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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사르페돈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BR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트로이 연합군) BR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그리스의 전투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
트로이 연합군)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그리스의 전투

3. 헥토르 1--삶과 죽음

4. 헥토르 2--시신훼손과 신들의 분노

5. 헥토르 3--시신송환과 장례

6. 아에네아스

7. 파리스 1

8. 파리스 2

9. 트로이로스

10. 펜테질레아와 아마존

11. 멤논과 이디오피아

12. 에오스

13. 사르페돈--오늘 이야기

14. 돌론

15. 제우스, 아프로디테, 아레스, 아폴론

 

13. 사르페돈

 

◆1. 신의 아들 사르페돈

사르페돈의 아버지는 지상과 천상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신 제우스다. 어머니를 놓고는 두가지 주장이 엇갈린다. 어머니가 [라오다메이아]라는 설과 [유로파]라는 설. 라오다메이아는 벨레로폰테스의 딸이다. 벨레로폰테스는 포세이돈의 아들이니 라오다메이아는 포세이돈의 손녀딸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손녀딸이 어머니요, 아버지는 최고신 제우스. 이정도면 정말 남부럽지 않은 가문이다. 사르페돈의 어머니가 유로파라는 설도 살펴보자. 제우스가 페니키아 공주 유로파에게 반해 황소로 변한 뒤 들판에서 유로파를 유혹했다. 유로파가 황소를 만지는 순간. 황소 제우스는 그녀를 태우고 크레타 섬으로 갔다. 그곳에서 유로파와 제우스는 3명의 자식을 낳았다. 큰 아들 미노스, 둘째 사르페돈, 셋째 라다만티스. 미노스는 크레타의 왕이 되고, 사르페돈은 어머니 유로파와 함께 리키아로 가 리키아의 왕이 된다.

 

제우스의 유로파 납치. 황소로 변한 제우스가 페니키아 공주 유로파를 납치해 크레타섬으로 데려가고 있다. 욕정에 불타오른 황소의 모습과 육감적인 몸매의 유로파. 그리고 유로파에게 사랑의 마음을 불어 넣으려는 에로스가 옆에서 날고 있는 모습을 잘 그렸다.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간다라 지방에서 발굴한 헬레니즘 시대 유리컵 그림이다. 기메 박물관. ⓒ김문환

그러나, 유로파의 아들 사르페돈이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새로운 설을 내놓는데... 유로파의 아들 사르페돈이 리키아의 왕이 되고 그 후손으로 동명이인(同名異人)인 사르페돈이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에서 사르페돈이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적는다. 따라서, 호메로스의 기록으로만 본다면 트로이 전쟁에 등장하는 사르페돈은 제우스와 유로파가 낳은 아들이 분명하다. 동방 최고의 왕녀이자 미녀인 유로파와 최고신의 아들 사르페돈은 인간 가운데는 따를 자가 없을 만큼 출신성분이 좋다.

 

◆2. 트로이 전쟁에서 활약

아카이아군의 맹공으로 트로이군이 궁지에 몰리는 형국에서 사르페돈의 진가가 발휘된다. 얘기는 이렇게 풀린다. 트로이군이 지리멸렬 밀리는 가운데, 아카이아 연합군의 디오메데스가 아에네아스를 죽이기 위해 필사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아폴론은 아에네아스를 살려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며 3번이나 죽음 일보 직전에서 구해냈다. 전쟁의 신 아레스도 위기에 처한 트로이군을 독려하며 용기를 불어 넣었다. 이때 리키아 왕 사르페돈이 분연히 나섰다. 의기소침해진 헥토르를 꾸짖어 트로이군 전체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여보시게, 헥토르 왕자. 왜 그리 나약해 졌는가? 언제나 용기백배해 트로이 시민들을 이끌고, 주변 동맹군들에게 용기를 심어 주던 기백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구만. 지금 트로이 연합군 군사들은 아카이아군을 두고 마치 고양이 앞의 쥐가 된 꼴 같소. 왜 이리 됐는지... 나는 말이오. 머나먼 타국땅에서 처자식 두고 당신과 트로이 백성들을 도우러 왔는데,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어떡하란 말인지. 제발 힘 좀 내서 시민들 격려하고, 동맹군도 독려해서 저 난폭한 아카이아 연합군 무리를 물리칠 수 있도록 합시다. 승리를 거둬야 하지 않겠소."

