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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아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공포…'지인 능욕'

'지인 능욕' 범죄 판결문 전수 분석

[마부작침] '아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공포…'지인 능욕'
능욕.

사전에 따르면 능욕은, 남을 업신여겨 욕보이거나 혹은 여성을 강간하여 욕보인다는 뜻이다. 일상에서는 다소 생소한 이 말이, '아는 사람'을 가리키는 지인과 함께 쓰이면서, 신종 디지털 성범죄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됐다. '지인 능욕'. (주로) 여성의 사진이나 영상을 다른 사람의 나체나 성관계 사진 등과 합성·가공·편집해 성적인 모욕을 주는 범죄를 뜻한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지원한 '지인 능욕' 피해는 2018년 177건에서 2019년 417건으로 두 배 넘게 늘었고 올 상반기도 222건으로 집계됐다. 피해 지원한 사례만 이렇다는 말이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이 '지인 능욕' 범죄에 대해 우리 법원이 어떤 심판을 내렸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판결이 모든 가치의 척도는 아니나, 적어도 이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현재 갖고 있는 하나의 준거는 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지인능욕

● '지인 능욕', 기사화된 첫 사례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인 '빅카인즈'와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능욕' 성범죄에 대한 기사가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 확인했다. 2016년 6월에 첫 기사가 나왔다. 당시 일요신문은 <"지인 얼굴, 야한 사진에 합성해드림"…여성들 사이 '카톡 프사' 주의령> 기사에서 "지인 사진을 음란 사진과 합성해주는 트위터 계정이 다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 기사 이전에 언급됐던 '능욕' 범죄는 대개 일베나 워마드 같은 곳의 유명인 합성물에 대한 것들로 디지털 성범죄의 성격을 띠고 있진 않았다.

수사기관의 조치가 포함된 첫 기사는 같은 해 9월, 머니투데이의 <걸그룹 'EXID' 하니 얼굴 도용…합성전문 20대 구속>이었다. 당시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인 소라넷과 SNS 서비스 텀블러 등에서 2013년부터 여성 연예인 백 수십 명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사진 1만 여 장을 유포한 29세 남성을 경찰이 구속했다는 내용이다. 앞서 피해 연예인 13명이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는데 구속된 이 남성은 "나만 가지고 있는 사진이라는 걸 과시하려고 했다, 서버가 해외에 있어 걸릴 줄 몰랐다"라고 진술했다고 했다. 

이 남성에게 법원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을 보면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런 유형의 범행은 피해가 막대하게 발전할 수 있다", "다수 피해자가 존재하고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으며 이로 인해 피해자가 느꼈을 정신적인 모욕감과 수치심은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라면서도 "범행을 순순히 시인했다", "합성이라고 표시하거나 합성사진 게시판에 게시해 실제와 혼동 가능성이 적다" "아무 범죄 전력 없는 초범이다" 등의 이유가 형량에 반영됐다. 유명인 대상 범죄라서 관대했던 것일까, 혹은 4년 전이라서 그랬던 걸까.

● '지인 능욕' 첫 판결 결과도 집행유예

유명인 외에 진짜 '지인'에 대한 능욕은 그럼 어떠했을까.

[마부작침]은 2013년 1월 1일부터 2020년 11월 3일까지 선고된 '지인 능욕' 범죄의 판결문을 전부 살펴봤다. 법원의 판결서 인터넷 열람 제도를 활용했는데 여기서 형사 사건은 2013년 1월 1일 자부터 공개하고 있다. 즉, 이 제도에서 확인 가능한 건 최근 8년 간의 판결이다. 판결문은, 1심 기준으로 '지인 능욕', '능욕', '합성', '명예훼손' 등의 키워드로 검색한 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중 명예훼손과 음란물 유포, '형법'의 모욕과 음화 제조 죄가 적용된 것들로 찾았다. 그리고 내용을 살펴 '지인 능욕' 범죄에 해당하는지 확인했다. 총 28건이었다.(피고인이 2명인 사건이 있어 전체 피고인은 29명이다. 이하 분석은 피고인 기준으로 진행했다.)

이하 분석은 판결 자체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하고 봐야 한다. 

먼저 사건 하나를 보자.

2017년 7월 일요신문의 <음란물 합성해 뿌린 '리벤지 음란물' 제작자, 알고 보니 피해자 남사친> 기사. 동창생 9명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한 뒤 개인정보와 함께 배포·판매한 혐의로 19살 남성이 경찰에 구속됐다. 이 남성은 자신이 고백했거나 호감을 표시했다가 거절당한 여성 동창들을 상대로 범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명인이 아닌 '아는 사람' 능욕 범죄에 대한 수사기관의 대응이 포함된 첫 기사가 바로 이것이었다. 고작 3년 전이다.

