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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트로이로스

BR BR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BR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트로이 연합군) BR 1. 트로이 연합군 2.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
트로이 연합군)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그리스의 전투

3. 헥토르 1--삶과 죽음

4. 헥토르 2--시신훼손과 신들의 분노

5. 헥토르 3--시신송환과 장례

6. 아에네아스

7. 파리스 1

8. 파리스 2

9. 트로이로스--오늘 이야기

10. 펜테질레아와 아마존

11. 멤논과 이디오피아

12. 에오스

13. 사르페돈, 돌론

14. 아폴론, 아프로디테, 제우스

9. 트로이로스

 

◆1. 왕자의 난

 

파리스도 죽고 이제 전쟁은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가뜩이나 불리한 상황으로 몰린 트로이에서는 엉뚱한 문제로 내홍을 치르며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데... 파리스가 죽은 뒤 [왕자의 난]이 일어난 것이다. 왕자의 난은 동서고금(東西古今)에 예외가 없다. 권력이란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기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기독교적으로 보면 이브가 뱀의 유혹으로 시험에 빠진 뒤, 유혹에 빠지는 일은 지속되는 업보로 볼 수도 있다. 아무튼 조선에서 왕자의 난은 이성계가 상왕(上王)으로 물러나 앉은 뒤 그의 아들들이 정권을 놓고 벌인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骨肉相爭)을 우선 꼽는다.

 

이성계의 첫 부인 신의왕후가 낳은 아들들이 합세해 둘째 부인 신덕 왕후가 낳은 아들들을 죽이는 살인극이 1차 왕자의 난이다. 신의 왕후의 아들 6명 가운데 가장 드셌던 5섯째 아들 정안대군 방원은 신덕왕후의 소생으로 배다른 동생이자 세자이던 방석과 방석의 동복 동생 방번을 죽이면서 대통을 신의왕후 소생 자식이 이을 수 있도록 했다. 조선 건국의 이념적 지도자인 정도전은 이때 이성계의 의중대로 세자 방석을 지키다 철퇴를 맞는다. 여기서 이미 조선은 [성리학적 재상정치]라는 건국이념의 정통성에서 한발 비켜난다. 첫단추가 잘 못 끼워졌다고 할까? 2차 왕자의 난은 신의 왕후 소생 가운데 벌어진다. 신의 왕후의 둘째 아들 영안대군 방과(정종)가 힘없이 왕위에서 물러 난 뒤 4째 아들인 회안대군 방간이 세력을 키워 왕위를 노리자 방원이 형을 제압하면서 왕위를 차지하는 게 그 전모다.

 

한 아비의 피를 이어 태어난 형제들간의 끔찍한 살육전이라면서 옛사람들을 탓하기 어렵다. 몇해전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한 재벌가문이 떠오른다. 왕회장이 명을 다하는 순간 아들들이 그룹의 주력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벌였던 현대판 왕자의 난은 어떤가? 아직도 부친 제사에 함께 모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다툼의 결과 한쪽은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나머지 한쪽은? 아버지의 명분을 이었지만, 빚더미도 함께 물려받아 몸부림치다 그만 모든 것 끌어안고 비극적인 생의 마감을 택했으니... 거기엔 민족관에 투철하지 못한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아둔한 참모들의 그릇된 훈수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수 있다. 인생사란 무엇인가? 승자와 패자가 있을까?

 

트로이 전쟁에서도 왕자의 난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내막이 궁금하다. 왕권을 놓고 다툼을 벌인 것일까? 그렇다면 좀 대외적인 명분이라도 있을 테고. 그러나, 트로이에서 왕자의 난은 왕권 다툼일 수가 없다. 근본적으로 헥토르의 위상이 너무 컸던 반면 다른 아들들의 위상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왕권 아닌 여자문제가 원인이었다. 파리스가 죽자 홀로 된 절세가인(絶世佳人), 아니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가 뒤집혀도 그 것을 모르고, 임금이 미모를 탐해 빠져들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헬레네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로 왕자들간의 실력대결이 펼쳐졌다. 헥토르가 있었다면 노선정리가 이뤄졌겠지만, 무호동중 토작호(無虎洞中 兎作虎)라. 헥토르가 죽은 뒤 범없는 고을에 토끼가 선생이니... 헬레네의 미모를 탐하던 왕자들은 서로 헬레네를 차지하겠다고 달려들었다.

