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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에오스

&nsp;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BR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트로이 연합군) BR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그리스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
트로이 연합군)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그리스의 전투

3. 헥토르 1--삶과 죽음

4. 헥토르 2--시신훼손과 신들의 분노

5. 헥토르 3--시신송환과 장례

6. 아에네아스

7. 파리스 1

8. 파리스 2

9. 트로이로스

10. 펜테질레아와 아마존

11. 멤논과 이디오피아

12. 에오스--오늘 이야기

13. 사르페돈

14. 돌론

15. 제우스, 아프로디테, 아레스, 아폴론

 

12. 에오스

 

◆1. 사랑을 찾아 헤맨 여신

에오스(Eos)는 멤논의 어머니로 아킬레스와 대결 때 자식에 대한 뜨거운 모성애를 보여줬다. 이점에서 에오스는 자상하고 인자한 가정적인 어머니 상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에오스에 대한 이해를 여기서 멈추고 만다면 그녀를 피상적으로 들여다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에오스는 자식 사랑에 열성적이었던 만큼 애정생활도 그 누구에 뒤지지 않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흔히 아프로디테가 분방하게 사랑과 자유를 찾아 남성세계를 넘나들며 농락한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에오스의 사생활도 만만찮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정숙했던 헤라나 아테나, 아르테미스 같은 여신과 구별된다. 쉽게 에오스는 해방여성, 정비석의 소설에 나오는 1950년대 한국 사회 [자유부인] 오선영을 닮았다. 요즘 일요일밤 KBS 영상실록을 통해 종종 등장하는 영화속 주인공과 비슷하게 생겼을까?

 

남녀 사랑. 에오스는 사랑을 찾아 헤맨 바람둥이 여신이었다. 루브르. ⓒ김문환

에오스는 새벽의 여신이다. 새벽 만큼 신선하게 희망을 안겨 주는 단어가 또 있을까? 모든 일상의 출발점. 지난날의 피로를 덜고, 밤새 힘을 얻어 다시 시작하는 시점. 만물을 새롭게 탄생시켜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니, 생명을 잉태해 내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다. 자궁을 닮은 새벽은 어둠속의 고요다. 역동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의 평화로운 정적. 세상사 잡다한 번뇌와 애증을 한데 모아 품은 뒤 맑고 밝은 희망으로 바꿔 주는 새벽의 이미지는 내일을 설계하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특히 어울리는 이미지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20년전인 1985년 '깃발'사건이 학원가를 풍미했는데... 그무렵 '신새벽'이라는 다시말해 새벽에 새로움(新)을 덧붙여 넣은 이름의 문집을 선후배 친구들과 만들어 고등학교 후배들에게 건넨 적이 있다. 아! 서슬 퍼런 5공 공안정국 아래서 선량하신 고교 은사님들 긴장시킨 뒤 호출당한 죄를 생각하면... 20년 사이 한국사회 정말 많이 변했다. 마음껏 생각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측면에서.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오빠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Helios)다. 어둠의 장막을 걷으며 여명의 새벽 에오스가 나타나면 이윽고, 오빠 헬리오스가 황금마차를 타고 동녘 하늘부터 찬란하게 세상을 비춘다. 황금마차는 하루종일을 서쪽으로 달린 뒤 밤의 어둠에 묻히면서 내일을 준비한다. 그렇다면 밤은 누구인가? 밤도 형제지간이다. 밤을 상징하는 것은 아무래도 달. 달의 여신 셀레네(Selene)가 에오스의 여동생이다. 그러니, 언니가 새벽을 열면서 붉은 장미색 손가락으로 문을 만들면 오빠는 태양의 황금마차를 타고 문을 통과해 휘황한 빛으로 낮을 밝힌다. 이어 여동생이 바톤을 전달받아 두마리의 말이 끄는 은수레를 타고 밤새도록 은은하게 고요의 세계를 평화롭게 비춘다. 그야말로 3남매의 노력속에 인간은 낮도 밤도 자기 것으로 만들며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이지만, 참 낭만적이고 운치 있다.

 

◆2. 인간을 사랑한 비극

에오스의 애정생활을 들여다 보자. 에오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태초의 1세대 신에 해당하는 티탄(타이탄)족에 속한다. 티탄족 아스트라이오스는 에오스의 첫남자. 둘 사이에서는 바람과 기타 새벽을 비추는 별들이 여럿 태어났다. 이어 사랑을 찾아 헤매는 여인들이 좋아할 스타일의 터프가이. 전쟁의 신 아레스와도 사랑을 나눴다. 아레스를 좋아했던 아프로디테와 연적관계가 됐음은 물론이다. 화가난 아프로디테가 벌을 내렸는데... 벌이 늘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 병. 아프로디테 때문에 바람기가 생긴 에오스는 이후 팔자에 없는 바람둥이로 살아야 했다.

