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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로나19' 빠진 위기관리 대책?

대한체육회의 이상한 도쿄올림픽 준비

대한체육회는 지난 1월 한 대학교 산학협력단(이하 연구진)의 제안을 받고, 2월에 1억 원 예산의 연구용역 계약을 맺었습니다.

● '코로나19'가 빠진 위기관리 대책?

대한민국 선수단 위기관리 체계 개발 연구용역 제안서 : 제안 목적 (OO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용역의 명칭은 '2020 도쿄하계올림픽대회 대한민국 선수단 위기관리 체계 개발'로, 그 목적은 도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에 발생 가능한 위기를 파악하여 그 위기를 예방하고, 대응능력을 키워 선수단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데 있습니다.

방사능 오염과 한여름 폭염, 경색된 한일 관계와 혐한 등 도쿄올림픽에서 우려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데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시작되던 시기인 만큼 이때만 해도 연구용역의 목적과 방향은 시의적절해 보였습니다.

이후 3월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도쿄올림픽 1년 연기가 결정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4월에 보고한 연구진의 경기 단체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우리 선수단은 도쿄 올림픽에서의 다양한 위험 요소를 걱정하면서 그중 1순위로 코로나19를 꼽았습니다.

※위기상황 발생 가능성과 발생 시 피해 정도를 감안한 심각성 순위
도쿄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위기관리 프로젝트 1차 중간보고 中
하지만, 코로나19가 가장 위험 요소라는 설문 조사 결과를 확인하고도, 연구진이 작성한 다른 '위기관리 보고서'에는 코로나19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연구진은 설문 조사가 주요 내용이었던 1차 중간보고(4월 8일) 이외에 지금까지 3차례 보고서('대한민국 선수단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략" 매뉴얼 초안'(4월 3일), '대한민국 선수단 위기관리 프로젝트(주요 이슈 및 미디어 유형별 커뮤니케이션 전략)'(5월 12일), '대한민국 선수단 위기관리 프로젝트(주요 이슈 및 이해관계자 집단별 커뮤니케이션 전략)'(7월 15일)를 체육회에 제출했는데, 이 3개의 보고서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단어 자체가 한 번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연구 인력 구성을 보면 추측할 수 있습니다. 11명으로 이뤄진 연구진 가운데 감염질환이나 호흡기 질환 전문가, 즉 코로나19 전문가는 한 명도 없습니다(연구진에 포함된 단 1명의 의사는 소화기내과 전공입니다). 처음 연구 용역 계약을 맺은 지난 2월에는 지금처럼 코로나19에 대한 위기감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코로나19 전문가가 포함되지 않았다라고 (굳이 이해하자면…)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대처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설문 조사 결과가 아니더라도, 코로나19가 도쿄올림픽의 가장 큰 위험 요소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위기관리' 연구진에는 아직까지도 코로나19 전문가가 합류하지 않았습니다(올림픽이 연기되면서 연구진은 6월 연구용역 재계약을 맺고, 7월에도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한체육회의 반응도 이해가 안 됩니다. 체육회의 연구 용역 관리 지침 제11조에 따르면 '연구기간이 6개월 이상인 경우에는 (체육회가) 3개월에 1회 이상 중간점검을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고, 또 '연구 진행상황이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해당 연구자에 대하여 시정 또는 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써서 연구 용역을 의뢰하는 만큼 용역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감시할 의무가 있고, 진행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시정, 보완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위기관리 연구용역에 대한 유영주 의원의 서면 질의 내용과 대한체육회 담당자의 답변

2월에 첫 용역 계약을 맺은 뒤로 8개월, 6월에 재계약을 하고도 4개월이 지난 만큼 체육회는 이미 수차례 중간점검을 한 뒤 코로나19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것을 먼저 지적하고, 감염병 전문가 등의 연구진 합류를 요청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체육회는 코로나19 내용이 전무한 위기관리 보고서를 3차례나 받고도 이에 대해 어떤 지적도, 시정 요청도 하지 않았습니다.

