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심판이 특종할 성격의 사건입니까?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다른데 신경쓰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29일 출근길에 이번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을 맡고 있는 주선회 헌법재판관이 격노했습니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사상 초유인 만큼 언론의 관심도 그 어느때보다 뜨겁습니다. 헌법재판소도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나름대로 취재협조에 잘 응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매일 출근길에 윤영철 헌법재판소장과 주선회 주심 재판관이,그리고 공보담당연구관이 하루에 한두번 브리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주 재판관이 주심인데다 검찰 출신이기 때문에, 가장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 재판관이 이날 출근길엔 왠일인지 시큰둥한 얼굴을 하더니, 갑자기 방송사 카메라를 거둬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다소 격앙된 분위기로 출근길을 기다리던 20여명의 취재진을 '차렷' 자세로 세워놓고 일장 훈시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훈시의 배경에는 모 일간지의 헌법재판소 관련 기사가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의 기사였는 지 한번 볼까요?
-----
[[[헌재 결정 오래 안끌 듯]]]
"탄핵 사유 연구해보니 의외로 단순"
... 전략
헌재의 한 관계자는 26일 "그동안 수집된 해외 사례와 헌법학자들의 연구결과 등을 검토한 결과 사건이 의외로 단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헌재는 국회의 탄핵 소추가 대통령 탄핵 사유에 해당되는지를 판단하면 돼 시간을 오래 끌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중략
헌재가 증거 조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점도 헌재의 결정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 같다.
헌재 관계자는 "소추위원이 증거조사를 요구해도 재판부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고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사안의 중대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증거조사 요구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하략
------
간략하게 요약하면, 헌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탄핵심판 사건이 의외로 단순하고, 소추위원측 증거조사를 차단할 수 있어 헌재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기사가 보도되자, 헌법재판소 기자실은 내용의 진위를 확인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헌재 결정이 언제 날 것이네...증거 조사를 받아들이네 마네..."라는 내용의 기사가 줄을 잇게됐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확산되자, 주선회 재판관이 긴급 진화에 나섰습니다.
주선회 재판관은 "이번 사건에 취재경쟁이 시작되면 곤란하다. 검찰 수사속보도 아니고,
절차에 관한 문제는 이미 충분히 얘기를 했는데.."라고 운을 뗐습니다.
주재판관은 이어 "헌재의 공식 발표외에 취재를 해서 이런 기사를 쓰면 일반 국민들은 이것을 믿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어느날은 헌재 결정을 빨리 끝낸다고 하고,어느날은 간단히 끝낼 문제가 아니라고 하고, 이렇게 되면 헌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며줄줄이 말을 이어갔지요.
주재판관은 훈시는 쉬지도 않고 계속됐습니다.
"1차 변론일이 시작도 안됐는데, 2차 변론일 언제로 할 것인지를 묻질 않나, 증거 신청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증거 신청 받아들일거냐, 안받아들일거냐라고 묻는다면 내가 어떻게 답해야 합니까.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문제 아닌가요?"
한참을 격노해있던 주재판관이 마지막에는 차렷 자세로 서 있는 기자들에게 간곡히 부탁까지 하더군요.
"국가적 중대사입니다. 신문 칼럼에서도 쓰고 그러지 않습니까. 헌재의 심판 기다리자구요. 헌법재판관들 일 좀 하게 해 주세요. 이런 식으로 언론 신경쓰다보면 저희 재판관들 일 못합니다. 우리가 머리 맑게해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다른 재판관분들도 고민이 많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한참을 경청하고 있던 기자들은 멍한 상태에서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온 듯 했습니다.
한번도 겪어본적이 없던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기자들로서는 정말 일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주요한 사건이지요. 하지만, 국가 중대사를 기자 특유의 속보 심리때문에, '처녀에게 아들낳으라'고 보챈 건 아닌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