아모스의 아들 폴리테스부터 죽였다.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들 폴리테스를 처단했으니 프리아모스의 심정이...
이어 프리아모스에게 달려든 네오프톨레모스. 백발의 노인과 혈기왕성한 청년 네오프톨레모스의 싸움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네프톨레모스는 프리아모스의 성성한 백발을 움켜 쥐었다. 신성한 제단에 엎드려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프리아모스를 잡아 낚궈챘다. 머리채를 잡아 끌어당긴 것인데... 힘없이 제단에서 굴러 떨어진 노인 프리아모스. 이미 자비를 구할 여력도, 목숨을 구명할 이유도, 말을 붙여볼 잠시의 여유도 없었다. 냉혈한 네오프톨레모스는 칼을 높이 치켜 들었다. 그의 칼날이 번쩍이는가 하더니 프리아모스의 목에서 선혈이 쏟아졌다.
아버지 라오메돈이 헤라클레스를 배신해 망쳐놓은 나라를 물려받아 동방의 부국으로 일궈냈던 프리아모스. 번영하던 경제강국 트로이를 통치하던 프리아모스의 인생은 그렇게 마감됐다. 목이 잘린 그의 시신은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묘소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의 시신을 돌봐 줄 누군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처자식은 물론 손자들까지 대부분 죽었다. 백성들도 참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 임금의 시신이라고 거둬 줄 형편이 못됐다.
네오프톨레모스가 진정한 군인이었다면 적국의 왕 프리아모스를 최소한 예우했을 것이다. 살려두지는 못했다 해도 시신만이라도 거둬들여 장례를 치러 주는 게 상례였으니 말이다. 그리스인들은 사후 세계를 믿었고, 장례를 잘 치러주지 않을 경우 편히 눈을 못감아 사후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구천을 떠도는 방랑객 신세. 이런 대목에서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서는 우리 조상네 그것과 많이 닮았다.
일설에는 네오프톨레모스가 프리아모스를 궁정에서 죽이지 않았다고도 한다. 네오프톨레모스는 아버지 아킬레스의 원수를 갚기 위해 더 극적인 복수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프리아모스를 잡은 네오프톨레모스는 그를 끌고 궁정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갔을까? 자신의 아버지 아킬레스가 잠들어 있는 무덤. 그 무덤에서 네오프톨레모스는 프리아모스의 목숨을 앗아 아버지 영전에 바쳤다. 아킬레스가 기뻐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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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프리아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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