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국회에서 열린 MBC 주최 국회의원 마라톤 대회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조승수 의원이 1등을 했는데, 조 의원이 다음날 민주노동당 당원 게시판에 '1등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정치적 이유'를 올렸습니다.
그 전체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주 정치적인 마라톤" - 조승수 -
희망한국”이라는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사실 2.5km달리기를 마라톤이라 하기에는 이상하지만 당내 의원 중에서 아무도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뛰기로 당론(?)으로 결정되었다. 나머지 의원들은 나에게 “나가서 1등해 버려요”, “그럼 할수 있지, 그깟 2.5km 쯤이야” 웃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사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뛰는 건 좋았지만 2.5km라는 거리도 맘에 들지 않았고 방송사가 하는 행사란 늘 그렇고 그런식이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절대 안할거야’라는 단호한 의지로 나를 압박해 오는 아홉분의 합동작전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9시 10분까지 오라는 사전통보에 맞춰 행사장에 갔지만 10시가 지나도록 노래 공연등 행사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바람에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심신은 축 늘어져 갔다. 어제 저녁 울산에서 올라온 친구와 새벽1시가 넘도록 술을 마신 탓에 목은 타들어가고 한마디로 달리고 싶은 몸도 마음도 아니었다.
그런데 방송사의 진행 내용에 나는 열을 받아가고 있었다. 국회의원 70여명을 가나다 순으로 앉혀 놓은 것은 합리적이라 생각했지만 김혜경대표님 자리가 민주당옆에 그러니까 4번째좌석에 모시는 것 아닌가, 또 사회자가 각당의 의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민주노동당만 쏙 빼고 진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머리위의 뜨거운 태양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내 가슴속에서 올라 왔다.
어쨌든 10시 15분이 지나서 징소리와 함께 출발을 했다. 1km 까지는 몸을 적응시키느라 무척 힘들었다. 최소한 10등안에는 들어야 당의 체면도 서고 나도 챙피는 당하지 않을 거라는 내심의 계산 때문에 선두권을 따라 잡느라 오바페이스를 하고 말았다. 괜히 나왔다는 후회도 스쳐가고, 그저께 오라는 권유를 마다하고 부득부득 어제 올라온 친구가 야속하기도 하고... 1차 술자리에서 취한 척 하지 못한 것도 후회도 되고...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며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1.5km를 지나면서 숨은 턱에까지 차오면서 고통이 온몸으로 쩌릿쩌릿 번져나가고 있었다. 이 순간 나를 휙하니 추월하는 사람을 보니 H당의 W의원(원희룡 의원일 겁니다)이었다. 어느 잡지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몇 번인가를 완주한 나보다 젊은 W의원.
아까 사회자와 인터뷰 하면서 “오늘은 상생의 정치를 위해 등수보다도 여.야의원들과 즐기면서 함께 뛰겠다”며 박수를 받은 W의원이 나 만큼이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서가고 있었다.
이 순간 10여초 동안 몇 가지 고민을 했다.
‘내가 10여명의 선두권에 속해 있는데 W의원이 나를 추월하는 걸로 봐서는 W의원 말고는 국회의원중에 우리 앞에는 없을 것이다. 그럼 W의원만 따라 잡으면 내가 1등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1등을 하면 인터뷰를 할것이고 그러면 민주노동당 의원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다’
‘그런데 내가 W의원을 따라 잡을 수 있을까? 둘이 경쟁을 하게되면 그렇지 않아도 오바폐이스로 힘든데 괜찮을까? W의원이 계속 경쟁적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하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결론은 내려졌다.
거리는 약 500M쯤 남은 걸로 보였다. W의원을 추월하고 계속 달렸다. 호흡은 거칠다 못해 증기기관차 소리가 들렸다. 오직 달리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100M 전방, 내 눈에 흰테이프가 들어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모자를 벗고 “이라크 파병 반대”를 외치며 마지막 전력 질주를 했다. 김혜경 대표님이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웃으시는 걸 보면서 테이프를 가슴으로 밀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바로 들이 댄다.
“1등소감은?”-“거대 양당에 의해 공전되고 있는 현재의 국회 상황에 분노와 항의를 가슴에 담고 뛰었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하십니까”-“하프코스를 두 번 달려는데 최근에는 선거 때문에 못 뛰었습니다.”
뒤에 들어온 W의원에게 악수를 청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아직 호흡이 거칠고 진정이 안된 상태라 미안하다는 내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반성한다. 그리고 기대한다. 다시는 신성한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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