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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한석규'하면 9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끈 굵직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톱 클래스의 반열에 올랐다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10여년전 [서울의 달]이라는 주말 드라마에서 출세에 눈이 멀어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고 능글 능글하게 굴지만 왠지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하며 일약 스타로 부상했고, 코믹물 [닥터 봉]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인 [초록 물고기],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 일종의 신드롬까지 불러일으켰던 조폭 영화의 걸작 [넘버 3], 신세대 멜로인 [접속],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자리매김한 [쉬리]를 비롯해 [8월의 크리스마스], [텔 미 썸딩]을 통해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3년의 긴 휴식끝에 [이중간첩]으로 스크린에 돌아왔지만 흥행에서 참패해 '이제 한석규의 시대는 간 거 아니냐'는 섣부른 예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뒤 메이저 배급사의 투자를 받고 자신의 친형이 만든 제작사의 이름으로 [소금인형] 촬영을 시작했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만 엎어지는 바람에 이런 예측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주홍글씨]라는 신작을 통해 관객을 만나게 됐습니다. 사실 자기 관리에 너무 충실해서 작품 고르는 입맛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그이기에 그가 출연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슈가 되곤 합니다. 두루 두루 잘 나가는 강력반 형사경찰대를 졸업한 강력반장 기훈(한석규)은 일에서나 가정에서나 남부러울 것 없어 보입니다. 첼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어여쁜 아내 수현(엄지원)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까지 갖게 됐고, 째즈바에서 노래하는 가희(이은주)를 정부로 두고 아슬아슬한 불륜 행각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느날 사진 스튜디오에서 주인 남자가 끔찍하게 살해된 사건이 그에게 맡겨집니다. 기훈은 직감적으로 피해자의 아내 경희(성현아)를 유력한 용의자로 점찍고 공격적인 수사를 벌입니다. 예상했던대로 경희는 남편 이름으로 거액의 보험을 들어두었고, 사진 작가인 남자와 누드사진을 찍는 등 애정 행각을 벌였고 남편과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여러차례 지우기까지 하는 등 정상적인 부부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뜻하지 않은 암초에 부딪히면서 생각했던 것 만큼 쉽게 풀리지 않고 알듯 모를듯한 신비로움을 간직한 경희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기훈은 아내의 임신을 계기로 가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시도합니다. 전화를 걸어오면 냉랭하게 대해보기도 하지만 가희의 치명적인 매혹의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가희도 아기를 갖게 되고 병원에서 아내가 이미 임신중절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등안팎으로 일이 꼬이게 되자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합니다. 그런 기훈과 가희에게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그들 사이의 풀리지 않던 비밀의 매듭이 밝혀집니다. 욕망의 해부...권선징악(?)영화 [주홍글씨]는 요즘 문단의 촉망받는 작가 김영하의 단편 소설 두 편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 내면의 어두운 욕망과 유혹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작가입니다. 공인된 생활과 사생활 모두를 가지려는 욕망을 가진 기훈을 통해 인간이 갖고 있는 유혹에 대한 욕구와 그에 따른 파멸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 기훈은 영화 속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주체로 활약하지만 관객에게는 비열한 삼각관계의 한 가운데에 놓인채 고민하고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에서 관객들은 의문의 살인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미스터리 형사물의 고정 관념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명쾌한 사건 해결을 통해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그 고정관념의 틀로 보면 다소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감독의 관심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악한 본성, 그것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감추어지는지에 맞춰져있는 듯 합니다. 재능이 빛을 발하다[호모 비디오쿠스]라는 단편 영화로 재능을 보여준 바 있는 변혁 감독은 [인터뷰]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인 이번 영화에서 독창적인 영화적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배경과 소품에서 등장인물로 훑어나가는 부드러운 카메라의 움직임은 세련된 스타일을 느끼게 해주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때 편집의 기술은 마치 자연스런 마술을 보는 듯 합니다. 기훈이 사건현장으로 차를 몰고 갈때 장엄한 오페라 음악에 맞춰 물 흐르듯 따라가는 카메라나 정부 가희의 집에서 화끈한 정사를 벌인 뒤 침대에 눕는 장면에서 아내의 옆자리로 바뀌는 장면 등에서 그 실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희의 3층 구조로 된 오피스텔의 특이함과 사건 현장인 사진 스튜디오의 고전적인 장식물들, 행복의 보금자리 처럼 꾸며진 기훈의 집 내부등의 미술과 소품도 각각의 성격에 딱 맞는 듯합니다. 주인공 한석규는 직장인 경찰로서는 냉철함을 보여주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의 남편으로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모습을, 가희의 정부로서는 욕망 덩어리의 모습등 한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한 영화에서 보여줍니다. 거울 앞에서 악마같은 표정을 지어보인다거나 용의자의 머리통을 서류철로 후려치거나, 심지어는 용의자의 얼굴을 혀로 만지는 장면 등을 통해 언뜻 드러나는 악마적 본성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경찰이 된 이유'나 '반장님! 시키실 일 없습니까'에 대한 대답, 알리바이에 대한 TV 프로그램에 대한 조사 부분에서 헛헛한 웃음을 느끼게도 해줍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가희역의 이은주나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성현아, 겉보기에는 천사같은 아내이지만 깊은 비밀을 간직한 모습의 엄지원도 이런 한석규의 연기와 호흡을 잘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마지막 결말 부분인 트렁크 속에서의 장면은 감정의 폭발과 인간 밑바닥의 추악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치 [올드 보이]의 마지막 장면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데 둘 다 같이 입맛이 떨어질 정도로 불쾌하기는 하지만 [주홍글씨]에서는 폭발할 듯한 에너지보다는 불쾌감이 더 앞섭니다. 트렁크 장면이 등장하는 부분이 뜬금없다고 느낀다면 이 불쾌감은 어이없음이나 짜증으로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부분에서 다소 '오바'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욕망과 탐욕의 결말에 대한 씁쓸한 맛이라면 족할 듯한데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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