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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도박은 사회의 축소판'…불법 선물 사이트 일당 검거와 펀드 사기

[취재파일] '도박은 사회의 축소판'…불법 선물 사이트 일당 검거와 펀드 사기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작성 2020.11.22 15:1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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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에 대한 광범위한 열광은 인간과 우연의 이중적인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우연의 지위가 변함에 따라 이를 반영하여 인기있는 게임 유형도 변화해 왔다. (중략) 도박 게임들도 미묘하게 바뀌었고, 게임의 구조는 주변 세계의 더 넓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반영했다.
-거다 리스, <도박> 368p 中, 김영선 옮김

글래스고 대학 사회학 교수인 거다 리스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와 함께 존재해 온 도박을 역사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 <도박>으로 영국의 필립 에이브러햄스 사회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도박의 구조는 당대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반영해왔다'고 말합니다. 인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삶에서 '우연'이 갖는 지위와 역할을 '도박'이라는 게임의 형태로 축소화해 즐겨왔다는 겁니다. 그는 '도박'을 단순한 병리현상으로 치부하는 것보다, '도박'에 반영된 역사적ㆍ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게 보다 본질적인 접근법이라고 봅니다.

지난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강력범죄형사부는 (원지애 부장검사) 조금 특이한 형태의 사이버 도박 범죄 일당을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정식 선물거래에 필요한 증거금을 없앤 선물거래사이트를 만들어 한탕의 유혹에 빠진 개미들을 유혹한 뒤, 부정한 방식으로 결과를 조작해 수익을 챙긴 겁니다. 도박을 역사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거다 리스 교수의 접근법에 따르면, 이 일당의 범죄 행태에선 여러 가지 사회적 함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 우연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
-도박판에 들어온 선물 시장
적발된 유사 선물 사이트 거래 화면 (사진 : 서울중앙지검 제공)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통해 엄청난 손익이 오가는 선물·옵션 시장은 흔히 투기장, 도박판에 비유됩니다. 그래도 이 시장이 온전한 도박으로 취급되지 않는 건, 실물 시장과 연결고리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정식 선물 시장 참여자는 500~3,000만 원의 증거금을 내고 시장에 진입한 뒤, 선물 거래의 대상이 되는 상품의 가격을 나름대로 예측해 투자를 합니다. 물론 '우연'의 요소가 큰 영향을 미치지만, 나름의 분석과 예측 논리에 따라 투자가 이뤄집니다.

이번에 적발된 일당들은 이처럼 '우연'과 '필연' 중간 어디쯤에 있는 선물시장을 범행의 껍데기로 이용했습니다. 이들은 우선 정식 선물시장과 달리, 30만 원의 소액 증거금만 있으면 진입할 수 있는 유사 선물 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물 사이트에서의 투자 손익은 정식 선물시장에 연동해 결정된다고 홍보했습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 말을 믿고 무려 1만 명의 개미 투자자들이 사이트에서 유사 선물 거래에 참여했습니다. 일부 이용자의 경우, 정식 선물시장의 방향성을 잘 예측해 해당 사이트를 통해 꽤나 큰 수익을 올리기도 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사이버 도박 범죄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일당의 범죄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주식과 선물 옵션 분야 유명 BJ들을 통해 해당 사이트를 홍보하고, 이용자들에게 투자 방향성을 설명하며 투자를 유도한 겁니다. 글로벌 선물 시장의 흐름, 현재 취해야 할 포지션 등을 나름의 논리로 설명하는 BJ들의 방송을 보고 유사 선물 사이트에 진입한 사람들은 투자 결정을 내렸습니다. 자신이 참여한 판이 '우연'에 의해 온전히 지배되는 도박판이라기보다는, 논리와 필연의 요소가 개입되는 '투자 시장'이라고 믿게끔 한 겁니다.