 

사르페돈의 담대한 심성과 따듯한 우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르페돈의 준엄하면서도 간절한 그리고, 우정이 담긴 충고에 헥토르가 다시 힘을 낸 것은 당연한 일. 전열을 정비한 트로이 연합군은 아카이아 연합군을 다시 세차게 몰아쳤다. 사르페돈 역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적을 베는데... 마침내는 틀레폴레모스와 대적하게 된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사르페돈이 마주한 적 틀레폴레모스는 죽어 하늘에 올라가 신이 된 천하장사 헤라클레스의 아들이다. 일찌기 헬레네와 결혼하기 위해 구혼맹세에 서명했던 틀레폴레모스는 헬레네가 트로이로 간 뒤 약속대로 9척의 배에 휘하 군사를 이끌고 참전한 터였다. 헤라클레스가 제우스의 아들이니 틀레폴레모스는 제우스의 손자이다. 사르페돈은 제우스의 아들. 그러니, 틀레폴레모스는 사르페돈의 조카인 셈이다. 삼촌과 조카의 대결이라. 모양이 별로 좋지 않다. 이럴 때 제우스는 누구의 손을 들어준단 말인가! 아들이냐 손자냐 그것이 문제로다. 물론 제우스가 크게 걱정 할 것 없다. 각자 운명의 시계가 있으니 말이다.

 

둘이 지척에 서고... 일전에 앞서 말싸움부터 펼친다. 틀레폴레모스 왈(曰). "어이구, 사르페돈 아니시오. 제우스의 아드님이시라. 그러나, 지금 제우스의 아드님 다운 역할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군요. 제우스의 아들이란 이름을 달고 다니시려면 적어도 우리 아버지 정도는 되셔야지. 안그렇습니까? 우리 아버지 헤라클레스 말이오. 선친께서는 말이외다. 아이고, 그러고 보니 벌써 꽤 여러해 전이네. 사자 보다 용맹하셨던 선친은 트로이 라오메돈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불과 6척의 배를 이끌고 이곳 트로이에 와서 트로이를 철저히 짓밟으셨죠. 참 용감한 분이셨는데... 사르페돈 께서는 리키아에서 여기까지 무엇 하러 오셨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우리 아버지 뒤를 이어 트로이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작정입니다. 그러니, 내창을 받고 먼저 좀 가셔야 겠습니다. 용서하세요."

 

대결 장면. 아테네 흑색 인물 기법의 도자기 그림이다. 아테네 박물관. ⓒ김문환

듣다가 기가막혔는지 사르페돈이 손사래를 치며 왈(曰). "어이 조카. 말이 좀 거칠구만 그래. 어른 앞에서는 단어를 좀 골라 정중하게 여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네 아버지 헤라클레스는 말야. 어머니는 나와 다르지만 같은 제우스의 아들이니 내 형님이시지. 그분이 트로이를 쑥대밭 내신 것은 라오메돈 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네. 지금의 자네처럼 이유없이 여기와서 트로이를 공격한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 목숨 아까운 줄 안다면 이만하고 돌아가는 게 좋겠어. 그래도 제우스의 대통을 잇는 한핏줄인데, 혈육끼리 꼭 피를 보며 골육상쟁을 벌여야 하겠는가? 조카 삼촌 사이에 피바람 일으키는 일은 좀 피했으면 하는데. 어떤가? 자네 생각도 그렇다면 내가 살려 보내 주고. 아니라면 따끔한 맛을 보여 줌세. 저승에 계신 큰아버지 하데스에게 보내주지."

