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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 안하면 살 수가 없었다"

<8뉴스>

<앵커>

일본의 이런 억지에 창씨개명을 직접 당한 어른들은 그저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인류역사상 비슷한 사례조차 찾기 힘든 민족말살 정책인 창씨개명의 실태를.

조지현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기자>

일제의 압제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940년, 조선총독부는 모든 조선인에게 일본식 '성씨'를 결정해 제출하라고 명령합니다.

당시 친일 문인 이광수는 매일신문에 창씨가 천황의 신민이 되는 길이며, 일본인과 차별을 없애는 방법이라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일본은 이 글을 근거로 조선이 창씨개명을 원했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신주백/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 :  이광수의 창씨개명은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가 일본의 미래와 같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수없이 많은 조선인이 창씨개명을 거부했고 갖가지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이원희(70) : 창씨개명에 불응하면 부역이라던가 배급 등에 불이익을 받고...심한 수색이 들어왔다.]

[양재홍(72) : 요주의 인물로 항상 감시를 받았다.]

창씨하지 않은 사람은 학교에 갈 수가 없었고 행정기관을 이용할 수도, 관청에서 일할 수도 없었으며 감시 대상, 징용의 우선 대상이 되고 배급에서 제외됐습니다.

[안병우/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 일본이 점차 지배를 강화해 나갔고 그것은 곧 한국 사람을 일본의 신민으로 만드는 황국신민화 과정이었다.]

당시 창씨개명으로 이름을 빼앗긴 조선인은 전체의 80%인 322만 가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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