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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드 파리]

노틀담 드 파리변화의 새물결을 노래하라 BR BR정치 용어 가운데 네포티즘(Nepotism)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친족 중용주의 또는 족벌정치를 일컫는 말로 최고 권력자가 정부 요직에 친족이나 가까운

노틀담 드 파리-'변화의 새물결을 노래하라'

정치 용어 가운데 네포티즘(Nepotism)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친족 중용주의 또는 족벌정치를 일컫는 말로 최고 권력자가 정부 요직에 친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앉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용어의 기원은 중세의 로마 교황들이 자신의 사생아를 네포스(Nepos)라고 부르면서 중요한 자리에 앉힌 데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네포스는 바로 영어의 네퓨(Nephew, 조카)입니다. 이런 악습은 대략 10세기 무렵부터 시작돼 그것을 금지하는 법이 마련된 1692년까지 무려 7백년 넘게 지속됐습니다.

오늘날 네포티즘은 권력부패의 온상인 정실인사를 의미하는 정치 용어로 자리 잡았지만 네포티즘의 이면에는 감출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 배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본능적 욕망 말입니다. 금욕적 생활을 신께 맹세한 교황도 욕망의 사슬에서 몸부림치는 번민의 밤을 보냈을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너무나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그러다 태어난 자식을 돌봐주고 조카라고 둘러대면서까지 곁에 가깝게 두고 싶어 했던 것은 어쩌면 자식을 둔 아버지의 당연한 마음일 것입니다. 네포티즘은 이렇게 가장 금욕적이고, 엄격한 교황에게서 가장 나약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모순을 담고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프랑스 뮤지컬 노틀담 드 파리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놓고 성직자 프롤로, 곱추 콰지모도, 근위대장 페뷔스가 서로 쟁탈전을 벌이는 4인 3색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노틀담 성당의 부주교 프롤로는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중세시대에 금욕과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전형적인 성직자입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롤로의 삶은 에스메랄다를 알게 된 후부터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곱추 콰지모도를 보살피면서 종교와 결혼하고 학문을 애인으로 삼은 채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로 알던 성직자 프롤로. 하지만 매혹적으로 춤추는 에스메랄다를 본 뒤부터 혈관속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이라는 본능 때문에 갈등은 시작됐습니다. 프롤로가 부른 뮤지컬 넘버들은 인간이 동물적으로 갖고 있는 육체에 대한 갈망과 본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특히 ‘네가 나를 파멸시키는구나’라는 노래에서 프롤로는 본능앞에서 괴로워하면서 또 그 본능이 자신을 파멸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본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루시퍼의 유혹에 괴로워 하는 성직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전달했습니다.

근위대장 페뷔스의 에스메랄다에 대한 사랑은 대단히 현실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고민은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밤의 여인인 에스메랄다와 낮의 여인인 약혼녀, 사랑인 에스메랄다와 삶인 약혼녀 사이에서의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결국 그는 에스메랄다를 배신하고 현실적인 삶을 선택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기회주의적 선택은 인물의 성격상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페뷔스는 중세시대 절대적 지위를 갖고 있는 성직자 프롤로와 아무것도 가진 없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콰지모도 사이에 있는 중간자적 인물입니다. 프롤로가 흑이고 콰지모도가 백이라면 페뷔스는 회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색은 곧 기회주의를 의미하며 그리고 실제로 기회주의적 결정을 내렸습니다.

프롤로와 페뷔스와 비교한다면 콰지모도의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콰지모도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핍박받는 서민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어쩌면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마녀 사냥으로 몰고 가 에스메랄다에게 삶이냐 침대냐라며 선택을 요구한 프롤로는 성직자라는 권력을 지닌 계급이었습니다. 페뷔스는 근위대장이라는 지위는 물론 잘생긴 외모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마 콰지모도는 지위도 외모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에스메랄다를 향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에스메랄다에 대한 집착은 주인이자 연적인 프롤로를 죽일 정도로 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얻어내는 데 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에스메랄다가 죽은 뒤에서야 비로소 그녀를 껴안고 영원한 사랑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없이 남몰래 혼자 갈구한 사랑이었기에 ‘춤추어라 에스메랄다’를 부르며 절규하는 콰지모도의 모습이 그래서 더욱 애절해 보였습니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갈등하던 세 남자의 선택은 각자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 본능, 현실 그리고 이상으로 나뉘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당시 프랑스의 계급적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성직자 프롤로로 대변되는 귀족계급의 위선, 신흥 권력세력으로 등장하는 부르주아지의 기회주의적 행태 그리고 가진 자들로부터 핍박받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다음 세상을 꿈꿀 수 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노틀담 드 파리’는 사랑 얘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도도하게 밀려오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예견이었습니다. 에스메랄다라는 인물의 중요성이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자유분방한 에스메랄다는 성직자 프롤로와 대척점에 서 있었습니다. 프롤로가 엄격한 규율과 형식을 중요시 하는 구시대, 고전주의의 상징이라면 에스메랄다는 바로 그런 고전주의에 반발하는 신시대, 낭만주의의 상징입니다. 그녀는 모든 변화의 원인이었습니다. 프롤로가 종교와 이성으로 잠재워 놓았던 인간의 본성을 일깨워 준 사람은 바로 에스메랄다였습니다. 성직자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끔 한 사람 역시 에스메랄다였습니다. 또 프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 역시 그녀였습니다.

에스메랄다의 역할을 그 뿐만 아니었습니다. 페뷔스의 사랑에 뛰어들어서는 페뷔스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나게 했고 콰지모도의 삶에 뛰어들어서는 콰지모도가 집시들을 풀어줘서 노틀담 성당을 공격하는 민중 봉기를 일키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담고 있는 ‘대성당의 시대’와 ‘피렌체’는 바로 그런 변화의 시대에 대한 예견과 예찬이 담겨 있어서 더욱 웅장하고 장엄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음유시인 그랭구아르는 그 노래를 통해서 구시대, 대성당의 시대가 끝났음을 노래했습니다. “작은 것은 항상 큰 것을 무너뜨리고 / 문학은 건축을 파괴하리라” 작은 것은 즉 인간의 본성인 사랑은 작품 속의 사랑 얘기처럼 모든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문학 사조인 낭만주의는 첨탑처럼 하늘을 향해 뻗은 노틀담 성당의 고딕 건축양식, 즉 종교의 시대로 대변되는 노틀담 대성당의 시대에 종말을 가져왔습니다.

프랑스 뮤지컬 노틀담 드 파리는 정치 용어 ‘네포티즘’이라는 단어의 기원처럼 극단적인 인물을 통해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본성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빅토르 위고가 쓴 원작에 충실함으로써 가능했습니다. 1831년 노틀담 드 파리를 발표한 빅토르 위고는 이른바 낭만주의 계열의 작가입니다. 단순히 사랑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가 아니라 관습과 형식을 중요시하던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인간의 본성을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철학은 뮤지컬 노틀담 드 파리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정치가나 권력자가 아니라 민초들의 작은 몸부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준 한마디 “작은 것은 항상 큰 것을 무너뜨린다”는 그랭그와르 말이 아직도 머리속에서 잔잔하게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p.s 이 글은 뮤지컬 잡지 '더 뮤지컬' 4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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