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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파리스 2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BR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트로이 연합군) BR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그리스의 전투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
트로이 연합군)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그리스의 전투

3. 헥토르 1--삶과 죽음

4. 헥토르 2--시신훼손과 신들의 분노

5. 헥토르 3--시신송환과 장례

6. 아에네아스

7. 파리스 1

8. 파리스 2--오늘 이야기

9. 트로이로스

10. 펜테질레아와 아마존

11. 멤논과 이디오피아

12. 에오스

13. 사르페돈, 돌론

14. 아폴론, 아프로디테, 제우스

 

8. 파리스 2

 

◆1. 아카이아 연합군 휴전제의 거절

다시 전투가 시작됐다. 파리스도 나섰다. 화려한 병장기로 무장한 파리스가 보무당당 집을 나서 형 헥토르를 만났다. 헥토르도 아내 안드로마케와 눈물의 이별을 나눈 뒤 전장으로 나가던 참이었다. 헥토르는 간만에 아우 파리스를 칭찬한다. "아! 사랑스런 아우 파리스여. 그대는 많은 트로이 사람들의 원성의 대상이었다네. 스파르타로 가서 왕비를 보쌈해 와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으니 말이야.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지 자네도 알고 있겠지? 죽고 다치고, 가족을 잃고..." 잠시 숨을 고른 헥토르는 아우에게 "그러고도 자네는 전쟁을 이리저리 피해만 다녔지. 자신의 책임은 아랑곳 없이 말야. 그러니, 어느 트로이 시민이 자네를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이제 훌륭한 무장을 갖추고 전장에 나간다니. 많은 트로이 시민들이 이제야 말로 자네의 진면목을 바로 볼 수 있으려나..."

 

파리스. 여자만 밝히고 용기는 없어 전쟁에 큰 공을 세우지 못한 인물로 일리아드에는 기록된다. ⓒ김문환

전장으로 나온 파리스는 다시 한번 제의한다. 메넬라오스와 자신이 승부를 겨뤄 전쟁을 끝내자고... 허나 누가 이말을 곧이 들을 것인가? 그러나, 트로이 사람들은 일단 아카이아 연합군에 사절을 보내기로 했다. 사절의 요구에 대한 아카이아 연합군의 답은? 한마디로 "NO". 모두들 고개를 가로젓는 가운데 디오메데스가 일어나 "트로이의 패망이 눈앞인데 왜 휴전제의를 받아들인 단 말인가!" 사절로 왔던 이다이우스는 혹시 전쟁을 종식시킬수 있을까하는 희망을 접고 트로이로 돌아가 한마디 던졌다. "아카이아 연합군이 거절했소이다".

 

이래서 트로이와 아카이아 연합군 사이의 화평 가능성은 완전히 물건너 갔다. 대화의 전제조건을 상대가 도망갈 구실을 적절하게 주는 것으로 규정한다면... 지금 북한핵을 둘러싼 한반도 주변 강국들의 [6자 회담]이란 것이 과연 이런 대화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2. 아킬레스를 죽이다

일리아드에는 파리스가 구체적으로 적을 무찌르는 장면이 나오질 않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파리스의 역할이 있으니 바로, 아킬레스의 죽음. 아킬레스가 파리스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것인데...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 [트로이]에서는 전쟁 막판 파리스가 얼떨결에 활로 아킬레스를 맞추는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일리아드에 나오지 않는 장면이다. 일리아드에는 아킬레스의 죽음 자체가 언급되지 않는다. 일리아드는 헥토르의 장례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뒷날 씌여진 [오디세이아]에도 아킬레스의 죽음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뒷날 그리스인들이 만들어낸 후일담에 아킬레스의 죽음이 기록될 뿐이다.

 

파리스가 아킬레스를 쏘아 맞췄다고 하는 것은 그가 그만큼 명궁(名弓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다. 파리스에 대해 인색한 일리아드에서 파리스의 활실력을 찾아볼 수 있는 대목 하나를 발견할 만큼 파리스는 활과 통한다. 파리스가 전투도중 활을 쏴 디오메데스를 맞춘 것. 그러나, 여기서도 칭찬은 인색하다. 호메로스는 "화살이 힘없이 날아와 디오메데스의 다리를 관통했다"고 적는다. 파리스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필법인데, 여기서 파리스를 한번 더 밟는다. 파리스가 맥없이 활을 쏘아 놓고도 무척 자랑스럽게 자신의 활솜씨를 자랑했다는 것. "아하하하. 이자들. 내활솜씨 봤느냐? 이러고도 나를 얕볼 수 있는가? 그리는 아니 될 걸." 디오메데스가 받았다. " 네 이놈. 색정광아! 여자만 밝히는 네 화살에 맞은게 치욕이로구나. 그러나, 네놈의 화살은 왜 그리 약한지 맞아도 아프지를 않구나. 하하하. 겨우 오른쪽 발바닥을 스쳤을 뿐이다. 이놈아. " 입이 대소고리 만해진 파리스가 심한가, 아니면 파리스의 표정을 비아냥대는 호메로스가 좀 심한 것인가?

