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용천이 고향인 실향민들, 또 최근에 그곳을 빠져나온 탈북자들, 요 며칠 가족들, 또 친구들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김범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열일곱살때인 지난 1947년, 형님만 남겨두고 용천을 떠난 실향민 74살 조경하씨.
2년전 중국 단둥에서 어렵게 재회한 형수와 병 때문에 만나지 못했던 형 걱정에 설움이 북받칩니다.
[조경하/명예 용천군수 : 이분이 우리 형수입니다, 이분이. 형수님도 형수님이지만 형님은 한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는데...]
북쪽이 피해자 명단이라도 속시원히 밝혀주면 좋겠지만, 안되면 직접 중국까지 갈 작정입니다.
[조경하 : 단둥에 가면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을 줘서라도 북한에 들어가서 생사를 직접 확인할겁니다.]
지난 98년 입국한 탈북자 천 모씨도 두 딸 걱정에 지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이뤘습니다.
[천모 씨/탈북자 : 읍내에 두 딸이 살고 있어요, 생사여부도 알 수 없고 참 ..]
김정흠 고려대 명예교수는 참혹하게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에 한달음에 달려가고픈 마음 뿐입니다.
[김정흠/고려대 명예 교수 : 한마디로 비참하죠. 근데 통일이 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달려가서 위로도 할 수 있고, 그런데 그럴 수 없잖아요. ]
소학교를 용천에서 다닌 이시윤 전 감사원장은 많은 국민들이 고향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시윤/전 감사원장 : 우리고장, 내 고장이 하루 속히 피해복구가 되어서 다시 평화로운 마을로 돌아갈 수 있기를...]
몸은 떠나도 마음은 남은 실향민과 탈북자들의 심정은 오늘도 타들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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