● 선수단을 위한 위기관리? 체육회 '욕 안 먹기' 위기관리?

용역을 제안하고 계약을 맺을 당시 연구 제목, 즉 목적은 '위기관리 체계 개발'이었습니다. 하지만, 첫 보고서부터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제목이 살짝 바뀌면서 그 내용도 틀어졌습니다. 선수단이 어떻게 위기 대응 능력을 키우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보다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체육회가 언론과 시민단체 등 여론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보고서의 주를 이루게 됐습니다. 그 내용을 직접 보면 연구 용역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먼저 첫 번째 보고서인 '대한민국 선수단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략" 매뉴얼 초안'에서 발췌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위기의 유형을 분류해 대응 전략을 세우고,

'대한민국 선수단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략" 매뉴얼 초안' 中 위기 대응 전략

이해 관계자들에 따라 차별화된 대응 전략을 갖고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적대적인 시민단체와 비적대적인 시민단체를 구분한다거나,

김형열 취파용

접촉 언론사 기자의 과거 기사를 분석하고, 협조를 받을 수 있는 외부 관계자를 확보해 기자와 만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고,

김형열 취파용

신문사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신문에 지면 광고를 낸다는 전략 등 부적절해 보이는 내용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형열 취파용

이후 작성한 보고서 '위기관리 프로젝트 미디어 유형별, 집단별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방사능과 욱일기, 독도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체육회의 대응 전략이 주요 내용으로, 여기서도 선수단의 안전을 위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신, '어떻게 하면 체육회가 국민들에게 욕을 먹지 않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독도 문제는 근본적인 위기 해결보다는 일본올림픽 위원회(JOC)의 책임이 크다는 걸 부각하고,

독도 문제 인쇄매체 단계별 대응전략 진행 중 (올림픽 개최전~올림픽 기간 중)

욱일기 문제는 국제사회의 동조를 얻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매체와 상황에 따라 일관적이지 않은 대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제가 불거질 경우 방송 매체를 통해서는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을 완화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도,

욱일기 문제 방송매체 단계별 대응전략 사후(올림픽 개최전~올림픽 기간 중)

국정감사 기간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홍보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욱일기 문제 인쇄매체 단계별대응전략 사전(국정감사 기간 중)

하지만, 체육회는 위기관리 체계 개발이 커뮤니케이션으로 변질된 보고서에 대해서도 일체 지적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위기관리 연구용역에 대한 유영주 의원의 서면 질의 내용과 대한체육회 담당자의 답변

● 해마다 수십억 원 사용하는 체육회의 연구용역비

대한체육회는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문제점을 지적받고 쓴소리를 들어왔습니다. 가끔은 과도한 책임 추궁을 당하거나 비난을 받은 경우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욕을 먹는 게 무서워서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위험 요소가 많을 것 같은 도쿄올림픽에서 체육회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급선무라면 처음부터 이에 대한 연구용역을 따로 발주했어야 합니다. 우리 선수단이 도쿄에서 겪을 위기를 관리하겠다면서 1억 원을 사용한 연구용역은 그에 맞는 결과물로 이어져야 합니다. 연구용역에 주요한 내용이 빠져있거나, 내용 자체가 당초 취지와 맞지 않다면 당연히 보완, 수정을 요청해야 합니다. 위에 지적한 내용 이외에도 방사능 유출 상황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나 이를 위한 연구진 확보 등 제대로 된 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문제들은 아직도 산적해 보입니다.

체육회는 지난 2018년과 2019년 2년 동안 연구용역비로만 무려 43억 원가량을 사용했습니다. 국민의 혈세에서 나오는 체육회의 예산이 단 한 곳에서라도 방만하거나 허투루 쓰이는 건 아닌지 체육회는 다시 한번 살펴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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