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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 - 현대사와 삐딱한 대면

설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이달 들어 인터넷 뉴스팀에서 정치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기자생활 10여년만에 처음 출입하는 곳이라 다소 생소해서 처음 12주는 적응하는데 애 좀 먹었습니다. 바빠진 일정 때문

설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이달 들어 인터넷 뉴스팀에서 정치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기자생활 10여년만에 처음 출입하는 곳이라 다소 생소해서 처음 1-2주는 적응하는데 애 좀 먹었습니다. 바빠진 일정 때문에 이전만큼 자주 영화를 보고 글을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짬나는대로 틈틈이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고 서거한 10.26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예민한 현대사를 다루기 때문에 극도의 보안 속에 제작되다가 개봉 임박해서 영화 제작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요소가 있다며 박지만씨가 이 영화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고, 법원은 영화 앞과 뒤에 쓰인 다큐멘터리 부분을 삭제하고 상영하라는 판결을 내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또 정치권에서 특정인사 죽이기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비난하고 나서는 등 영화 외적인 차원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박지만씨의 소송과 정치권의 논란이 오히려 영화 홍보에 막대한 도움이 됐다고 분석하기도 하더군요.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설 연휴기간에 찾은 극장에는 평소에는 보기 힘든 중년 세대의 관객층이 많더군요.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경험했던 세대로서 영화가 궁금해서 찾은 것 같았습니다.

영화는 그날의 상황을 시간 순서대로 전개합니다. 헬기를 타고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박 대통령(송재호), 시국에 대한 온건론으로 경호실장과 갈등관계에 놓인 김 부장(백윤식)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어 의사에게서 그만두고 쉬라는 권유까지 받습니다. 김부장의 오른팔인 주과장(한석규)은 심기를 건드리는 한 모녀를 혼쭐을 내주고나니 궁정동 안가에서 대통령의 만찬이 벌어진다는 통보를 받고 짜증을 내며 술자리 시중을 들 여가수와 여대생을 데려오는 등 준비에 들어갑니다. 김부장은 주과장과 자신의 비서인 민대령을 불러놓고 거사 계획을 알리고 만찬장에서 "야수의 심정"으로 총을 쏩니다.

감독은 그날의 상황을 상상력을 발휘해 재구성하고 나레이션을 통해 다소 냉소적으로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 뒷부분에 거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종말을 설명하면서는 냉소가 너무 지나쳐 인물과 역사를 함부로 평가해 버리는 오류를 범합니다. 조금만 더 자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모 신문의 리뷰에서 바로 이런 부분을 두고 "역사에 대해 무책임하고 버릇없는 해석"이라고 표현한 것 같은데 영화적 상상력을 감안한다면 그렇게까지 혹평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입니다.

이 영화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은 사건의 줄거리 전개보다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실을 천천히 훑는 카메라나 총탄이 난무한 뒤 안가 구석 구석을 위에서 바라보는 장면에서 당시 시대의 암울한 자화상과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거사가 치뤄진 후 혼란한 상황에서 주 과장이 한 밤중에 텅빈 광화문 도심을 질주하는 장면의 상징성은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으로 꼽힙니다.

소재에 대한 블랙코미디로 접근했다고 감독은 제작의 변에서 밝히고 있는데, 일상적인 대사를 통해 권력의 비도덕성을 드러내 보여주고 거사 직후 국방부의 위병이 양복입은 참모총장을 못 알아보고 들여보내주지 않는다거나, 김 부장을 잡기 위해 나선 군인들이 실탄이 없어 허둥대는 모습, 비상국무회의에서 우왕좌왕하는 관료들의 모습은 거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 역사적 의미와 무게를 모른채 비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해석만큼이나 냉소적이지만 시스템의 부재를 적절하게 지적합니다.

중견배우 백윤식씨는 한석규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TV 드라마에서 콤비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각각 뛰어난 연기력과 조화를 보여줍니다. 특히 넘버3 이후 진지하고 심각한 역할로 틀이 굳어지는듯 했던 한석규는 이 영화에서는 오래간만에 거친 캐릭터로 등장해 생동감있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세트와 미장센은 권위적이고 어두운 시대상을 비교적 잘 표현해주고 있고, 각각의 조연들도 묵직한 무게로 영화를 떠받칩니다.

우리 사회에 꾸준히 제기되는 박정희 신드롬에 대해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독재는 했지만 그래도 이만큼 잘먹고 잘살게 해주지 않았느냐"는 논리를 펼칩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터져나오는 여러 갈등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럽고 경제는 더디게 발전하거나 퇴보하는 모습에서 그 시절의 일사분란한 모습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후의 혼란과 갈등의 뿌리는 이미 그 시절부터 제때 제때 해결되지 못하고 억눌려왔고 경제발전과 호응하지 못하다가 한꺼번에 터지는 바람에 그 후유증이 더 크다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과 놀라운 경제 발전의 성과는 박정희 대통령과 몇몇의 정부 관료, 기업인들만이 이끈 것이 아니라 평생 인권과 노동자의 권리같은 개념조차 모른채 값싼 임금을 받으면서 묵묵히 일해온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 더 크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고 그런 의미에서 가까운 현대사에서 논란이 되는 한 대목을 정면으로 파고 들어가 한편의 작품으로 풀어낸 감독의 용기 능력에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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