● 손실은 필연…진화하는 조폭들의 범죄수익 창출
적발된 유사 선물 사이트 거래 화면 (사진 : 서울중앙지검 제공)
논리와 필연이 개입된다는 이용자들의 믿음은 일정 부분 맞았습니다. 다만 그 필연은 항상 이용자들이 돈을 잃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조사 결과 해당 유사 선물 사이트의 수익구조는, 이용자들의 거래수수료와 더불어 이용자들의 손실이 사이트의 이익으로 잡히는 형태였습니다. 이용자들이 돈을 넣은 뒤 손실을 보면 볼수록, 사이트를 개설한 범죄 일당들의 수익은 커졌습니다. 이를 위해 운영진은 섭외한 BJ들을 통해 예측되는 선물 가격 방향과 반대되는 정보를 이용자들에게 흘렸습니다. 이용자들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떠드는 BJ들의 방송을 보고 실제 선물시장 방향성과는 반대로 베팅했습니다. 개미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범죄 일당의 수익도 그만큼 커졌습니다.

금융시장 정보와 선물 거래 구조를 차용한 이 범죄 일당 뒤에는 조폭 세력이 있었습니다. 해당 범죄에 지분을 투자한 것도, 대포 계좌를 마련하고 사이트에서 배당금 등을 공급한 것도 모두 대구 지역 조폭 조직원들이었던 걸로 조사됐습니다. 과거 불법 스포츠토토나 사이버 경마 등 온전한 형태의 '사이버 도박'을 통해 수익을 올리던 조폭들이 이제는 선물 옵션 거래를 가장한, 보다 진화한 형태의 수익모델을 찾아 나선 겁니다.

●'도박은 사회의 축소판'…불법 선물사이트 일당 검거와 펀드 사기

고도 금융의 세계에서 경제 시스템은 선물과 지분의 거래, 실물 생산의 부재, 시장의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에 대한 의존 등으로 인해 갈수록 극단적인 형태의 투기적 사업의 변동 아래 놓이게 됐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서구 금융 시스템이 급속하게 거대한 카지노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을 닮아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거다 리스, <도박> 181p 中, 김영선 옮김

올 한 해, 라임과 옵티머스를 비롯한 사모펀드 사기가 줄을 이었습니다. 상시화된 글로벌 경제 위기에 이은 글로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까지. 날이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현실 세계에서 조금이나마 확실한 수익률을 찾아보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들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자산이 종이조각이 되고, 종이 조각이 황금이 되기도 하는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이들이 '확실하다'고 약속한 3~5%의 수익률은 강력한 욕망의 자극제였습니다. 그렇게 모집한 조 단위 투자금들은 약속한 곳과는 전혀 다른, 때로는 실물 경제와 전혀 관련 없는 곳들에 들어가 이리저리 돌려졌고 결국엔 증발했습니다. 금융 '시장'인 것 같았던 그곳은 실은 도박판을 더 닮아있었습니다.

글 첫머리에 언급한 책의 저자, 거다 리스는 현대의 거대하고 상품화된 도박 형태는 고도로 발달한 현대 자본주의를 닮아있다고 말합니다. '한 시대에 등장하는 도박 게임들은 사회적 삶의 축소판'이라는 그의 논지에 근거한 주장입니다. 그의 시각을 빌어 바라보자면, 유사 금융의 형태를 띤 조폭 일당들의 이번 가짜 선물사이트 범죄 요소요소는 현재 우리 금융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병리적 징후들과 닮아 있습니다. 금리가 1%인 시대에 '무역금융채권,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기초로 한 펀드니 안전히 네다섯 배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광고한 대형 금융사들. '규제 완화', '금융 선진화'의 이름표를 달고 사모펀드 감독은 완화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깜깜이였던 감독 당국. 생돈 잃은 투자자들은 '수익률 보장'을 확언한 대형 금융사 직원의 얼굴에서 범죄자와 결탁해 '선물투자 수익 보장'을 떠든 BJ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투기적 사모펀드 시장 조성을 방기한 감독 당국 또한 이 거대한 도박판의 피해자들에겐 '시장 감독자'라기보다는 가짜 선물사이트를 조성한 조폭 일당에 가까울 겁니다. '우리도 속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줄 몰랐다'는 항변은 그래서 공허합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형사부는 일단 기소중지된 대포계좌 공급책 등에 대한 추적을 계속 이어나갈 방침입니다. 흡사 정쟁을 연상케 하는 싸움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검찰에서 본연의 일인 수사와 관련해 성과를 발표한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입니다. 도박판의 모습을 한 사모펀드 시장에서 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것인지, 많은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궁금해하고 있는 점들에 대해서도 하루 빨리 진실이 드러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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