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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로나와 함께 하는 일상에서 문화가 쫓겨나지 않도록

[취재파일] 코로나와 함께 하는 일상에서 문화가 쫓겨나지 않도록

공연 취소와 재개 반복에 멍드는 공연계

김수현 기자 shkim@sbs.co.kr

작성 2020.10.15 09:28 수정 2020.10.16 16:3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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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위기를 겪고 있는 분야가 많지만, 특히 대면성과 현장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연의 위기는 심각합니다. 오프라인 공연의 흥행을 위주로 돌아가던 공연 산업의 예전 사업 모델은 작동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온라인 공연을 늘리고 있지만, BTS 같은 극소수 사례를 제외하면 경제적으로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위기에는 나라가 따로 없습니다. 거대 공연기업 태양의서커스가 파산 신청을 하고, 카라얀 등이 소속됐던 글로벌 매니지먼트사인 '콜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가 폐업하고,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낸 전설적인 뮤지컬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도 직원들을 정리해고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요즘 '평생 쌓은 것들이 눈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며 탄식합니다.

온라인으로 가수 윤도현의 공연을 관람하는 강동구 주민 600명
● 공연은 먹고사는 일과 관련이 있다

공연 업계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기사를 쓰면,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공연 타령이냐' 하는 댓글이 달립니다.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공연이 먹고사는 일과 관계가 없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공연은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달려있는 '시장'이요 '산업'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문화 산업은 매출 기준 고용 효과가 커서 일자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경제적 의미 이전에, 공연 관람을 비롯한 문화적 체험이 제공하는 무형의 정신적 가치도 중요합니다. 공연을 본다고 배가 부르진 않지만,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창조의 힘을 통해, 새로운 활력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독서처럼, 공연 관람도 우리에게 마음의 양식을 제공합니다. 공연은 여유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사치가 아닙니다. 물론 비싼 공연도 있지만,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도 많습니다. 국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책임이 있고요.

영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와중에 CEMA(the Council for the Encouragement of Music and the Arts. 음악과 예술 촉진 위원회)라는 기구를 창설했습니다. 심지어 전쟁 중인데도 국가가 국민들의 문화생활을 챙긴 겁니다. 이 기구의 초대 의장은 그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가 맡았습니다. 케인즈의 활약으로 CEMA는 1946년 전 세계 예술 지원기관의 모델이 된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로 발전했습니다. 한국의 '문화예술위원회'가 바로 이 모델을 따랐습니다.

● 공연장 문 닫았다 열었다..반복에 멍드는 공연계

요즘 한국에서는 코로나19 방역조치의 강도에 따라 공연장 가동을 중단했다 재개했다 반복하고, 띄어 앉기 좌석제를 권고사항으로 했다가 의무사항으로 했다가, 상황이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공연 상품은 기획 단계부터 따지면 길게는 몇 달, 몇 년을 준비해서 최종 생산물이 '공연'이라는 형태로 관객을 만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취소된 공연을 공산품처럼 재고로 쌓아 놨다가 다시 팔 수도 없습니다. 지금도 공연단체들은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질 때를 대비해서 계속 새 공연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 역시 불투명한 상황에 따른 위험을 계속 안고 가는 겁니다.

공연장이나 공연단체 직원들은 공연이 제대로 열리지 못하는 때 더욱 바쁩니다. 공연 취소나 연기에 따른 후속 조치가 산더미처럼 쌓입니다. 창립 7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공연을 준비했던 국립극단은 2월부터 내내 공연 연기와 취소, 겨우 며칠 공연했다가 또다시 취소와 연기,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바쁘지만, 실속 없이 바쁘기만 해서 힘이 빠집니다. 그나마 예산을 지원받는 국립극단 같은 단체들은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습니다. 민간 단체들은 말 그대로 '죽을 지경'입니다.

[아리]안에선 다닥다닥 밖에선 마스크 벗고 찰칵..공연장도 '비상'(OK)
● "내일부터 띄어 앉기 좌석제 의무화!"…현장은 '혼돈'

그런데 정책 당국이 공연 산업의 특성과 공연계의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죠. 지난 8월 1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민간 공연장에 공문을 보냅니다. 좌석 띄어 앉기를 국공립공연장뿐 아니라 민간 공연장에도 의무화한다는 내용이었죠. 일선 공연제작사들은 협회를 통해 15일 자정(16일 0시)에 문자로 통보받았다고 합니다. 시행 기간은 8월 16일 0시부터. 민간 공연장과 공연단체들은 당장 큰 혼돈에 빠졌습니다.

'띄어 앉기 좌석제'는 사실 공연계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매표 수입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공연은 하면 할수록 손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미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준비한 공연을 그렇다고 중단하는 것도 어려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시행 하루 전에 공문을 보내 내일부터 당장 띄어 앉기 좌석제 적용하라고 하면, 뚝딱 하고 할 수 있을까요?

