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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10살 소녀도 계약 매춘부" 주장하는 램지어…경제학자들까지 '반박 연판장'

[월드리포트] "10살 소녀도 계약 매춘부" 주장하는 램지어…경제학자들까지 '반박 연판장'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21.02.24 15:04 수정 2021.02.26 16: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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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살 소녀의 비극까지 '매춘 계약'으로 활용한 램지어

위안부 피해자들을 자발적인 매춘부로 규정한 램지어 하버드 법대 교수의 논문에는 10살 일본 소녀 오사키가 등장합니다.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고 해외 주둔 군인들을 상대하는 위안부로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여성입니다. 1970년대 일본의 케이 쿠마이 감독이 소녀 위안부의 비극적인 삶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 국제영화상을 많이 받았는데, 그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과 동일 인물입니다. 원 기록물은 야마자키 토모코라는 여성 학자가 오사키의 구술을 취재해 책으로 낸 건데, 램지어 교수는 지난 월드리포트에서 소개한 문옥주 할머니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도 자신의 논리에 맞춰 철저하게 각색했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태평양전쟁 이전 일본과 한국의 매춘이라는 소제목 밑에 소녀 위안부 오사키의 사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너무 어린 소녀를 '계약 매춘부'로 설명하고 있어, 처음 볼 때부터 불편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램지어 교수는 "오사키는 부모의 강압을 받지도 않았고, 성노예 상태도 아니었다"고 전제했습니다. 해외에 가서 일하면 300엔을 주겠다는 매춘부 모집책의 제안을 받고, "10살이었지만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알았다"고 기재해놨습니다. 하지만 별 근거도 없이 모집책은 "그녀를 속이려 하지 않았다"며 선량한 사람으로 묘사해놨습니다. 말레이시아에 가는 것이 오사키가 집에서 버려진 아이로 있는 것보다는 괜찮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오사키는 실제 13살부터 가족을 위해 매춘부 일을 시작했다고 기술돼 있습니다.

김수형 취파용
● 美 경제학자들 "10살 아이가 성노동자 되는데 동의할 수 있냐?"

이번에 램지어 논문에 분노한 경제학자들의 연판장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게 이 오사키 사례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램지어의 근거 없는 설명과 달리 "포주는 오사키를 속였다. 설사 그의 말 그대로 속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논문은 10살 아이가 성노동자가 되는데 동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이런 야만적인 상황을 감내했던 여성들을 설명하기 위해 게임 이론을 적용했고, 램지어의 논문은 학술지는 물론 경제학 종사자들에게도 오명을 남겼다고 분노했습니다.

오사키 얘기는 지난번 월드리포트에서 언급했던 에이미 스탠리 노스웨스턴대 교수를 비롯한 5인의 일본사 교수들의 팩트체크 보고서에도 상세하게 언급돼 있습니다. 학자들이 야마자키 토모코의 책을 일일이 뒤져보니 램지어의 설명과 정확히 반대로 돼 있었다고 확인했습니다. 오사키는 매춘부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포주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는 대목과 처음 충격적인 일을 겪은 상황도 보고서에는 상세히 나옵니다(Although I had some idea of what a prostitute was, no one explained it and we didn't ask. We didn't really know anything. You liar!… After our first night, she remembered, we were terrified). 램지어는 포주가 속일 의도가 없었다고 단정했지만 이마저도 오사키의 실제 진술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모집책은 외국에 따라가면 매일 흰 쌀밥을 먹고 기모노를 입으며 축제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꼬드겼습니다("If you go abroad, every day is like a festival, you can wear nice kimono, and every day you can eat as much white rice as you want"). 램지어가 무슨 근거로 오사키가 계약에 동의했다고 봤는지는 사실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매춘부가 뭔지는 알고 있었다는 원문의 진술 정도를 가지고 매춘부가 되는데 동의했다고 끼워 맞췄다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증거도 없이 매춘 계약을 꺼내 들며 이를 경제학으로 포장하려고 한 것에 대해 가장 큰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어떤 사안의 이면의 진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주장의 배경을 굉장히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전제했습니다. 하지만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서는 허가증을 가진 포주들이 일본에 있었다는 것 외에는 적절한 사실이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어떠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위안소도 마찬가지라고 논리를 억지로 확장해 적용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계약'이라는 용어 자체가 인류 역사에서 강압과 착취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남용됐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램지어 교수는 소녀를 포함한 여성들이 별 설명도 없이 매춘 계약에 "동의했다"고 써놨는데, 1896년 이후 일본은 민법에서 20세 미만이 자기 의지로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게 해놨다고 규정했습니다. 학자들은 일본 정부가 어린이들이 맺은 계약의 효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얘기냐고 반박한 셈입니다.

