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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에 대한 비판은 어렵다

바로 앞 글에서 저는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 특히 집권 여당의 불만은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법부에 대한 저의 불만 하나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바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늑

바로 앞 글에서 저는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 특히 집권 여당의 불만은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법부에 대한 저의 불만 하나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바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늑장 처리입니다.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요, 지난 월요일에 서울중앙지법 형사 합의 25부는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 박노빈 씨에 대한 판결 선고를 하지 않고 오히려 변론을 재개한다고 밝혔습니다.

변론 재개를 하는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며칠 전 변호인측이 비상장 주식의 가격 산정을 둘러싼 회사에 대한 손해 여부에 대해서는'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는 일본 지방법원 판례를 제출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기소 내용인데 손해를 끼쳤는지에 대해 엄격한 증명을 해야 한다면 심리를 더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60년대 일본 지방법원 판례가 선고 연기의 계기

원래 지난 2일에 선고를 하겠다고 한 차례 기일을 잡았다가 연기를 했었고 두번째 선고 연기인데, 이번에는 아예 선고 연기 수준이 아니라 변론을 재개한다고 했으니 심리를 더 한 뒤 다시 선고 날짜를 잡겠다는 얘기가 됩니다. 당연히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재판은 장기화될 것이고 특히 재판장인 이현승 부장판사가 다음주의 법관 정기 인사이동에서 다른 재판부로 옮길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사건 처리가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실제로 다음날 발표된 법관 인사에서 이현승 부장은 아예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법원을 옮겨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새로 임명된 재판장이 부임한 뒤 여러 다른 사건들과 함께 기록을 처음부터 검토한 뒤 새롭게 제기된 쟁점을 검토해야만 심리 종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저희 법조팀은 현재 6명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그날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을 논의합니다. 그날은 11시에 있었던 에버랜드 사건이 주로 화제가 됐습니다. 이 기사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었죠.

"장기간 심리 해놓고 인사 앞두고 선고 연기는 무책임" 의견

저는 이런 의견을 냈습니다.

"먼저 이 사건 재판과 관련해서는 2003년 12월 초에 기소가 된 뒤 지난해 3월 하순이 되어서야 첫 공판이 열렸다는 점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물론 불구속 사건이기는 하지만 한동안 기일도 잡지 않고 처리가 지연되면서 많은 억측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1년 동안 10여 차례 재판을 열심히 했고 재판부가 스스로 심리를 종결하고 판결 선고 기일까지 잡았다가 두번씩이나 연기를 했다. 특히 재판부가 판결문 초고까지 썼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막판에 제시된 일본 하급심 판례, 그것도 60년대 판례가 그렇게 심리를 다시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인사를 앞두고 선고를 연기하면 결국 사건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점도 무책임하다고 볼 수 있지 않는가. 따라서 이런 문제를 기사에서 짚어줄 필요가 있다."

"형사재판에서는 실체적 진실 발견 위한 노력 인정해야" 지적도

대체로 의견들이 일치했지만 이런 지적도 있었습니다.

"재판부 입장에서는 형사 사건에서 심리가 미진하다고 생각되면 선고 직전에라도 심리를 재개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래서 형사 사건에서는 선고 직전에라도 새로운 주장이나 증거를 제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재판부가 2달에 3번 정도 계속 재판 기일을 잡으면서 열심히 사건을 심리해 왔다. 그러고도 왜 선고 못하느냐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 선고를 지금 왜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논리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지요. 실체적 진실 발견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목표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제출된 증거만 가지고 판단하는 민사재판과는 달리 형사재판에서 판사는 실체적 진실을 파헤칠 임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이런 의문도 제기됐습니다.

"재판부가 10여 차례나 재판을 열고 심리를 열심히 했다는데, 일반 사건에서도 그렇게 하느냐. 삼성이 관련된 사건이라고 해서 그렇게 열심히 하고, 막판에 60년대 일본 판례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관심을 가지면서 완벽을 기하려는 것은 과잉이고 형평에 맞지 않다. 사건의 비중이라는 것이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개별 사건은 하나 하나가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판사가 사건의 비중 때문에 사건 심리의 정도에서 차별을 두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점도 거꾸로 비판할 부분이다."

참여연대도 성명 안 내려다 뒤늦게 발표 해프닝

글쎄요, 여러분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사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도 처음에는 성명을 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심리가 부족해서 더 하겠다는데 어떻게 비판을 하느냐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 재판장이 이번 인사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국 비판 성명을 냈습니다.결국 막판까지 고민을 거듭하다 저희 8시 뉴스에서는 기본적인 사건 내용과 선고 연기, 그리고 그러한 선고 연기의 문제점을 모두 짚어주는 식으로 정리가 됐습니다.

신속한 재판과 정확한 재판은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형평성도 중요하죠. 기자들도 "오보하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설치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조심하게 됩니다만 모든 기사를 조심해서, 신중하게 확인해서 써야겠죠.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사건 하나하나가 당사자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법원에서도 감안해 줬으면 합니다. 어쨌든, 사법부에 대한 비판 기사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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