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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또 기계에 끼여 숨진 노동자…유가족 기억하는 '그날'

[취재파일] 또 기계에 끼여 숨진 노동자…유가족 기억하는 '그날'

한소희 기자 han@sbs.co.kr

작성 2021.01.14 09:1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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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월 13일)은, 사흘 전 금호티앤엘에서 석탄 운송 장치를 점검하다가 숨진 정 모 씨 발인 날입니다. 동시에 그의 서른세 번째 생일입니다. 유가족들은 케이크에 33이라고 적혀 있는 숫자 초를 꽂아 그의 빈소 앞에 뒀지만, 차마 초에 불을 붙이진 못했습니다. 유가족이 기억하는 정 씨 이야기를 대신 기록했습니다. 
 

사고 당일, 정 씨 어머니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금호티앤엘 직원 : 정○○ 씨가 오늘 현장에 작업을 좀 하다가 다쳤는데 그 지금 여천 전남병원으로 가고 있거든요.
정 씨 어머니: 예? 예? 예? 어딜 다쳤어요?
금호티앤엘 직원 : 아 다리랑 좀 다쳤는데. 어머니 지금 이제 회사에서 출발하거든요." 
- 사고 당일 정 씨 어머니와 금호티앤엘 직원 통화 녹음 - 

다리를 좀 다쳤다던 아들을 병원에서 만났을 때, 아들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부모로서 자식 그런 자식을 쳐다보는 게 하늘에서 벼락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래서 내가 참 말문이 막혀서 말을 할 수가 없었어. 그렇게 해서 다른 병원을 가보려고 해도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망자를 데리고 여기저기를 다닌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거야." 
- 정 씨 아버지 인터뷰 中- 

일요일이었던 사고 당일, 저녁 6시 반 집을 떠나던 아들에게 주말인데 출근하느냐고 묻자 아들은 짧게, 어쩔 수 없다고만 대답했습니다. 

유난히도 힘든 내색을 안 했던 아들. 

"자기도 공무원 시험 칠 끼라고 서울에 가서 몇 개월씩 근 1년 동안을 버티면서 광주로 갔다가 서울로 갔다가 이렇게 해서 시험을 쳐본들 뭐 칠 때마다 떨어지고 하니까. 더는 부모한테 보기도 민망스럽고 하니까. 자기가 친구 소개로 해서 찾아 들어간 직장이 이제 그 긴데. 부모한텐 힘들다고 말을 할 수가 없지. 그게 안타깝지"
- 정 씨 아버지 인터뷰 中- 

정 씨 부모님은 아들 일터가 어떤지, 사고 이후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금호 티앤엘 사고 현장
석탄 가루가 흩날리는 계단을 한참 내려가고 나서야 나온 작업장. 키 182cm 아들은, 가로 90cm, 세로 90cm밖에 안 되는 석탄 운송 장치 안으로 들어가 허리를 숙이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아예 누워서 작업했습니다. 좁고 밀폐돼 숨조차 쉬기 어려운 곳에서 기계 안에 있는 부품을 살피거나 교체해온 겁니다. 

또 2018년 금호티앤엘에서 숨졌다던 다른 노동자 역시, 금호티앤엘 소속 직원이 아닌 정 씨와 같은 A 협력업체 직원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비단 우리 아들내미 혼자뿐 아니라 2년 전에도 꼭 같은 일이 생겼어. 그러면 뭔가 개선이 되는 게 있어야 될 것 아닌가. 내 아들은 이랬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원래 하청업체 이런 사고가 생기면 본사에선 뭐, 묻어요? 원래 이렇게 묻어 버리는 겁니까?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 사람들은 일 시켜놓고. 오더 내려놓고 일해주니까 그것만 받는 거야. 환경이 어떻든. 갑질이지."  
- 정 씨 아버지 인터뷰 中-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 아들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유는 단 한 가지.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내년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됩니다. 시행된다 하더라도 기업의 진정성 있는 태도와 열악한 노동환경의 개선 없인 정 씨 부모님의 바람이 이뤄지지 못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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