이 남성도 1심에서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판결문을 보면 "피해자들의 인적 사항을 적시하여 성관계 영상의 합성 사진과 함께 모욕적이고 패륜적이며 저속한 내용의 글을 반복적으로 게재함으로써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이 매우 컸을 것인 점, 범행이 상당 기간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점, 명예훼손·모욕 피해자들과 합의하지 못한 점"을 거론했으나  "피해자들에 관한 음란 영상이 모두 합성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점, 모든 범행을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초범인 점" 등의 이유가 양형에 반영됐다.

2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죄질에 비해 선고형이 가볍다는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2심에선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2심 판결문은 "범행을 6개월 넘게 지속한 점, 자세히 보지 않으면 합성인지 쉽게 구별하지 못할 정도라 피해자들이 느꼈을 수치심과 모욕감 등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들이 자신의 사진이 음란하게 이용될 것을 두려워해 SNS 활동을 비공개로 하는 점, 일부 사진을 판매하거나 실명과 연락처를 공개하기도 한 점" 등을 양형 이유로 들었다.

● '7년 징역' 가능했지만…실형 평균은 1년 5월

지인능욕

[마부작침]이 분석한 사건에서 실형이 선고된 건 27.6%였다. 평균 형량은 징역 1년 5개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62.1%였고 징역 6.8월에 집행유예 21.3월, 나머지 10.3%는 벌금 2건과 공소기각 1건이었다. 벌금은 둘 다 400만 원이었다.

'지인 능욕'에 적용된 법률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명예훼손이나 음란물 유포가 대부분이었다.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사건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음란물 제작 배포 등)도 적용됐다. 형법의 음화제조나 모욕 죄가 적용된 사건도 있긴 했으나 드물었다. 사이버 명예훼손의 법정형은, 사실 적시에선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 허위 사실 적시는 7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이다. 음란물 유포의 법정형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명예훼손 죄가 적용된 사건 25건 중 실형이 선고된 7건의 평균 형량은 징역 12.9개월, 1년을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전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인데도 그러했다.(나머지는 16건 집행유예, 1건 벌금, 1건 공소기각이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이수연 변호사는 "명예훼손 법 조항 자체가 반의사불벌죄인데 이는 피해자 의사를 존중한다는 것도 있긴 하나 범죄 자체를 그렇게 중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법원 판단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미성년자가 피해자라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이 적용된 사건은 모두 4건인데 실형 2건, 집행유예 2건이다. 실형은 평균 2년 3월, 집행유예는 징역 10월, 집행유예 24월이라 그나마 다른 사건보다 무거운 편이었다.

● '아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공포

2년 전 자신의 SNS 사진이 텀블러의 '지인 능욕' 계정에 유포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대학생 A씨. 실명과 나이, 다니는 학교까지 정확하게 적은 뒤 성적 희롱과 모욕적인 내용을 담은 글이 함께 돌아다니고 있어 지인이 범인일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범인이) 저를 잘 아는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전혀 모르겠어서 제 주변 남자들을 다 멀리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2019년 9월 선고된 판결문에는 피해자의 얼굴과 다른 사람의 성관계 장면을 합성한 사진을 만들어 4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했다는, 피고인의 범죄 사실이 나와 있었다. 피해자의 실명과 직업, 인터넷 닉네임까지 그대로 사용한 가짜 계정을 만들어 마치 피해자가 운영하는 사이트로 꾸민 뒤 음란 사진을 계속 올렸다. 알고 보니 이 가해자는 직장 동료였다.

마부작침 지인능욕

[마부작침] 분석 판결문에서 피해자의 '지인', '아는 사람'으로 명시된 피고인은 58.6%였다. '언급 없음'도 범죄 사실로 보면 지인일 가능성이 높아서 사실상 4분의 3 정도는 지인에 의한 범죄로 보인다. 피고인은 알지만 피해자는 모르는 사이- 유명인 등이 피해자인 사건 판결은 27.6%였는데 2018년 중반까지만 있었고 이후엔 없었다. 2016년부터 간간이 연예인 등의 능욕 범죄 피해가 드러나고 판결도 기사화되면서 지인을 상대로 한 범행이 더 활성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들은 자기 신상 정보를 알고 있고 개인 SNS에도 접근 가능한 지인이 범인으로 의심되지만 누군지 확인할 수 없고 잡을 수도 없는 상황을 "공포"라고 표현했다. 2018년 11월 선고된 한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은 2017년 7월부터 1년 2개월에 걸쳐 피해자의 사진과 영상을 심각한 수준의 성적 모욕이 담긴 글과 함께 SNS에 81회 유포했다. 수 차례 신고해도 소용이 없던 차에 간신히 범인은 잡혔지만 피해자에겐 상처가 컸다. 판결문의 건조한 언어로 기술된 피해자의 상태는 "대외 접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 가해자 80%는 '반성하는 초범'

지인능욕

판결문의 마지막 부분에 양형의 이유가 있다. 재판부가 왜 이런 선고를 했는지 어떤 가중 요소가 있고 또 어떤 감경 요소가 있는지 대체로 간략하게 설명한다.