미인도. 고전기 그리스 시대 도자기에 그려진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 미인은 동서고금에 늘 갈등의 요인이 된다. 트로이에서는파리스가 죽고 미망인 헬레네를 차지하기 위한 왕자의 난이 발생한다. ⓒ김문환

 

고민에 빠진 사람은 아버지 프리아모스. 노왕은 과부가 된 헬레네를 그냥 둘 경우 벌어질 다툼이 염려스러웠다. 말 그대로 남편이 죽었지만 아직 죽지 않은 미망인(未亡人) 헬레네를 넘보는 자들이 트로이에서 분란을 일으킬게 분명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미모. 미인이 어디 나라만 망하게 할까? 친구들간 우정은 물론 감정을 가진 모든 남자들 사이에서 이보다 더 큰 갈등의 요인은 드물 것이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면 인간사에서 원하든 원하지않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경국지색은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을까. 불완전한 인간들의 삶에서.

 

프리아모스는 다툼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가장 강한 자가 헬레네를 차지하라는 지엄한 명을 내렸다. 헬레네 쟁탈전에 나선 왕자는 3명. 프리아모스는 3명의 아들들에게 패하면 깨끗이 승복한다는 다짐을 받아내고 경쟁을 시켰다. 맹세야 누가 못하겠는가? 뒷날 어기더라도 일단 맹세해야 경쟁에 참여할 자격이 생기니... 지키지 못할 맹세가 한 둘이 아님을 살다보면 여러 경우에서 겪게 된다. 트로이판 왕자의 난에 출전한 3명의 이름은 전부터 헬레네의 미모에 침을 삼켜오던 데이포보스, 헬레노스, 이도메네우스(아카이아 연합군의 장수로 크레타를 대표하던 인물과 동명이인). 승리는 데이포보스가 거뒀고, 헬레네는 그의 차지로 돌아갔다. 아름다운 헬레네는 짐을 싸 데이포보스의 집으로 가야했다. 세번째 남편을 맞는 결혼을 위해.

 

◆2. 트로이로스 삶과 죽음

 

프리아모스의 50명 아들 가운데 왕자들의 난을 일으킨 이들 말고도 트로이로스를 지나칠 수 없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프리아모스와 헤카베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아들이 트로이로스다. 끝으로 나온 자식에게 더 애정이 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겠다. 앞선 자식들은 크고 강한데 뒤에 낳은 자식은 작고 약해 보인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맨 나중에 나온 새끼나 맨 나중에 부화된 새끼는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앞선 형제들에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다 굶어 죽고 만다. 많은 개체를 살릴 수 없는 자연 생태계에서 자연스런 도태 일수 있지만, 감정을 가진 인간사에서는 늘 부모의 마음을 안쓰럽게 만드는 요인이다. 막내에 대한 사랑은 생물학적이면서 자연발생적인 인과관계를 갖는 것인지... 조선조 이성계는 끝에서 두번째 방석에게 세자자리를 주었고, 그의 손자 세종은 죽을 때 소헌왕후와 낳은 여덟번째 아들이자 막내인 영응대군의 사저에서 숨을 거뒀다.

 

아킬레스에 죽는 트로이로스. 아킬레스가 어린 트로이로스를 죽이고 있다.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프리아모스와 헤카베가 아끼던 막내 왕자, 트로이로스. 그의 죽음은 너무 비극적이다. 아카이아 연합군이 트로이에 도착했을 때 용한 점쟁이들이 내놓은 예언 가운데 하나는 프리아모스의 막내 트로이로스가 20살이 되기 전에 트로이는 함락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한 그가 스무살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날들을 더 싸워야 한단 말인가? 아카이아 연합군은 고민에 빠졌다. 전쟁을 빨리 승리로 이끌기 위해 좋은 꾀를 생각해 냈다. 트로이로스를 죽여 버리면 트로이로스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므로 예언도 무효가 된다는 계산이었다. 트로이로스는 그렇게 죽을 운명이었다. 트로이로스를 죽인 사람은 다름아닌 아킬레스. 아킬레스가 그를 죽이는 과정은 두가지 설로 전해진다.

