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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 이박사` 이야기

"'뽕짝'은 남자와 여자다, 뽕짝은 하늘과 땅이다, 뽕짝은 조화가 생명이다. '뽕'만 있으면 음악이 안된다, '짝'도 있어야 한다. 반대로 '짝'만 있어도 안된다. 반드시 둘이 같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음악이다. "

이것은 '신바람 이박사'라는 가수의 이른바 뽕짝 철학입니다. 오늘 제가 취재한 사람이지요. '이박사'는 물론 진짜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노래를 박사처럼 많이 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지요. 올해 47살. 원래 관광버스 가이드로 시작했습니다. 가이드를 하다보니, 승객들이 심심해하지 않게 노래를 부르게 됐고, 그 노래가 하도 재미있어서 유명해지고, 그러다 보니 1989년부터는 테이프도 녹음해 팔게 됐고, 또 그러다 보니, 일본에까지 진출하게 된 사람입니다.

'신바람 이박사 뽕짝 디스코 메들리' 뭐 이런 재미나는 제목의 테이프는 웬만한 관광버스 운전기사면 다 몇 개씩 가지고 있는 베스트 셀러라고 합니다. 이런 음악은 주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많이 팔리는데, 쿵짝 쿵짝 하는 리듬에 맞춰 수많은 노래를 쉬지 않고 메들리로 부릅니다. 거기다 이박사는 아싸! 우루루루루루루! 후이! 좋다! 오케이! 등등 독특한 추임새를 애드립으로 넣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1995년. 독특한 음악을 찾고 있던 일본의 한 음반사 관계자 눈에 띄어 일본에 진출합니다. 이후, 자신도 놀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끕니다. 조금은 장난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유치하게도 들리는 이 음악에 일본인들이 열광했으니까요. 한국어로 그대로 부르는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느라 한국어를 새로 배우는 사람들도 생겼고, 팬클럽도 여기저기서 결성됐습니다. 방송과 광고에도 많이 출연했고, 공연도 가졌습니다.

그러다 속도가 빠른 그의 뽕짝은 테크노의 원조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일본의 인기가수 덴키 그루브와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테크노 음악과 결합한 그의 노래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굴지의 음반사인 소니뮤직의 전속 가수가 됐습니다.

이제 그는 그간의 일본 활동을 일단 접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요 몇 달 사이, 그는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스타가 돼있었습니다. 인터넷과 MP3 덕분이었죠. 일본내 팬클럽 회원들이 올린 노래들을 한국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국내에서 그의 음반이 나오기도 전부터, '테크노 뽕짝'에 매료된 젊은이들이 늘어갔습니다.

국내의 테크노 뮤지션과 함께 만든 음반은 현재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이박사'를 '박사님'으로 부르면서 절대적인 호응을 보내고 있는 젊은 팬클럽 덕분입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박사 팬클럽은 이미 공식 회원만 7천5백명이 넘었습니다. 오늘 제가 만난 한 회원의 말에 따르면, 한일 양국에서 친숙한 이박사 노래를 2002년 월드컵송으로 지정하자는 운동까지 벌이고 있답니다. 이미 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고 합니다.

오늘 저는 이박사를 취재하면서 참 낙천적이고 유쾌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키가 크지 않고 삐쩍 마른 체격입니다. 마흔 일곱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가 무색하게 신세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화려한 원색의 옷을 입었습니다. 초록색으로 부분 염색한 머리가 어색하지 않았고요. 인터뷰하면서 보니까, 젊은이들의 감각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용하는 어휘('키치'라는 단어를 굉장히 자주 쓰더군요)라든지, 말투를 보니 그랬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박사의 노래가 인기를 끄는 걸까요. 무엇이 요즘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 걸까요. 오늘 제가 인터뷰한 팬클럽 회원은 '이박사의 노래에는 중독성이 있다. 한번 이 노래를 들으면 다른 노래 듣는 게 싱겁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왔던 '뽕짝'의 리듬과 요즘 유행하는 테크노 음악이 절묘하게 결합해서, 새로운 것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는 게 큰 매력일 겁니다. 오늘 제가 들어보니, 장난스럽고 조금 유치하게도 들리지만, 일단 들으면 신이 나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요. 가창력이나 음악성을 따지기 이전에 말이죠. 이박사는 '뽕짝'이 저질이라는 일부의 평에 대해서 어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제 질문에 앞서 쓴 '뽕짝 철학'을 풀어보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뽕짝은 영원한 거야. 뭐, 팝송이니, 랩이니, 힙합이니, 이런 것들, 모두 한때 유행이라고요. 뽕짝은 안 변해. 아, 젓가락 들고 두드리면 그게 바로 뽕짝이라고, 그걸 모르고 서양 것만 좋다 하고 뽕짝은 저질이라고 그래"

어떻게 보면 그의 뽕짝은 여기서 또 하나의 '신상품'입니다. 그의 뽕짝은 옛날 어른들이 듣던 뽕짝과는 다릅니다. 젊은이들은 그의 음악을 옛날식 뽕짝도 아니고, 테크노 음악도 아닌, 새로운 음악으로 받아들입니다. 음반사는 이런 젊은이들의 기호를 재빨리 파악해 그를 새로운 '테크노 전사'(?)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새 음반의 자켓에서 스타일을 확 바꿨습니다. 예전의 밤무대풍, 약간 촌스런 의상이 아닙니다. 현대적인 느낌의 선글라스에 붉은 색 옷, 팔에는 삐쭉삐쭉한 금속성의 팔찌를 끼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박사는 오늘 제가 8시 뉴스 편집하느라 한창 바쁠 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김수현 기자? 나여" 하는데, 저는 처음에 누군지 잘 몰랐습니다. 네? 하고 반문했더니, "이박사여. 나 찍어간 거 오늘 나가는 거유?" "아, 네, 오늘 나가요. 지금 편집하고 있어요" "아이고,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언니"

전화를 끊는데,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언니라는 호칭에도 웃음이 나왔고, 그냥 말만 들어도 재미있었습니다. 마침 편집하느라 틀어놨던 이박사의 노래와 어울려서 더욱 그랬죠. 저는 '신바람 이박사 뽕짝 디스코 메들리'에 맞춰 관광버스 안에서 춤춰본 적도 없고, 요즘 젊은이들의 테크노 열풍에도 심드렁하니, 이박사 노래의 매력이 뭐겠느냐고 하면 이렇게 말하고 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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