'지인 능욕' 범죄 피고인에게 가장 많았던 가중, 즉 형을 무겁게 할 요소는 '피해자의 고통이 크다'였다. 사건의 65.5%에서 언급했다. 다음은 무한 복제와 유포가 가능한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피해가 크다'는 것, 41.4%였고 반복된 범행이었다는 건 27.6%를 차지했다.

가장 많았던 감경, 형을 가볍게 할 요소는 '범행을 반성·자백했다'86.2%였다. 이런 내용이 담기지 않은 13.8%도 범행을 반성·자백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고 언급이 없었다는 것. 중죄가 아닌 경우엔 아니라고 우기는 것보다 잘못을 시인하는 게 가벼운 형을 받는 데 유리하다는 변호사의 조언, 소설이든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이로써 일단 감경 요소 하나는 확보하고 가는 것이다. 다음은 '초범 혹은 (동종) 범행 전력 없음'으로 79.3%에 이른다. 이는 실제로 '지인 능욕' 범죄를 저지른 일이 없어야 가능하지만 판결까지 나온 사건 자체가 많지 않은 만큼 이 요소를 확보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판결문에 나타난 가해자의 80%가량은 '반성하는 초범'이 됐다.

'나이가 어리거나 학생'인 경우는 20.7%였다. 주로 학교 동창이나 교사를 상대로 범행했던 건데 실제 소년범은 보호 처분으로 가는 경우가 많기에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것으로 보인다. 'n번방' 사태를 최초 고발하고 지금까지도 디지털 성착취 범죄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추적단 불꽃은 "n번방 같은 건 학생들도 범죄라는 걸 알지만 '지인 능욕'은 그렇지 않다"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지인 능욕'이 유행처럼 번져서 저희가 제보받거나 주위에서 듣는 것만 하루에 수십 건"이라고 우려했다. 불꽃은 "지인 능욕하자, 지능해줘, 지능합성한다 이런 식으로 놀이가 될 수 있다"며 "'지인 능욕'이라는 단어를 '사진 성적 합성물' 같은 대체 용어로 쓰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지인 능욕' 범죄의 심각성, 아직도 모른다

텔레그램 집단 성착취 사건 이후 20대 국회 막판에 몇 가지 법이 통과됐다. 그 중 하나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제14조의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등)를 신설한 법 개정, 이른바 '딥페이크 방지법'이다. 사 람의 얼굴·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 등을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 등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고 영리 목적이면 7년 이하 징역, 상습 범행시엔 2분의 1 가중하는 내용이 담겼다. 딥페이크 영상물의 처벌 근거를 마련했고 법정형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통과 당시부터 졸속 처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텔레그램 성범죄 해결' 청원은 '딥페이크 방지법'을 만들라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 청원은, 국민 10만 명 이상이 동의하면 국회가 의무적으로 심사하도록 하는 '국회 청원' 도입 이후 처음으로 요건을 갖춘 '1호 청원'이었다.  국제 공조수사와 수사기관의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엄격한 양형기준 설정 등이 담겨 있었는데 국회는 다른 내용은 다 제쳐두고 '딥페이크 방지법'만 통과시켰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 법으로는 '지인 능욕' 범죄 중 합성물은 처벌할 수 있지만, 합성이나 가공 없이 피해자 사진을 그대로 올리고 여기에 인적사항, 성적 모욕을 담아 게시물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등의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 법 통과 전처럼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음란물 유포 등을 적용해야 하는데 지난 8년 간 법원의 판결은 위에서 이미 살펴본 정도의 수준이다.

추적단 불꽃은 "처음에 'n번방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성범죄인지 합의가 안 됐던 것처럼 이 '지인 능욕' 범죄 자체도 현시점에선 전혀 합의가 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수사기관과 법원이 정말 문제라고 여기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장윤미 변호사는 "당국이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해외 경찰 당국과 공조 체계를 분명히 구축해야 하고 '지인 능욕' 범죄를 단지 평판 저하 정도로 판단할 게 아니라 양형에서도 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고 이수연 변호사는 "명예훼손 조항이 적용되는 범죄라도 그 행태가 성적 수치심을 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에 겪는 고통의 차이가 굉장히 큰 만큼 양형에 반영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금 이 시간, 트위터에 '지인 능욕'을 검색하면 바로 몇 분 전에 올린 게시물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텔레그램 '지능방' 채널 여럿엔 어제도 수십 개의 능욕 게시물이 올라왔다. 현재 진행형이다.

취재: 심영구 디자인: 안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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