 

에오스가 케팔로스를 보고 반해 쫓아가자 케팔로스가 도망치고 있는 장면 .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여기서는 에오스가 케팔로스를 ?아가 팔로 붙잡은 장면을 그렸다. 일방적인 사랑의 성취. 에오스는 케팔로스를 붙잡아 시리아로 데려갔다.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신들은 인간과도 스스럼 없이 사랑을 나눴다. 에오스 역시 여러 인간 남자들을 유혹했다. 나중에 아르테미스 여신을 겁탈하려다 아르테미스가 보낸 전갈에 물려 죽은 거인이자 미남자 오리온. 포세이돈의 아들 오리온은 에오스가 사랑한 남자 가운데 한명이다. 에오스는 오리온을 에게해 한가운데 델로스 섬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은밀한 시간을 보냈다. 오리온에 정신이 팔려있던 에오스는 얼마뒤 새로운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케팔로스. 케팔로스는 아테네 사람으로 아주 잘생겼다. 에오스는 그를 보고 한눈에 반해 ?아 다녔다. 도망가는 케팔로스를 간신히 붙잡아 시리아로 데려갔다. 남의 눈이 있으니 동네에서 놀지 못하고 멀리 돌며 사랑을 나누는 풍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보인다. 시리아에서 둘은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케팔로스는 에오스에게 납치돼 왔을 뿐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시리아에서 도망쳐 고국으로 돌아온 뒤 다른 여자 프로크리스와 결혼한다. 둘은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의심하고 질투하는데, 이럴 경우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기 일쑤다. 부부간의 의심이 낳은 결말은 케팔로스가 실수로 프로크리스를 죽이는 것. 살인죄로 아테네에서 추방된 케팔로스는 참회를 위해 델피 신탁소를 찾았다가 엉뚱한 계시를 얻는다. "길을 가다가 처음 만나는 암컷과 합방하라." 이 무슨 변고인가! 케팔로스가 만난 첫 암컷은 곰.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곰과 신방을 차렸는데... 곰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웅녀도 아니고... 케팔로스는 그렇게 곰에서 인간이 된 여인과 살았다.

 

케팔로스를 ?아가는 에오스를 그렸다. 페르가몬 뮤지엄. B.C 5백년경 작품이다. ⓒ김문환

케팔로스가 새 인생을 설계하는 동안 에오스도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게 될 남자를 만난다. 티토노스. 티토노스는 누구인가? 일로스의 아들로 라오메돈의 형제다. 라오메돈의 아들이 프리아모스이니 티토노스는 프리아모스의 삼촌이자 헥토르의 작은 할아버지다. 이다산 언저리에 살던 트로이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티토노스 역시 참 빼어난 용모를 타고 태어났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어느날 새벽녘 이다산을 배회하다 티토노스를 발견했다. 그자리에서 에로스가 쏜 금화살에 맞고 사랑의 포로가 됐다. "바로 저남자다." 에오스는 티토노스를 쫓아가 휘감아 안았다. 연약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일 뿐. 에오스가 티토노스를 데리고 간 곳은 남쪽 이디오피아다. 그리스인들에게 남쪽은 아프리카로 더운 나라, 다시 말해 태양의 나라였다. 새벽의 여신이니 한낮 태양의 나라로 가는 게 당연한 것일까.

 

이디오피아에서 에오스는 티토노스와 날씨 만큼이나 뜨겁게 사랑을 나눴다. 그 결과 2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에마티온과 동생인 멤논. 에오스는 자식들 가운데 멤논을 가장 사랑했고, 그를 결국 이디오피아의 왕으로 삼았다. 아내가 사랑스러우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을 하는 법. 남편이 좋으면 그사이에서 낳은 자식도 예쁠 것이다. 조선조 왕들이 특정 후궁에 빠지면 그녀가 낳은 아들로 대통을 이으려 한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1970년대 군사쿠데타로 무너지기 전 이디오피아의 왕, 아니 황제로 군림하던 하일레 실레시아가 생각난다. 유대인왕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이디오피아 왕(유대인 피가 반 섞임) 메넬리크의 후손이라고 자신을 신격화했던 하일레 실레시아. 비록 멤논의 이디오피아는 그와 무관하지만, 아무튼 멤논은 이디오피아의 왕이 됐다. 그런 멤논이 이디오피아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로 와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스와 결투를 벌이다 죽은 것이다.

 

에오스가 티토노스를 쫓아가고 있다. 키타라 연주를 하던 티토노스가 에오스를 보고 놀라 달아나는 모습이 해학적이다. 티토노스는 에오스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다. 에오스는 제우스에게 부탁해 티토노스가 영원히 자신과 함께 살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결과는? 루브르 . ⓒ김문환

에오스는 티토노스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영원히 함께 살고 싶었다. 이제 아프로디테가 내린 바람기를 접고 사랑하는 한남자 티토노스와 사랑을 나누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신은 영생의 여신인데, 티토노스는 언젠가 죽어야 할 유한한 생명의 인간. 티토노스가 죽으면 자신은 외톨이로 혼자 남게 될 것이니, 티토노스가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대상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제우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아니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 제우스도 에오스의 간절한 청을 듣고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해서 티토노스는 영생을 얻었다. 여기까지는 신과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승리로 비친다.

 

그러나,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제우스가 우주의 질서를 깨며 인간인 티토노스를 영원히 살게 해주는 것은 좋았는데 한가지를 간과했다. 죽지만 않을 뿐 늙어가는 것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아무리 오래 살면 무엇 한단 말인가! 늙지 않고 만년 청춘으로 힘있게 살아야지. 신들은 늙지 않으므로 에오스도 제우스도 티토노스를 신처럼 영원히 살게 해주면 만사가 해결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착각의 결과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티토노스가 젊을 때는 좋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 일년, 이년 세월이 흐르면서 티토노스는 늙어 갔다. 늙는 다는 것은 쭈글쭈글 추하게 오그라 드는 것. 에오스는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깨달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에오스의 궁전에 갖혀 살던 티토노스는 더욱 고통스러웠다. 티토노스는 점점 늙어 쭈그렁 밤송이 아니 작은 매미가 되고 말았다. "맴맴맴맴... 여보 나 좀 살려 주오. 아니 죽여 주오. 맴맴맴맴..." 무더위 속에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올여름 부터는 유심히 들어볼 일이다. 고대 그리스어 좀 배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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