 

아카이아 연합군은 트로이로스를 처단한다는 계획을 수립한 뒤 정탐꾼을 트로이로 보냈다. 어떻게 하면 트로이로스를 손쉽게 처단 할 수 있을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정탐꾼이 캐내 아카이아 연합군에게 보고한 내용은? 어린 트로이로스는 아직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전투용 말을 기르는 일을 맡고 있다는 것. 특히 중요한 정보는 그가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한번씩 트로이 스카이아 성문을 열고 나온 다는 것이었다. 트로이로스를 죽이는 길은 그가 말에게 물을 먹이러 트로이 성문 밖으로 나올 때 급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은 당연하다. 습격은 아킬레스 몫이었다. 용력이나 담력에서 그를 당할 자가 없어 그것이 순리로 보였다.

 

아킬레스가 트로이로스를 죽이기 위해 우물가에 잠복하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아킬레스의 방패는 메두사 얼굴을 하고 있다. 루브르. ⓒ김문환

전투도 잠시 뜸해진 어느 여름날 한가한 오후 늦게. 트로이로스가 여동생 폴릭세나와 함께 말을 몰고 트로이성을 빠져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소년 트로이로스는 말에게 물을 주려 우물가로 향했다. 매복해 있던 아킬레스. 살기등등하던 그는 때를 놓치지 않고, 트로이로스 일행을 덮쳤다. 순식간에 피바람이 일었다. 어린 트로이로스는 아킬레스가 휘두른 칼날에 쓰러졌다.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의 목에서 솟는 선홍색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다행히 여동생 폴릭세나는 시종들의 도움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아킬레스가 오빠 트로이로스를 죽이는 사이 시종들이 잽싸게 폴릭세나를 안고 성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트로이로스가 우물가에서 변을 당하며 비명횡사한 에피소드는 훗날 도자기 화가들의 좋은 그림 소재가 됐다.

 

이와 다른 설도 전한다. 아킬레스가 트로이로스를 죽이려 매복한 것은 같지만 전개가 다르다. 우물가 근처 숲속에 숨어 트로이로스를 기다리던 아킬레스. 저 멀리서 미소년이 말을 끌고 나타나는 게 아닌가. 가만히 들여다 보니 보통 빼어난 용모가 아니었다. 용장이자 동시에 영웅호색(英雄好色)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킬레스. 전장을 돌며 숱한 여자를 포로로 잡아 첩이나 시녀로 삼았지만, 남색에도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음이 휙 돌아버린 아킬레스. 칼을 놓고 대신 트로이로스의 손을 잡아 끄는게 아닌가! 다행히 트로이로스는 아킬레스의 억센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근처 신전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당시 신전은 삼한(三韓)시대 우리 역사에서 소도(蘇塗)에 해당한다. 신을 모시는 성스런 공간으로 누구도 이 안에서는 난폭한 행동을 할 수 없으며 살인자가 들어가도 잡아올 수 없는 지엄한 성소가 소도였다. 그리스인들에게 신전이 그랬다.

 

신전으로 들어간 트로이로스를 불러내기 위해 아킬레스는 신전 밖에서 갖은 감언이설로 유혹의 말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겁에 질린 트로이로스는 묵묵부답. 요지부동 나오질 않았다. 욕정의 포로가 돼 제정신이 아니던 아킬레스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다. 그는 벌써, 여러번 신전을 유린한 경험이 있는 위험한 위인이었다. 어리고 착한 심성의 트로이로스는 자신의 생각대로 설마 아킬레스가 신전을 범하지는 못하리라는 순진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끝내 트로이로스가 나오지 않자 아킬레스는 칼을 들고 신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어린 소년의 짧은 외마디 비명이 비극적인 톤으로 울려 퍼졌다. 분을 참지못한 아킬레스가 핏물 떨어지는 칼을 들고 신전 밖으로 나오면서 트로이로스의 삶은 마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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