국립극장은 지난 5월 '춘향' 개막을 앞두고 국공립 극장 띄어 앉기 좌석제가 시행되면서 예매 전체를 취소하고, 예매 관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재예매를 요청해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직원들의 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창극 춘향'은 개막 보름 전에 재예매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나았던 편입니다. 이미 진행 중인 공연이고 폐막까지 한참 남았는데, 갑자기 띄어 앉기 좌석제로 바꾸라고 하면 그게 말처럼 간단한 일일까요?

국립공연장·국립예술단체 공연 재개
● 개막 하루 전 '공연 취소' → 하루 만에 번복하기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아르코 대학로 예술극장은 기획공연 두 편을 코로나19를 이유로 취소했다가 하루 만에 결정을 번복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예술위는 각각 9월 25일과 26일 개막해 2~3일 공연할 예정이었던 연극과 무용 공연 두 편을 개막 하루 이틀 전인 9월 24일 취소했습니다. 몇 달 동안 준비한 공연이 개막 직전에 취소됐으니 공연에 참여한 예술가와 스태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가 바로 다음날인 9월 25일, 추석 연휴 전 주 금요일이었죠, 갑자기 추석 연휴 국민들의 문화 갈증을 해소한다는 취지로 28일부터 국공립공연장 운영을 재개한다고 발표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공연을 기획해 추석 연휴 기간에 올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만. ) 예술가들은 허탈을 넘어 분노했습니다. 결국 예술위는 25일 긴급회의를 열고 무용 공연만 28일 단 하루 열기로 다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공연에 참여한 예술가와 스태프들에게 상실감을 안겼다며 사과했습니다.

● 공연장 위험도 얼마나 되나

저는 코로나19 상황이 나빠졌다가 호전되어 잠시 공연이 재개됐을 때, 무대 위 예술가들과 관객이 함께 눈시울을 붉히는 현장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공연예술이 주는 위로와 감동을 그때만큼 생생하게 느낀 적도 없었고요.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피로를 호소하는 요즘, 영혼에 위로와 휴식을 제공하는 문화적 체험은 더욱 소중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어떻게 하면 보다 안전하게 문화생활을 할 수 있을까'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초창기에는 '다중밀집시설은 일단 닫고 본다'는 게 정답이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일상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면, 무조건 모든 활동을 정지시키는 것만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문화시설은 위험 시설이니까' 일단 닫고,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열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동안 공연계의 내상은 깊어만 갑니다.

공연장이 다중밀집시설이긴 하지만, 방역을 철저히 할 뿐 아니라 관객들도 마스크를 쓰고 한자리에서 조용히 관람하기 때문에 다른 다중밀집시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공연계에서는 공연장에 확진자가 방문한 사례는 여러 건 있었지만, 공연장에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을 예로 듭니다.

과연 관람객 정보를 100퍼센트 파악할 수 있고 철저히 방역하는 공연장이나 미술관이 다른 곳보다 얼마나 더 위험할까요? 띄어 앉기 좌석제는 얼마나 효과가 있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을까요? 영국 정부는 최근 '띄어 앉기 좌석제'를 지속해서는 공연업계가 생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공연장에서 실제로 감염 우려가 얼마나 되는지 측정하는 정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해외 국가들의 사례도 있지만, 우리도 공연장의 감염 우려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어떤 경우에 정말 공연장을 닫아야 하는지, 정밀한 조사를 통해 더 촘촘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안전하게 공연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 온라인 중계 지원은 근본 대책 아니다

요즘 중앙정부이든 지방정부이든, 온라인 중계 지원을 중요한 정책으로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온라인 공연은 오프라인 공연처럼 몰입해서 보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공연 못하면 온라인으로 하면 되지'가 아닙니다. 고만고만한 온라인 공연만 많아지면 오히려 공연계 전체에 독이 될 우려도 있습니다.

'온라인 공연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공연으로 수익까지 올릴 수 있는 공연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몇몇 공연단체들이 온라인 공연 유료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팬덤이 강한 뮤지컬 제작사, 혹은 그나마 영상 제작에 투입할 예산 여력이 있는 국공립단체들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온라인 공연은 현장 공연을 대체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공연 산업의 근간은 관객과 예술가가 만나는 현장에 있습니다.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데, 이러다 무너져 버리면 온라인 중계 지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생산업체가 새 상품을 내놓을 여력이 없는데, 온라인 쇼핑몰 입점을 지원해주겠다고 하는 격입니다. 정책 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더 세밀하게 공연계의 어려움을 살펴야 합니다. 코로나와 함께 하는 일상에서 문화가 쫓겨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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