 

궁사. 활을 들고 걸어간다. 브리티시 뮤지엄 . ⓒ김문환

아카이아군의 용장 디오메데스를 쏘았던 활로 뒷날 아킬레스도 쏘아 맞추는데... 헥토르를 죽이면서 자신도 죽을 운명에 처해진 아킬레스는 점점 더 용감해져 자신의 위험을 돌보지 않으며 전투에 나섰고, 마침내 트로이의 스카이아 성벽을 기어올라 트로이 시가지로 들어가려는 최후의 공격을 시도했다. 성벽을 오르던 그는 아폴론의 노여움을 샀다. 트로이군 편에 서 전쟁을 지원하던 아폴론. 스카이아 성벽을 기어오르지 말라는 포세이돈의 충고를 무시하고 아킬레스가 성벽에 오르자 행동에 나섰다. 이제 아킬레스의 최후를 준비할 시간이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활을 쏘는 파리스의 뒤로 아폴론이 다가갔다. 파리스가 아킬레스를 과녁으로 삼자, 파리스의 팔에 자신의 팔을 가져다 댔다. 활 시위는 파리스가 당겼지만, 화살의 방향은 아폴론이 뜻하는 대로 날아갔다. 테티스가 아킬레스를 스틱스 강에서 목욕시킬 때 두손으로 잡았던 발목에 화살이 꽂혔다. 아킬레스건(腱). 아킬레스는 파리스에게 영광을 안긴 채 그렇게 떠났다.

 

◆3. 비극적인 사랑의 원죄

[오뉴월 서릿발]. 음력으로 5월, 6월이면 양력으로 6월, 7월.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다. 이런 더운 날씨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야 생기는 서리가 내리다니.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이런 오뉴월 서리를 우리 조상들은 여인네가 한(恨)을 품으면 생긴다고 봤다. 트로이 전쟁과 조선의 오뉴월 서리에 무슨 연관관계가 있을까? 비록 동서양으로 갈라져 살지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후예들로 정서는 비슷한 모양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여인네가 품은 한(恨)이 빌미가 돼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죽었으니 말이다. 한을 품은 여인의 이름은? 오이노네(Oenone).

 

파리스. 왼쪽에 파리스가 키타라를 들고 앉아 있고, 그 오른쪽에 헤르메스가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3명의 여신을 데리고 와 누가 최고의 미인인지 가리라고 말한다. ⓒ김문환

오이오네는 이다산에 살던 요정이다. 자고로 이다산 근처에 살던 트로이 남자들은 빼어난 용모를 자랑하기로 소문난 터. 가니메데스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고, 안키세스도 아프로디테의 구애공세에 무너졌다. 이들의 후손인 파리스 역시 뛰어난 용모 덕에 일찌기 여신의 눈에 드는데... 이다산의 요정 오니오네가 파리스에게 빠진 비련의 주인공이다. 오이오네라는 이름은 '포도주의 여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트로이 근처 케브렌강을 지키는 하신(河神)의 딸인데, 포도주가 9월이나 10월에 생산되므로 아마 가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여성이었을 터이다. 추녀(秋女) 오이오네가 하루는 가을날의 아름다운 이다산중을 산책하다 흰 양떼를 몰고 지나가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의 포로가 되는데...어떻게 산중에서 숲의 요정과 양치기가 사랑을 맺게 됐는지 살펴보자.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자신의 입으로 밝힌 대로 무려 50명의 아들을 뒀다. 수많은 아들을 보던 중 정비(正妃) 헤카베가 어느날 아들 한명을 낳았다. 힘찬 첫 울음 소리가 예사롭지 않은 아기. 당시 관습대로 아기를 점장이에게 데려갔다. 불길한 예언. "트로이를 멸망시킬 화근"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이럴 수가! 일설에는 이런 불길한 징조를 알아낸 이가 다름 아닌 파리스의 누나 '카산드라'라고도 한다. 그녀는 빼어난 아름다움 덕에 아폴론으로부터 예지능력을 부여 받은 터였다. 누구의 예언이든 갓 태어난 파리스를 이다산에 내다 버리라는 프리아모스의 지엄한 명이 떨어졌다. 10달 배앓이로 낳은 아들을 내다버려야 하는 어머니 헤카베의 마음은 쓰렸지만, 신탁에 따라 살아야 했던 당시 관습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이다산에서 양치기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파리스는 이후 목동으로 자라게 됐다. 왕실의 신성한 피를 이은 파리스는 준수한 용모의 청년으로 자랐다. 그리고 산중 요정 오이오네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 행복하게 살던 두사람은 아들 코리토스까지 낳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단란하던 요정과 인간의 결혼생활에 금이 갈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파리스가 트로이 왕실의 왕자임이 밝혀지고 파리스는 궁궐로 들어가게 된 것. 파리스는 동방의 부국 트로이의 구중 궁궐로 들어가고, 오이오네는 아들을 데리고 이다산중에 남았다. 어려운 시절 함께 보낸 조강지처(糟糠之妻) 박대하고 잘되는 남성 조선땅에는 없는 법인데...