 

사르페돈이 말을 마치자 둘은 마치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 창을 집어 던졌다. 일단 운명의 여신은 제우스의 아들 사르페돈의 손을 먼저 들어 주었다. 사르페돈이 던진 창은 틀레폴레모스의 목을 꿰뚫었다. 선혈을 쏟으며 틀레폴레모스가 쓰러졌다. 말 한마디 못하고 즉사한 틀레폴레모스. 그가 던진 창도 급소를 비끼긴 했지만, 사르페돈의 넓적다리를 맞췄다. 상처는 깊었고, 사르페돈은 의식을 잃었다. 트로이 군사들이 급히 사르페돈을 들쳐 업었다. 출혈을 염려해 다리에서 창을 뽑지 않은 채로 후송했다. 사르페돈도 죽는 것인가? 손자 보다는 아들의 목숨이 귀한 것일진대... 제우스는 재빨리 참나무 잎으로 푹신한 자리를 마련해 줬다. 아들이 편히 쉬며 의식을 회복하라는 배려였다. 참나무 잎에 누운 사르페돈의 얼굴 위로 북풍이 불었다. 생명을 회복시키려 제우스가 보낸 바람이다. 사르페돈은 정신을 차렸고, 집안내 결투는 그렇게 끝났다.

 

◆3. 사르페돈의 죽음

사르페돈의 죽음. 파트로클로스의 창을 맞고 죽은 사르페돈.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잠의 신 히프노스가 그를 영면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루브르. ⓒ김문환

사르페돈의 최후는 의외로 일찍 찾아왔다. 사르페돈을 하데스로 본낸 아카이아 용사는 누구인가? 좀 놀랄 일이다. 아킬레스의 절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다. 영화 [트로이]에서 미숙한 청년으로 묘사되는 파트로클로스는 사실 용장이었다. 제우스의 아들 사르페돈을 벨 정도로 빼어난 무용을 자랑했던 것이다. 사르페돈과 파트로클로스 군대가 일전을 치를 때 파트로클로스는 그어느 전투때 보다 용맹을 떨치며 사르페돈의 리키아 병사들을 도륙냈다. 깜작 놀란 사르페돈이 파트로클로스에게 덤벼들었지만, 이번에는 운명의 저울이 사르페돈 반대편에 섰다.

 

전투를 지켜보던 제우스는 깜짝 놀랐다. "아니, 내가 인간 가운데 가장 아끼는 아들 사르페돈이 죽게 생겼네. 저녀석 파트로클로스. 어허. 안되겠다. 사르페돈을 고향집으로 돌려 보내야 겠구나." 제우스가 나서려는데, 옆에 있던 아내 헤라가 손을 잡으며 막았다. "흥, 바람피워 얻은 자식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천상천하 만물의 지배자가 중심을 지키셔야지. 제자식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어디 있단 말이오. 당신이 사르페돈을 빼돌려 고향으로 보내면 나머지 신들도 제자식을 여기저기로 빼돌릴 텐데 그러면 인간세상이 제대로 굴러 가겠소? 당신이 사르페돈을 살리는 행위는 정당성도 없고, 다른 신들도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를 그냥 죽게 두고 대신 죽음과 잠의 신을 보내 그의 시신을 고향으로 안전하게 보내도록 합시다."

 

죽음. 죽음을 상징하는 여신 프로테시스가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중이다. 루브르. ⓒ김문환

마누라 등쌀에 손들지 않을 장사. 오늘날 대한민국은 물론 고대 그리스에도 없었다. 신들의 세계에서도... 제우스 역시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르페돈의 운명은 결정됐고, 지상에서 실행 과정만 남았다. 전개과정은 이렇다. 파트로클로스가 사르페돈의 부하를 죽이자, 사르페돈이 파트로클로스에게 창을 던졌다. 그러나 창이 빗나갔다. 반면, 파트로클로스가 던진 창은 사르페돈의 배와 가슴사이 횡경막을 뚫었다. 치명상이었다. 사르페돈은 비명한번 제대로 질러 보지 못하고 큰아버지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하세계로 가야했다. 밤의 신 닉스(Nyx, 그리스어 ?蔗?의 아들 형제인 죽음의 신 타나토스(Thanatos)와 잠의 신 히프노스(Hypnos, 그리스어 발음 휘프노스) 형제가 안내를 맡았다. 빛을 피해 검은 안개 세상 속에 사는 히프노스가 깊은 잠을 내리자 우리식으로 저승사자인 타나토스는 잠에 빠진 사르페돈을 영면의 세계, 즉 하데스의 지하(저승) 세계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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