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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다시 꿈꿀 기회, 주어지고 있나요?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인-잇] 다시 꿈꿀 기회, 주어지고 있나요?

지난 8일, 또 한 편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끝났습니다. 새로운 우승자도 탄생했지요. 오디션이 범람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그게 뭐 대수냐고요? 하긴 요즘은 오디션 전성시대라는 말도 무색하니, '오디션 과잉시대'라고 하는 게 적절할까요? 노래 경연 붐을 이끌었던 슈퍼스타K가 방영되던 그 시절, 12년 뒤에도 이런 포맷이 이토록 건재할 줄 우리는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팝에서 랩으로, 랩에서 아이돌로, 그다음엔 트로트로 말이지요. 그러나 음악의 장르는 달라져도, 기본적인 포맷은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대부분 '전 국민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슬로건을 걸었지요.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야 관심도가 높아지고, 또 다양한 참가자들이 등장해야 그 속에서 캐릭터와 서사를 만들어내기 용이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흐름을 다소 비껴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싱어게인'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국민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경연이 아닙니다. 꽤 높은 진입 장벽이 있거든요. 응모 자격을 한 번 볼까요? '한 번이라도 자기 앨범을 낸 적이 있는 사람'이 그것입니다. 가수로 데뷔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문을 연 것이니,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문을 두드려 볼 수 있는 셈이지요. 그런데 이름이나 데뷔 배경은 소개하지 않고요. 1호부터 71호라고 번호를 매겨 호칭합니다. 30호 가수, 17호 가수 이렇게요. 왜 이런 독특한 포맷을 선택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 뜻(다시 노래하다)처럼 자신의 꿈을 내려놓거나, 점점 멀어져 가는 사람, 또는 재능은 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들의 한 줄 소개에서도 이러한 기획 방향은 여실히 드러납니다. '나는 올해까지만 가수다', '나는 이제는 웃고 싶은 가수다', '나는 방송국이 점점 낯설어지는 가수다', '나는 울면서도 걸어가는 가수다' 등을 보면, 그들이 살아온 시간들이 어땠을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고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조금은 예상이 되시지요? 이런 사람들에게 다시 도전하는 기회를 주는 경연인 만큼, 이 프로그램 안에서 무대의 의미는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누구나 가수를 꿈꾸고 이룰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가수라는 길에 이미 접어들었지만 그 길 위에서 더 걸어야 할까? 되돌아 가야 할까? 아니면 이젠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다시 걸어볼 만한 길임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랄까요?

물론 이 프로그램도 오디션인 만큼 누군가는 탈락하고 또 누군가는 우승했습니다. 그들 앞에 펼쳐질 삶의 형태는 분명 다르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는 적어도, 참여를 후회하지는 않을 겁니다. 한 번 꿈이 꺾였던 사람들에게 다시 무대의 희열을 느낄 시간이 주어졌다는 건, 한 번은 더 걸어볼 만한 용기가 되니까요. 참여자들이 혼신의 열정을 쏟아내는 마지막 화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싱어게인 같은 기회가 있는 사회일까? 라고요. 꿈이 없는 1020 미래세대가 30%가 넘어가는 2020년대의 한국 사회. 하지만 상담을 통해 만나본 그들의 속내는 조금 달랐습니다. 진짜 꿈이 없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꿈이 있어도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사회라는 걸 알아서. 오히려 꿈꾸다 좌절되어버린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기 더 어려운 사회라는 걸 알아서. 꿈을 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말을 담담히 전하는 청년들이 하루, 또 하루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싱어게인의 우승자, 30호 가수는 마지막 화 인터뷰에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방 안에서 나가기가 참 어려웠다고, 저 대문을 열기가 참 어려웠다고요. 이 프로그램은 자신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준 경험이라고요. 그가 말한 그 '문'은 정말로 대문일까요? 그는 정말로 집 안에만 있었던 걸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가 열지 못했던 것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 꿈을 꿀 수 있는' 용기의 문이었을 겁니다. 그런 그에게 한 번 더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바꾸어주었습니다.

실직 후 구직 지원금을 다 받을 때까지도 새로운 일터를 찾지 못해 '신 보릿고개 세대'라고 불리는 지금의 2030들. 어쩌면 그들에게도 꿈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거듭되는 무력감에, 그저 문을 열 수 없는 상태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우리 사회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30호들에게, 우리 사회는 지금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 청년들의 삶에도 다시 한 번 노래했던 프로그램 속 그 무명 가수들처럼, 다시 한 번 꿈꿀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주어지고 있는 걸까요?

 

장재열 네임카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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