 

궁궐에 들어간 파리스는 어느날 스파르타에 사절로 가게 됐다. 물론 양치기 시절 에리스가 던진 사과의 주인공을 가려준 덕에 아프로디테가 헬레네를 안겨주기 위해 만든 공작의 일환이었지만... 문제는 오이오네가 이소식을 듣고 파리스에게 혹시 스파르타에 가거들랑 헬레네를 데려오지는 말라고 당부를 한 것. 오이오네 역시 예언능력을 가진 요정이었다. 오이노네의 간절한 부탁을 파리스는 듣지 않았다. 파리스는 오이오네가 자신이 새로운 미녀를 취하는 것에 질투하는 것으로 여겼을 뿐이다. 조국 트로이에 어떤 운명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 경고를 무시하고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오자 오이오네의 위치는 더욱 초라해졌다. 남편 파리스와 함께 살 가능성이 사려졌다고 생각한 오이오네는 다시 이다산으로 돌아가면서 한마디 남긴다. "훗날 큰 상처를 입으면 나를 찾아 오시오." 새 여자에 빠져 떠난 남편이지만, 그래도 남편에 대한 미련과 사랑을 끝까지 버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남녀 사랑. 파리스는 헬레네를 사랑했지만, 파리스를 사랑한 여인은 오이오네였다. 비극적인 애증의 종말...ⓒ김문환

트로이 전쟁 10년째. 전쟁이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파트로클로스가 죽고, 이어 헥토르도 죽었다. 그리고 아킬레스도 파리스의 화살에 명을 달리하고. 마침내 파리스도 최후를 맞이하는데... 파리스의 죽음은 또하나의 경구를 떠올려 준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파리스는 활로 명성을 누린 사람이었다. 활로 디오메데스도 쏘아 맞추고, 아킬레스의 명줄도 끊었다. 활솜씨를 뽐내던 그도 결국은 활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필록테테스가 쏜 화살에 맞은 것이다. 필록테테스가 헤라클레스로부터 받은 화살에는 히드라의 독이 묻어 있었다. 한번 맞으면 누구든 그 독을 해독하지 못해 저승길로 가야했다. 아무리 용한 의사라도 상처를 치료할 수 없었다. 전투도중 필록테테스의 화살을 맞은 파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리스는 고통속에 신음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파리스는 문득 아주 오래전 첫아내 오이오네가 들려주고 떠난 말이 생각났다. "상처를 입으면 찾아오라"는 말. 파리스는 아픈 몸을 이끌고 오이노네를 찾아 이다산으로 갔다. 죽어가는 전남편 파리스. 오이오네는 비록 헤어질 때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했지만, 막상 남편이 찾아오자 냉정하게 문을 닫고 말았다. 오랜 세월 버림받은 여인으로 한을 품고 살아온 오이오네는 끝내 남편의 배신을 용서하지 못했던 것이다. 파리스는 헛걸음 치고 트로이로 돌아와 죽음을 기다렸고, 마침내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문제는 오이오네. 파리스를 보낸 뒤 괴로워하던 그녀는 마음을 고쳐 먹고 치료를 위해 트로이로 달려갔다. 그러나, 한발 늦어 이미 파리스가 숨을 거둔 뒤였다. 오이노네는 자책감에 목을 매 자살했다는 설과 파리스를 화장할 때 장작불에 뛰어들어 명을 다했다는 설도 전한다. 파리스가 사랑한 여인은 헬레네였지만, 파리스를 사랑한 여인은 오이오네였다. 얽히고 설키는 남녀간 애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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