김수형 취파용
● 램지어의 '깔때기 논문'…진짜 목표는 "일제의 강압은 없었다"

램지어가 10살밖에 안 된 일본 소녀가 매춘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한 것도, 조선의 소녀들이 자발적인 매춘부가 됐다고 주장한 것도 모두 목적은 한 가지였습니다. 원래 인류의 역사 초기부터 매춘부는 존재했던 거고, 그들이 게임 이론에 따라 자발적으로 최대 이익을 얻기 위해 계약을 체결한 것이니 강압이란 건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램지어 교수는 논문에 이것을 일제나 조선의 책임도 아니라고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나쁜 놈들은 '조선의 매춘부 모집책'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매춘부 모집책은 사기 칠 의도가 없었다고 전제하면서도 조선의 매춘부 모집책은 사기를 쳤다는 논리인데, 왜 일본 모집책은 선량했다고 보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결론은 '강압은 없었다'로 향하는 전형적인 깔때기 논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ote, however, what this problem was not. It was not that the government either the Korean or the Japanese government forced women into prostitution. It was not that the Japanese army worked with fraudulent recruiters. It was not even that recruiters focused on the army's comfort stations. Instead, the problem involved domestic Korean recruiters who had been tricking young women into working at brothels for decades>


경제학자들도 이 부분을 따로 소제목을 달아서 떼서 비판했습니다. 어떤 이유나 설명도 없이 갑자기 일제에 통 큰 면죄부를 줬다는 것입니다. 식민 상태의 조선은 사실 정부라는 것도 없어진 상태지만, 일제의 강압에 면죄부를 주려다 보니 램지어 교수는 논문에서 갑자기 조선의 주권을 회복시켜주는 오류까지 범했습니다. 학자들은 게임 이론 자체가 황당한 주장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며, 이 이론을 적용하려면 적어도 상호작용이 자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일전에 인터뷰했던 게임 이론 전문가였던 마이클 최 UCLA 교수도 게임 이론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일 뿐 거짓말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김수형 취파용
● 무시할 수 없는 경제학자들의 경고…학술지의 대응은?

법대 교수인 램지어가 왜 이렇게 경제학을 들먹이며 논문을 냈는지 너무나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경제학자들은 논문 철회에 얹어서, 출판 과정까지 낱낱이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려 표명'이라는 경고만 걸고 반론을 싣는 수준으로 대책을 내놓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경고했습니다.

학자들의 연판장에 서명한 학자는 현재 578명(24일 오후)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한국 대학교수들도 서명에 동참했지만, 시작 자체는 미국 대학교수들이 주축이 돼 진행된 것입니다. 잠깐 딴 일하고 클릭해보면 숫자가 계속 불어나고 있는데, 서명에 동참하는 교수들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실 이들은 램지어 논문이 실릴 예정인 국제 법경제 리뷰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자 필진이기도 합니다(역사학자들은 이 학술지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다는 분도 많았습니다).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학술지가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수형 취파용
학술지가 램지어 논문을 어떻게 철회하는지도 이번 사태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입니다. 출판을 담당하는 앤드루 데이비스 홍보 담당 부회장은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짧은 답변을 보내왔습니다(The investigation is still on-going and handled independently by the editorial team). 여러 가지 검토는 하고 있겠지만, 공식 발표는 어느 쪽으로 기우는 인상을 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지난번 보내준 답변을 보면 일단 출간이 돼도 철회 조치는 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책은 있지만 학술지가 인정 안 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학술지가 반론을 싣는 수준에서 이번 논란을 방치하고 넘어갈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닙니다. 램지어의 반론이 얼마나 정교하냐에 달렸는데, 이번 사안을 팩트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로 물타기 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하지만 이런 전망도 역사학자들이 밝혀낸 대로, 계약서 물증조차 확인 못 한 램지어 교수 논문의 치명적인 결함을 치유해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학술지가 그렇게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조치를 내린다면, 이 학술지는 학계에서 퇴출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교수님들이 많았습니다. 최대 주주인 경제학 교수들이 이리 아우성인데 학술지가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램지어의 주장과 놀랍도록 흡사한 국내 극우 인사들 주장의 근원까지 큰 충격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문건은 출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 진술은 마음대로 뒤튼 게 아닐지 곱씹어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으로 무장하고 선봉에 섰던 하버드 대표 선수가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어차피 극우 인사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팩트의 영역에서 논쟁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 착취 역사를 전복하려는 불순한 시도에 대해 얼마나 국제 학계가 분노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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